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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동나동 Jan 12. 2021

나만의 곡소리는 무엇일까?

어릴 적부터 관계 유지를 위한 의례적인 행동이 싫었다. 특히 가족, 친척 관계와 관련해서는 거의 모든 내용과 형식이 나와 잘 맞지 않았다. 


우선 가족. 

2세대쯤 위로 올라가면 바람피우고, 두 집 살림하고, 첩 들이고, 두드려 패고, 밖에서 몰래 애 낳고, 놀음하다 돈 날리고, 그래도 같이 살고 이런 이야기들이 사방에 널렸다. 와, 저런데도 왜 가족이야? 

1세대쯤 위로 올라가면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희생했던 가부장의 피나는 노력, 하지만 나이 들어 아무것도 즐기지 못하고, 서로 쳐다도 보기 싫지만, 가족을 위해 내 인생을 바쳤다는 서사가 넘쳐 난다. 나는 그렇게 살기 싫었다. 존재 이유를 찾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가족을 위해 희생했다는 자기 합리화가 참 맘에 들지 않았다. 기본 목표 설정이 너무 일방적이다. 상대도 그 감정에 동의해줄지, 토론도 합의도 없는 그 관계가 마냥 숭고하기만 한 건지. 


그리고 친척. 

점잖은 말 뒤로 오가는 진짜 마음을 이해하는 게 참 힘들었다. 

일단 대화를 시작한다. 주저리주저리 일상을 나누는 듯하다가 살짝살짝 자신들의 욕망을 내비친다. 들어주는 척, 걱정해주는 척하다가 자신이 원하는 걸 얘기한다. 모든 게 자연스럽게 자기가 원하는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준비작업처럼 느껴졌다. 내가 좀 유난스럽기도 했지만, 그렇게 반응할만한 사건도 많았다. 가까운 사이끼리 챙겨야 한다면서 뒤통수치고, 돈 빌리고 안 갚고, 훈계는 오지게 하면서 자기 앞가림은 못 하고. 일상적인 거짓말, 체면치례를 위한 빈말이 너무 많았다. 눈치 보고, 그래도 기어이 할 말들은 하는. 나는 자주 무례하다고 느꼈다. 


아마도 비혼주의자가 되는데 이런 성향이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결혼식에도 거의 가지 않았다. 

성별 고정관념에 찌든 주례사도 싫었고, 백년해로하라는 말도 신뢰가 안 갔다. 기본 사랑이 영원하다는 말 자체를 어릴 때부터 안 믿었다. 아니 게다가 축의금을 내도 회수할 기회가 없잖은가? 


하지만 장례식은 느낌이 좀 달랐다. 죽음 앞에서는 그렇게 미워했던 아빠도 애틋하게 보였다. 


아빠랑 큰아버지 장례식장에 간 적이 있다. 아빠랑 큰아버지는 그렇게 친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뭐랄까 묘한 구석이 있었다. 하긴, 어릴 적 내 눈에 비친 친척들의 관계에는 늘 그렇게 묘한 구석이 있었다. 서로 끊임없이 서운해하고 뒤에서는 욕을 해도 절대 관계는 끊지 않고, 어떤 순간에는 묘하게 의존적이 되는 희한한 느낌. 지금에서야 그게 전통적인 가계 안에서 유지되는 관계라는 걸 알지만, 어릴 때는 당최 이해 불가였다. (그래도 사촌 형들은 좋아하는 편이었다. 가식이 없는 편이라.)  


아빠는 영정 사진 앞에서 아고 아고 곡소리를 한참 하셨다. 나는 그때 좀 울컥했다. 그 곡소리가 얼마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소리인지는 모른다. 정말 슬픈 건지 아닌 건지, 그 슬픔은 어떤 종류의 슬픔인지, 슬픔이란 말이 정확하지 않다면 아빠의 감정은 무엇인지 그런 건 모르겠다. 곡소리가 단지 어떤 절차 같은 것이라 해도 상관없이 그 소리는 너무 애틋하게 느껴졌다. 그 곡소리를 듣는 고인이 정말 위로를 받을 것만 같았다. 곡소리를 내는 아빠도 위로받을 것 같았다. 당신이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했던 이 집안 안에서 당신은 의미 있는 삶을 살다 갔고, 나 역시 그럴 것이라고 곡소리가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자신들이 가치를 부여한 공동체 안에서 의미 있게 살다 간 삶. 그것을 서로 확인하기 위한 곡소리. 가끔은 의례적인 행동 안에 진심을 담아 애도하는 마음을 내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전히 그건 내 방식은 아니다. 그래도 잠깐이지만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마음을 조금 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고민이 들었다. 곡소리 주변을 맴도는 구경꾼처럼 느껴지던 순간마다.  그들을 가득 채운 의례적 과정들을 다 비운 자리에 나는 무엇을 채워야 할까? 영원한 고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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