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다른 집은 막내는 어떤 대접을 받았을까
가끔 궁금한 항목이다.
다들 막내라고 하면 귀여움많이 받았겠다...라고 얼른 추측하지만
그것도 어떤 성별이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나의 경우는 귀여움보다는 역할이 컸다.
나이가 제일 어리니 심부름은 모조리 내 담당.
-노란 주전자에 막걸리를 받아오는 심부름,
그 길에 한 모금
-딩동~초인종소리에 문열어주는 역할
-리모콘이 없던 시대니 tv 채널을 돌리는 역할
-화장실 휴지가 떨어졌다..배달역할
-아버지 구두닦으면 100원!
심부름은 부모님과 형제를 가리지않았는데 별 불만이 없었다.
막내란 서열은 부모님에게 어떤 것일까
내가 결혼할 때 어머니가 그랬다
" 너는 막내라 그런지 제일 오래 키운 것 같어"
막내란 부모님이 가장 늦게 들여 와 가장 오래 키운 '파랑새' 그런 느낌인가보다
딸부잣집, 그 말은 곧 아들이 귀한 집이란 뜻이다.
우리집이 그랬다.
딸딸딸딸
어떻게 얻은 아들
다시 딸
아버지는 셋째 딸을 낳았을 때 온동네 수박골든벨을 울리셨고
넷째 딸을 낳았을 때는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허허허 웃으셨단다.
그 넷째 딸이 부모님께 이쁨을 받았던 계기가 손아래 동생이다.
언니가 세 살때, 몇 가지 단어로 겨우 의사소통할 수 있는 그 나이에
어머니 뱃속에 있는 아가를 가르키며 "서서 눟는 거"(아들의 소변행위) 라고 말했다니
곧 아들을 낳을 것이란 예지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무척 행복해하셨단다.
과연 아들을 낳았을까?
낳았다.
드디어 어머니도 그 어렵다는 득남을 하신거다.
넷째딸을 낳았을 때 실성한 듯 허허허 웃으셨다는 아버지는 그제야 세상을 다 얻고 다 아는 신선처럼 웃으셨단다.
귀한 아들이니 귀한 대접을 받았던 건 당연하다.
의사도 말해주지못하는 성별을 초음파도 아니고 그저 유아적 직감이었을텐데 그게 맞을 줄이야.
"서서 눟는 거' 라 줄곧 예지했던 손 위 누나는 덕분에 무임승차를 탔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어봄 정작 막내인 나보다 귀염을 받았던 거 같다.
어머니에게 아들은 완장과 같았다. 오래된 숙원이 해결되는, 히말라야정복보다 더한 쾌감이었으리라
아버지본가는 외가와 달리 딸이 아주 귀했는데 집안살림의 기둥이 여럿이라그런지 친할머니는
보통 "기고만장" 이 아니셨단다.
아들을 쉬이 낳는 당신에 비해 딸만 수두룩한 며느리를 보며 얼마나 답답했을까? 게다가 다른 며느리들은
본가를 닮아 처음부터 아들, 둘째 셋째도 아들이니 어머니가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짐작이 된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아들은 남북통일보다 더 큰 소원.
드디어 결혼 10년만에 득남! 두 분의 포텐이 터지는 순간, 아버지는 아들의 기저귀를 직접 빨며
" 이건 똥이 아니여, 황금이여 황금이여"
그렇게 좋아하셨단다.
아들이 뭐라고....아들이 태어날 때 두 주먹에 황금이라도 들고 나오겠냐만 오랜 숙원이었던 탓에 아들, 나에게는 손 위 오빠는 그야말로 금이야옥이야였다.
그 시대가 그렇듯 새 옷은 큰 언니와 오빠만 입을 수 있었다. 나머지 딸들은 모두 물려입었다. 연령차이가 나는 나의 경우는 대부분 오빠의 것이었다.
