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사 다니는 쌍둥이엄맙니다.
어렸을 때부터 한 동네에 쌍둥이 사촌 동생이 살았다. 나한테 ‘쌍둥이’란 그 동생들이었고 ‘쌍둥이 엄마’란 우리 외숙모, 그게 설정값이었다.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외숙모한테 ‘쌍둥이 키울 때 애기 엄마는 어떻게 자요?’라고 물었더니 ‘쌍둥이를 임신했는데 왜 잘 생각을 하지?’라고 하셨다. 외숙모는 유쾌한 분이라 그땐 그 대답이 신박하다고 생각했는데 키워보니 농담이 아니라 팩트더라.
신생아 육아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하루 8번의 수유였다. 아기가 둘이니 하루 16번의 식사를 챙기는 것이다. 특히 ‘밤수’라고 해서 자고 있는 아기를 깨워서 밤새 수유를 하는데 세 시간에 한 번, 회차 당 한 시간씩이니 분유 타고 먹이다가 해 뜨는 걸 보는 커리큘럼이랄까.
그래도 신생아는 정말 빨리 큰다. 빠는 힘이 세져서 먹는 속도가 빨리지고 먹는 양이 늘면 수유텀이라고 하는 식사 간격도 길어진다. 그렇게 밤수 없이 쭉 잘 수 있게 되는 걸 ‘통잠 잤다’라고 하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보통 100일이 걸려서 엄마들은 이 날을 기려 ‘백일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엄마와 아가들은 밤인지 낮인지 모를 대체로 어두운 방 안에서 쑥 먹고 마늘 먹는 곰처럼 밤낮으로 합숙하며 (아가들이) ‘사람‘이 될 때까지 인고의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잠 많은 엄마들이 극단적으로 안 자는 훈련을 100일간 하는 것이다.
아기들과 처음으로 밤잠을 5시간 27분
자고 일어난 날의 개운함은 잊을 수가 없다.
시차출근제로 8 to 5 근무를 선택해 오후 6시에 어린이집 하원을 한다.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출근하고, 퇴근길에도 늦을까 봐 종종거리며 유치원에 가는데도 우리 애들이 반에서 가장 마지막 타임의 귀가다. 막내반이라 더 그런 것 같다.
다행히 쌍둥이라 '혼자 남았다'는 생각은 잘하지 않는 것 같고 근처에서 일하시는 친정 부모님이 일찍 찾아서 놀이터에서 놀게 해 주시는 날도 있다. ‘엄마 왜 이렇게 늦게 와?' 같은 말을 들어 본 적은 없는데 학부모 상담 때 들어보니 선생님한테 '엄마 언제 와요?'라고 묻기는 한다고.
아무튼 6시부터는 쌍둥이와 보내는 시간으로, 내가 기운이 좀 있으면 놀이터에서 함께 놀기도 하지만 주로 저녁 먹고, 샤워하고, 동화책을 읽거나 (힘들 땐) 유튜브를 보여주는데 그것만 해도 시간이 금방 간다. 올해부터 남편과 기초체력을 지키기 위한 운동을 교대로 하기 시작해서 여기까지 하면 이미 저녁 9시고, 애들 재우고 10시쯤 되면 육퇴다!라는 마음으로 눕지만 재워지는 것은 대부분 나다.
유치원 반 구성이 아파트 단지로 구분되어서 같은 반 친구들과 생활권이 같다. 그중에는 내 오랜 친구와 친구의 딸도 있는데 내가 야근으로 집에 잘 못 들어갈 때는 친구가 카톡으로 '쌍둥이 벤치에서 아이스크림 먹는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다.'며 파파라치 컷을 보내기도 한다. 그렇게 내가 오늘 야근을 하는지 주말에 출근을 하는지 훤한 친구랑 야심한 시간에 퇴근하다 만나면, 외박하고 집에 몰래 들어가다 걸린 사람처럼 머쓱한 것은 왜일까?
재밌는 게, 어떤 친구가 집을 샀는데 집 값이 엄청 올랐다거나 아니면 명품백을 샀다거나,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거나 하는 얘기는 즐겁게 들어주면서. '오전에 아이 등원시키고, 운동 갔다가, 재택 하는 남편이랑 같이 점심해 먹었다' 같은 얘기는 듣는 순간 알 수 없는 짜증이 올라와 리액션이 고장 난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시소를 타고 노는 걸 보다가. 나는 오른쪽에도 왼쪽에도 타지 않고 시소 가운데에서 둘 중 어느 한쪽도 땅에 닿는 일이 없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다 보면 밤 늦게 회의실에서 아가들이랑 영상 통화하다가 우는 날도 있고, 애들은 매달리는데 방에서 문 잠그고 일을 하기도 하고. 프로젝트 하나 끝내고 집에서 잠만 자고 싶은 날에 (보상이랍시고) 키즈카페 볼풀장에서 그저 앉아있다 오는 날도 있다.
일평생 워킹맘이었던 엄마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 회사에서 일하고, 집에 오면 육아하고 그럼 나는 언제 쉬어?
엄마는
- 집에서 애들이랑 있는 게 쉬는 거지, 내가 너랑 집에 있으면 일하는 거냐
라고 했으면서
얼마 전에 (충수염) 수술하고 병가 냈을 때, 마침 첫째가 아파서 유치원을 못 갔다고 했더니 금세 아빠가 와서 친정에 아이를 데려갔다. 엄마가 집에 애기 있으면 못 쉰다고 했다면서.
어느 날은 이 정도만 되면 쌉가능이지! 라며 자신했다가도 다른 날에는 ‘광고라는 일’도 ‘쌍둥이 엄마’라는 역할도 넘치는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선택이 너무 나답다.’라는 게 자부심이 아니라 막막한 혼잣말이 되는 시간.
통근 시간을 빌어 한 시간 정도 더 자고 아이들과 함께 일어나서 '유치원 지각이다!' 하면서 고양이 세수를 한다. 아가들 티비보는 동안 머리 묶고, 입에 누룽지칩 하나 물고 함께 등원하고 돌아오는 길. 그 300미터도 안 되는 사이에 시원한 바람이 통하는 것이, 집에 가서 노트북 열고 오늘치 할 일이 있다는 게 고맙기만 한 날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