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계모임이 깨졌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우리 친정집의 형편도 부모님의 경제에 따라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잘살아도 너무 잘살았다고 한다.
손 위의 오빠가 나비넥타이를 매고 찍은 사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방구 좀 뀐 집안이었던 모양이다.
하루아침에 고향을 등지고 귀경을 결심했을 때는 말안해도 뻔하다.
집안이 망한거다.
그 이유를 아버지는 정치로 겨냥하시고 당신 고향출신의 모씨 딱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도둑놈이라고 하셧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서울의 첫 집은 산동네였다. 분명 망해서 귀경했을텐데 어느 순간 돈이 좀 모아졌는지 산동네에서 우리집은 잘 사는 부류였다.
검은 색 피아노가 있었고 100포기가 넘게 김장을 하셨고 요즘 사람들은 전혀 알 수 없는 백색전화가 있었다.
백색과 흑색전화
지금처럼 통신을 사는 시스템이었는데 있는 집은 백색, 사무실과 없는 집은 흑색전화기를 사용했다.
더 없는 집은 전화기자체가 없었다.
"여보세요 평창동입니다. 가회동입니다" 란 드라마멘트가 그냥 생긴 게 아니다.
모든 집에 전화가 있을 수 없는데다 우리집에 전화가 있으니 전화용무는 우리집이 아닌 아래집 누군가를 바꿔달라는 경우가 많았다.
" 00엄마, 빨리 전화받아"
특히 지방에서 오는 전화라면 목소리가 더 커진다. 수화기너머 똑같은 데시벨이건만 지방이라고하면
아주 크게 말해야 들리는 줄 그래 착각하던 시절이었다.
아버지의 일이 우후죽순, 수입도 들랑날랑할텐데 어떻게 우리집은 산동네에서 좀 사는 부류가 되었을까?
당시 어머니를 포함, 주부들의 대부분은 계라는 모임을 했었는데 큰 돈이 왔다갔다하는데도 정관도 없고 계약서도 없고 영수증도 없는 신기한 운영이었다.
운영은 간단하다.
계주가 계원을 모집한다. 계주는 화려하고 부티가 나야한다.
계주를 포함해 10명의 계원이 구성되면 첫 달은 계주가 1번으로 선이자를 떼고 돈을 받는다.
다음 달 2번은 그보다 낮은 프로테지를 떼고 3번은 더 낮은 프로테지로 마지막은 앞번호가 뗀 만큼의 프로테지를 이자로 받아 곗돈을 받는 시스템이다.
1번부터 10번까지 잘 굴러가려면 계주가 계원들을 모두 잘 알고 끝까지 갈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한다.
돈이 급한 사람이 보통 계주에게 말하면 앞번호로 곗돈을 수령한다.
월급만 바라보고 살기엔 살림이 팍팍하니 여자들끼리 요긴하게 돈만드는 구석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아버지가 출근하시면 여자들이 핸드백을 들고 와 요란하게 웃고 떠들고 먹고 돈이 왔다갔다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아줌마들은 왜 그렇게 큰 소리로 웃는지, 어쩜 그렇게 잘 먹는지, 누가 무슨말만해도 배가 아프다고 웃기도 참 잘 웃었다.
나는 어른들은 돈을 쉽게 벌고 만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에게 뭔가가 사달라고하면 거절하시는 법이 없었다. 그래봐야 과자살 수 있는 동전 몇 개지만 어머니 가방에는 늘 현금이 있었다.
그게 선이자를 떼고 혹은 이자를 바라고 오랫동안 기다려온 금쪽같은 돈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산동네를 떠나 아랫동네로, 마당없는 집에서 정원이 있는 집으로 옮길 때마다 아버지의 역할도 크셨겠지만 어머니도 그 재테크를 줄곧 하셨던 것 같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었다. 10.26사태가 터졌다. 박정희대통령이 서거하셨단다. 고무줄놀이음악에도 나오는 박정희대통령이 총에 맞아 서거하셨다란 뉴스에 온 집안이 얼었다.
나의 고무줄놀이음악에
박정희대통령은 고마우신 우리대통령이었다.
문제는 계엄령이었다. 외출금지, 모임금지, 다른 건 둘째치고 곗돈을 내고 있던 어머니는 혼비백산이다.
아마도 계산컨대 곗돈은 어마어마했을 것 같다. 그 당시 월급이 10만원언저리였는데 곗돈은 그보다는 많았으니 아버지의 사업실패보다 더 큰 손실이 아니었을까?
어머니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곗모임을 이렇게 표현하셨다.
" 한마디로 미친 년 계여. 여기서 돈 받아 뒤돌아서 다른 모임에 곗돈을 내는거여. 모임사람들은 몰라, 그냥 계주 한 명만 보고 들어가는거여. 아줌마는 누구여? 응. 내 아는 사람이여.. "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이 오가는데도
얼굴인증하나 민증도 확인하지않았다고 했다.
하루는 어머니의 돈을 들고 튄 계주를 길거리에서 마주쳤다고 한다.
돈 달라소리에 그저 따라오란다고 따라간 그 집은
산동네도 그런 산동네가 없이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고 판잣집보다 조금 나은 한 마디로 가난이 뚝뚝 떨어지는 그런 집이었단다. 그 여자가 곗모임에서는 좋은 옷을 입고 나왔으니 철썩 믿었다고.
" 옛날 남편들이 돈을 잘 못벌었잖아. 애들은 갈쳐야하고 먹고 살아야하니 여자들이 그런 미친 년 계를 한거지"
아마도 10.26사태가 일어나지않았으면 그 계조직에서 돌고 도는 돈의 단위는 어마어마했을 것 같다.
이후 은행이 동네 곳곳에 생기고 정기적금, 재형저축이란 통장이 생겨 목돈만드는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친정집은 두 가지가 불문이었다.
사업하지말 것
계하지말 것
그래도 보고 배운 게 그거라고 학교친구들과 동전계를 했었다.
매일 100원씩 모아서 한 달 뒤 3천원을 나눠갖는 것, 매일 100원짜리 동전을 들고 와 한 달 뒤 나눠줬던 기억이 난다. 아무 이득도 없는데 그 짓을 왜 했을까? 오지랖도 참 넓다.
어른이 되고 깨달은 많은 것들중에 하나가 아무리 돈을 꽁꽁 잘 싸매도 간간히 뜯긴다거다.
친구에게 떼이고 형제에게 떼이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않으면 모르는 사람에게도 떼인다.
상가투자, 오피스텔투자,..개인간 투자...
모두 먹고 살라하니 그 조금 더 벌겠다고 나선게 떼이고 상처받고 울화통이 터진다.
어머니처럼 도망간 계주를 따라 갈 수도 없고
또 도망간 계주치고 잘 사는 사람없으니
그저 힘들게 번 돈 큰 욕심내지말고!
어머니가 미처 말해주지못한게 있다.
꼭 믿는 도끼에 발등찍힌다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