귀한 사람은 왜 그리 몸도 약하고 잘 먹지도 못할까 오빠가 그 경우였다. 소화력이 약해 덜 먹으니 몸이 약했다.
그에 반해 가시나들은 먹성이 좋았다. 특히 아들 하나 낳은 자신감에 한 번더를 외쳐 낳은 나는 더더욱 잘 먹는 편이라 아프지도않았으니 저 혼자 잘 크는 가지였다.
왕관이 그려진 서울우유가 우리집에 배달된 이유도 오빠때문이다. 비위가 약한 오빠는 몇 모금마시고 손서레를 치면 나머지는 내 몫이었다.
언젠가 눈이 몹시 나쁜 오빠를 위해 부모님이 동물의 간을 갖고 오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화상에 된장을 바르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민간처방이었다.
오빠는 시뻘건 간을 보고 놀라 도망가고 부모님은 그게 버려질까봐 아들을 쫒아다녔다. 왠만한 괴기영화보다 더 무서운 상황이었다. 나는 그 장면이 너무 공포스러워 아들로 태어나지않을 걸 진심으로 감사했다.
부모님의 노력은 허사였고 오빠는 성인이 된 후 라섹수술을 받았다.
금지옥엽같은 아들이었기에 딸들은 그 누구도 아들의 비위를 건드리거나 부모님의 편애를 질투하지않았다. 아들은 넘사벽, 부모님의 자랑이 아닌 가족의 자랑이었다.
오빠는 몸이 약했지만 공부를 잘했고 실패한적없는 인생노선. 재수를 한 나와 달리 한 번에 합격하고 취직도 그랬다. 기대만큼 잘 크고 잘 살았던 아들이었지만 유일하게 부모님의 지병을 물려받았다. 오빠는 일찌감치 처방전을 받은 쉽게 말해 보험수가가 높은 유병자다. 몸이 아프면 생활에 지장을 준다. 귀하고 잘 자라 성공사례였던 오빠는 현재 건강도 그렇지만 생활이 녹록치않다.
우리집의 아들은 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희망이고 목적이고 삶 그 자체. 어머니의 가슴이 아픈만큼 여자형제들도 마음이 아프다.
어머니가 병상에 누우셨다. 어쩐일인지 임종 며칠을 앞두고 식음을 거부하고 말도 못하셨다. 그러나 딱 한 사람, 아들을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빛나셨다.
마른 눈물로 아들을 바라보셨다.
딸들은 안중에 없는 듯 그 딸들은 개의치않았다.
어머니와 아들은 대화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모자가 아닌 연인같았다.
"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 엄마, 다 알아요. 엄마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사랑하는 아들의 배웅을 받으며 돌아가셨다.
아들은 무엇일까
딸은 무엇일까
정말 감사하게도 딸과 아들을 키웠던 나는 그 무게감을 측정할 수 없다.
다만 먼저 태어 난 아들은 딸보다 더 한 세월을 지내왔기에 추억이 많다.
첫째아이는 부모도 처음이라 관심도 많지만 그만큼 실수도 많으니 미안한 마음이 크다.
아들이 아니라 첫째를 보면 마음이 짠한게 미안함이 크고 딸을 보면 이쁜 짓 했던게 떠올라 사랑스럽다.
어머니와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던 아들, 그게 어머니를 배웅했던 마지막 효도였을지도.
어머니는 얼마나 말하고싶었을까..
사랑해 아들
미안해 아들
잘 살아 아들
내 배 아파 낳은 자식, 내가 키운 자식
내자식도 귀하고 남의 자식도 귀하다.
성경에서는 자녀를 기업이라고..
가문의 번성이라고 표현한다.
어린 자녀가 성장하고 성인이 되니 그 의미가 진심 와닿는다.
자식은 기업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었다.
우리 가족이 잘한 것,
어머니의 오마이러브인 아들을 시기질투하지않았던 것.
그리고
어머니의 자녀로 태어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