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동물학자 제인 구달은 생물 다양성의 중요성을 거미줄에 비유했다. 한두 줄만 끊어져도 거미줄망 전체 균형이 무너지는 것처럼 생물 종이 하나씩 없어지면 생명의 그물망 전체가 위험해진다고 본 것이다. 서로 얽히고설켜 섞이며 살아가야 할 생태계가 개량된 작물, 사육된 가축 위주로 단순화하는 지금 상황은 그래서 위험하다. 궁극적으로 생존과 직결된 식량산업에 구멍을 만들어 삶의 위협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일 품종에 지나치게 의존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일랜드 대기근이다. 1845년 아일랜드에서는 감자 역병이 발생했다. <럼퍼>라는 품종에 의존했던 아일랜드는 주식으로 삼던 감자의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 1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현재 우리가 먹는 바나나의 99%는 생산성이 높고 숙성 기간이 길어 수출용으로 적합하게 개발된 품종인 <캐번디시>다. 1960년대 파나마병이 발병하면서 전 세계 바나나 농장에 위기가 닥치고 이전까지 먹던 <그로미셸>이란 품종을 대체한 것이었다. 하지만 신종 파나마병 확산으로 바나나 농업은 또 한 번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2011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20년 이내에 <캐번디시> 바나나가 지구에서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어떠한 산업이든지 경제적 관점은 매우 중요하다. 다만 경제성과 생산성에만 초점이 맞춰진 성장은 자칫 식량산업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두 사례는 단편적인 예시일 뿐, 종의 획일성으로 인한 문제는 작금의 모든 작물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종 다양성을 유지하며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한 길은 무엇일까?
전세계적으로 종 다양성을 유지·발전하기 위한 연구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허나 실험실 연구가 유통업계까지 연결돼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한 사례는 겨우 딸기 정도다.
연간 60만 t에 달하는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감자 품종을 보면 수십 년 전부터 우수한 학자들이 다양한 품종을 연구·개발했음에도 단일 품종이 90%를 점유하고 있다. 신품종 육성의 핵심 목표인 종 다양성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품종 다양성을 위해선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고 있는 대형 유통사·제조사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다양성에 기반한 판매·구매·마케팅 전략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품종 선택권을 부여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판매의 불확실성과 불안정한 공급은 유통사에 위험으로 존재한다. 다양한 품종을 선보일 수 있는 초기 시장 형성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요구되는 이유다. 현재 생산에만 맞춰진 초점을 마케팅·물류·포장 등 판매와 관련된 영역으로 확대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대형 업체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등 다양한 기업들의 참여가 이뤄질 것이고 이는 자연스럽게 종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농업·소비 혁신으로 이어질 것이다.
다양한 품종을 맛보고 선호하는 생활은 우리 식탁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미식의 즐거움을 주는 한편, 지구와 인류의 안녕을 약속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