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은 자전거가 굴러가는 이유를 생각하지 않는다. 자전거는 관성에 의해 굴러간다. 습관으로 단련된 몸은 모든 걸 기억하고 있고,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반복되는 동작에 의해 자전거는 계속 굴러간다.
삶도 마찬가지라 그럭저럭 일상이 유지되는 한, 항상 살아가는 이유를 떠올릴 필요는 없다. 대부분은 그냥저냥 별 생각을 하지 않아도 삶은 관성으로 잘 굴러간다. 매일 삶의 목표를 설정하지 않아도, 돈벌이를 고민하지 않아도, 미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굴러가는 삶은 제법 평온하다. 그 평온한 일상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왔는지 생각해보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주는 소중함은 제법 크다.
들숨과 날숨이 반복되듯 삶은 잠들고 깨어나기를 반복한다. 이런 상태가 때로는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안정적이고 규칙적인 호흡이 가능해야 거친 운동이 가능하듯 평온한 일상이 딱 중심을 잡아줘야 일상도 조금씩 변주가 가능하다.
하지만 가끔 그런 일상이 삐그덕 거릴 때가 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예상 못한 장애물을 만난 몸이 긴장하는 것처럼. 예상 못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뇌가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처럼. 일상에 균열이 가는 순간이 있다.
비혼은 그런 긴장을 숙명적으로, 더 자주 접하게 된다. 그래서 삶의 이유를, 관계의 에너지를 더 자주 확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물론 결혼으로 맺어진 관계도 얼마든지 끊어질 수 있고, 나는 기왕 결혼에 대해 말하자면, 더 쉽게 결혼하고 이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결혼이란 제도에는 좋든 싫든 관계를 더 강하게 붙잡아주는 힘이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러라고 만들어 둔 제도니 말이다. 하지만 비혼에게는 그런 강제력이 없다. 결혼을 매개로 만들어지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역시 매우 희박하다.
사람들이 비혼에 대해 자주 하는 오해 중 하나가 비혼을 그저 책임감 없는 쾌락주의자들의 선택쯤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우선 그러면 안될 이유가 딱히 뭔가. 서로 (법적인 의미의) 가족을 만들고 싶지는 않지만 사랑은 하고 싶고 때로는 안정감도 얻고 싶다는데. 하지만 경향적으로 비혼은 관계의 의미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혼은 결혼이라는 이유로, 가족이라는 이유로 관계를 지속하는 게 당연하지 않기 때문에 더 자주, 진지하게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이유에 대해 자문하게 된다. 결혼을 하게 되면 부부관계에 위기가 오더라도 결혼을 유지해야 할 이유들이 제법 많다. 결혼으로 맺어진 양쪽 집안, 독립할 때까지 부모의 뒷받침이 필요한 아이들, 대출로 마련한 아파트 등.
하지만 비혼은 그런 게 없다. 둘 사이를 지탱해 주던 애정이 휘청거릴 때 관계를 유지해야 할 이유가 별로 없다. 그래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이 결혼한 커플과 조금 다르다. 대출 이자, 자녀 양육, 양가 부모님 생일 따위를 챙기지 않아도 된다고 마냥 편한 것은 아니다. 더 많이 얘기하고, 표현하고, 조율하고, 타협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주류의 삶을 선택하지 않는데서 오는 고립감을 잘 극복해야 한다.
물론 나는 비혼을 선택한 이후로 대체로 늘 선택에 만족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내 선택에 대해 무거워지고 괴로워지는 순간이 있다. 가끔, 차라리 관성과 습관에 의해 살고 싶어 질 때가 있다.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일상이 굴러가서 힘든 순간도 어느새 국면이 바뀌어 있으면. 자라는 애를 보며 오늘도 출근할 힘을 쥐어짜 내고, 잠든 가족을 보며 힘들었던 하루를 뿌듯한 마음으로 마감하듯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삶이 그냥저냥 굴러가는 그런 상황이, 차라리 그리울 때가 있다.
비혼은 '왜'라는 질문을 더 자주 던져야 하고, 스스로 끊임없이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비혼이면서 애인이 없는 상태라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안정적인 삶의 루틴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결혼한 친구들은 농담처럼 배우자가 며칠 동안 출장을 가면 해방이라고 즐거워한다. 혼자서 자유롭게 게임을 하고, 여유롭게 영화를 보며 캔맥주를 마신다. 하지만 상상해보라. 혼자 사는 비혼주의자가 피곤에 쩔은 몸으로 집에 들어와 무의식적으로 티브이를 켜면서 해방감을 느낄지를. 가끔 나는 소리가 필요해 티브이를 켜놓고, 음악을 튼다. 활자가 필요해 책을 읽는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은 하나도 없으므로. 또 나에게도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 필요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