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번종점의 추억

피난중에 스타를 만나다

by 유원썸

10.26사태후 어머니의 계모임이 폭싹 망하고 정세가 불안하니 아버지의 사업도

위기였다.

가장으로써 아버지가 선택한 것은 지방 소도시에서 일을 찾는 것이었다.

그 옛날 큰 꿈을 갖고 서울상경하셨던 분이 거꾸로 내려가시다니 큰 결심이셨겠지만

자녀들은 노터치, 영향을 주지않았다.

" 너희들은 다 컸으니 알아서 공부하고 언니들 말 잘듣고...엄마 아버지는 이제 돈벌러 간다"



결혼한 큰언니를 제외하고 나머지 형제들이 부모님이 급하게 마련하신 전세집에서

본의아닌, 느닷없는 독립을 하게 되었다.

서열1위인 둘째언니의 나이가 스물여섯이었는데 직장을 다니며 동생들을 뒷바라지해준다건가

집안일을 다한다거나 그런 언니는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다.

모두들 각자 알아서 자기일은 자기가 해야했다.

그래도 우렁각시가 왔다간것처럼 보온밥통의 따뜻한 밥과 김치볶음밥을 해 먹을 수 있는

김치는 늘 있었다.

누가 시키거나 감독을 한 것도 아닌데 집안일은 돌아갔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 다한다고 부모님의 부재는 형제들을 자율적으로 움직이게했다.

나도 연탄불을 여러 번 갈았다. 타이밍을 놓쳐 불이 꺼지면 번개탄을 사와 불을 붙혔다.

두 연탄이 붙어 안떨어지는 상황에는 식칼로 베었던 것도 기억난다.

부모님의 부재가 주는 불안함을 느낄 사이없이 다들 자기일플러스집안일을 해야했다.


부모님이 집에 계시지않은 상황, 학생의 신분이었던 내가 문제였다. 밖으로 돌았다.친구들과 많이 어울리고 휩쓸렸다.

부모님의 사인을 받아야 할 성적표는 내 가방에 오랜 기간동안 머물렀고 하교후 친구들과 놀러다니느라

공부에 관심 둘 여력이 없었다.


그 즈음 학생들의 관심사는 방송국의 인기가요가수를 따라다니기가 주류였고 고교야구를 보러다니는 부류도 있었다. 나는 후자였다.

지금은 서울시장후보들의 공약이기도 한 DDP자리에 동대문야구장이 있었다.

천안북일, 선린, 광주일고, 군산상고등 내노라하는 명문고등학교의 야구가 정말 겁나게 재미있었다.

열일곱, 열여덟 그 즈음의 야구선수들은 스타였다. 관중은 모두가 감독처럼 소리를 질렀다. 잘 때리면 신나했고 못 때리고 못 던지면 야유를 던졌다.

소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는 아저씨들사이에서 선수이름을 부르고 좋아라했다.

그 많은 학교중에 선린상고가 곧잘했는데 그 히로인이 박노준과 김건우였다.

잘 던지고 잘 때리고 잘 달렸다. 모자 하나 썼을 뿐인데 한 마디로 간지났다.


TV에서 고교야구결승전을 중계를 했다. 박노준선수가 홈에 들어오면서 발목이 꺽였던 사고가 발생했다.

그 장면을 몇 번이나 리플레이하는데 어찌나 속상하던지 야구만화에서나 나올법한 불운같았다.

그가 입원을 한 병원이 나의 학교 바로 맞은 편 한국병원, 점심부터 병원앞은 여학생들로 가득했다.

"저것들은 공부도 안하고 어떻해 지금 이 시간에 있는거야?"

어제 TV를 보면서 걱정하고 궁금했지만 내가 아닌 가시나들의 팬심은 짜증났다.


그렇게 뒷말하던 나와 친구는 야자를 끝내고 한국병원을 들어갔다.

몇 층 몇 호인지는 이미 머리속에 있다.

그의 병실앞은 아무도 없었다.

" 니가 열어봐"" 노크부터 해야지"

결국 두 여학생은 똑똑 노크까지만 하는 걸로 쇼부를 보았다.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 정확하지는않지만 누구세요나 들어오세요 정도가 아니었을까


다시 노크


이제는 박노준선수가 궁금할 차례다.

