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 직거래’라는 말은 매력적이다. 소비자에게는 더 신선한 식품을 싸게 먹을 수 있다는 의미로 통한다. 생산자에게는 유통에 드는 물류비와 수수료 등을 절감할 수 있어 이익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말로 다가간다.
신선한 먹거리를 싸게 사고 싶은 소비자의 욕망과 힘들게 생산한 농산물을 팔아 더 많은 이윤을 남기고 싶어 하는 생산자의 본능은 직거래 시장을 키웠다. 신선식품 산지 직거래 규모는 2015년 2조 원대에서 올해 4조 원으로 2배 성장했다. 물론 정부의 유통구조 개선 작업도 큰 역할을 했다. 1994년부터 네 차례에 걸친 신선식품 유통구조 개선과 직거래 활성화 정책은 ‘직거래’를 시장 참여자 모두가 행복한 ‘절대선(善)’으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스타 농부들도 탄생했다. 강원 영월에서 유기농 토마토를 생산·판매하는 ‘그래도팜’은 친환경 방식으로 장기간 노력해 품종을 다양하게 구성했다. 도매가격에 영향을 받지 않고 매년 같은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토마토를 직접 판매한다. 강원 춘천 ‘감자밭’의 이미소 대표 역시 감자 신품종을 오래 연구해 감자 빵을 제조, 월 20억 원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스타 농부가 될 수는 없는 법. ‘산지 직거래 스타 농부’의 공통점은 단순한 유통구조 개선만으로 수요를 창출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철저한 브랜딩과 지속적인 연구개발, 콘텐츠의 힘까지 복합적으로 더해 없던 시장을 만들었다.
그러나 30년간 산지 직거래가 갖고 있던 신화는 최근 몇 가지 이유로 조금씩 깨지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택배비다. 택배비가 최근 4500원에서 5500원으로 오르며 오히려 직거래를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됐다.
산지 직거래 시장이 커지고 여기에 참여하는 농가가 늘어나면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개별 농가들은 수요 예측이 어렵다 보니 재고 부담을 그만큼 떠안아야 하는 문제를 갖고 있다. 소비자 데이터를 실시간 수집해 매년 적정시기·적정 가격에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기업과도 경쟁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직거래는 품질과 대비해 싼 지 비싼지 비교 구매가 불가능하다. “산지에서 보냈으니 가장 싸고 싱싱할 거야”라는 ‘오래된 믿음’에 매번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온라인 식품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산지 직거래 시장에 작은 균열들이 생기고 있다. 소비자들이 가격과 품질 비교는 물론 배송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해주는 온라인 신선식품 쇼핑 플랫폼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 등으로 지난해 신선식품 온라인 거래 시장은 전년 대비 75.9% 성장했다. 이 시장에는 최근 몇 년 새 스마트팜, 데이터 농업, 라이브 커머스 등으로 분야를 넘나드는 수많은 플레이어가 등장했다.
단순 물류비의 비교로 어떤 거래가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더 이득인지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산지 직거래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벗어나야 하는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 농민과 소비자에게 더 나은 농산물 판매구조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부의 정책 역시 디지털 농업 시대를 감안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단순히 특정 작물, 특정 분야를 지원하고 반대 영역에 대한 규제를 만드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디지털 농업 시대에서 우리가 경쟁해야 할 대상은 이제 수입 농산물이지, 우리 안에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