-누군데 자꾸 두드려

키가 큰 청년이 병실문을 열고 얼굴을 내민다

TV에서 보았던 그 선수가 우리눈앞에 있다. 키가 아주 컸다. TV보다 훨씬 더 잘 생겼다.

그러나 우리 둘을 쳐다보더니 인사도없이 그냥 병실안으로 들어가는 박선수

문이 닫히고 우리는 얼마나 뻘줌했는지 뒤도 돌아보지않고 도망쳤다.


그 날 내내 병원을 찾은 가시나들은 얼마나 용감한건지, 저들의 팬심은 얼마나 뜨거웠는지

깨달았다.

30센티도 안되는 거리에서 직접 박선수를 보았던 우리들이건만

정작 " 쾌유하세요"" 괜찮으세요"란 멘트도 하지못했다.


TV에서 본 스타를 눈앞에서, 정말 근거리에서 보았다.

처음부터 좋아하는 스타가 있는가하면

스타를 보고 이후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그게 계기가 되어 야구라는 종목을 더 좋아하게되고 프로야구가 개막될 때는

MBC청룔부터 롯데자이언츠의 선수들을 외울 수 있었나보다.


병원병실까지 찾아 간 스타선수는 프로야구선수가 되었다가 현재는 모대학총장이 되었다.

그 날 늦은 시간 자신을 보러 온 두 여학생을 기억하기만무하지만 난 야구 특히 그의 동정이 공개될 때마다 한국병원 병실앞에 서있는 듯 웃음이 나온다.



야구선수는 다른 종목에 비해 외모가 좋다. 특히 야구모자를 쓰고 투수를 저으기 바라보는 눈빛, 본인은 입이 타들어가겠지만 관중은 숨 죽이며 설레인다.

투수가 모자를 쓰윽 만졌다 다시 쓰고 한숨쉬고 공을 던지고 아웃을 잡았을 때 불끈 쥐는 주먹,

가끔은 중계가 뻔이 되는 걸 알면서도 침도 뱉는다. 더럽다기보다 엄청 긴장되나보네 그 마음이 읽혀진다.

치고 던지고 달리고 잡고 놓치는 야구경기는 매우 신사적이고 지능적이면서도 매우 동물적이다.

오로지 홈에 들어가야한다란 생각에 발목이 접히는 것도 마다하지않는 건 박노준선수만이 아니다.

최고급 선수들을 모아도 이길 수 없고 마이너급 선수들만 모아도 지지않으니 진짜 야구는 알 수 없다.



먹이고 입혀야하니 고향도 두 번이나 버려야했던 부모님. 그 부모님의 부재가 내게는 기회였을까 실수였을까

절반은 기회였고 절반은 실수였다.

바닥을 치던 공부는 완전 실수였다. 언니에게 성적표를 들킨 것은 기회였다.

" 정말 한심하다"

나의 성적표를 본 언니가 이 한 마디를 했다. 형제간의 잔소리는 구속성이 없지만 대신 자존심이 무지 상한다.


그 즈음 지방에 계신 엄마가 편지를 보내주셨다.

엄마의 편지는 처음 받았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언니들하고 잘 지내는지 몇 군데 틀린 철자에는 "공부"와 관련한 당부는 하나도 없었다. 평소 하지않으셨던 표현, " 사랑한다" 란 문구에 울었다. 엄마가 보고싶다. 엄마없는 이 시간에 잘해야겠다란 생각, 공부 해야겠다란 생각을 했다.

엄마의 부재는 집안일이 정말 많다는 것, 형제간도 부모님이 계실 때 더 돈독해진다는 것, 특히 피난중에 엄마의 사랑은 배가 된다는 것, 그런게 기회라면 기회겠다.


피난중에 만난 스타는 빛이 났다. 멋있었고 설레였다. 비록 그에게 쾌유하세요란 말 한 마디도 못했지만 그로인해 이 날까지 야구를 좋아하는 계기가 되었다.

야구의 매력은 모자만이 아니더라. 9회말2사후가 진짜인 야구, (고)하일성씨가 말했듯

" 야구, 몰라요"



나를 웃고 울게했다. 피난처에서 만난 스타, 그리고 피난처에서 만난 엄마의 편지말이다.





















목요일 연재
이전 05화8번종점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