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마지막으로 옷을 산 게 언제였더라,
맨투맨 세일 광고에 고민하다가, 2019. 11. 5일.
세상에나, 새벽 6시 23분에 결제를 했었네요.
쇼핑을 자주 하지는 않았지만,
계절마다 가성비 좋은 캐주얼 옷들을 장만했습니다. 결정장애가 있어서 인터넷으로 옷을 고르는데 몇 주가 걸리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중요한 행사 전 날 오프라인으로 달려가 적당히 마음에 드는 옷을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적당함과 애매함은 한 끗 차이, 몇 번 입지도 못하고 옷장 구석을 차지하고 마는 것이죠.
https://n.news.naver.com/article/056/0010833051
옷을 사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는,
코로나로 수출길이 막혀 쌓여있는 헌 옷들에 관한 기사를 읽은 후였어요. 수거함에 버려진 옷들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내가 버린 옷들이 저곳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늘 옷은 살수록 부족한 느낌이었어요.
흰 셔츠를 사면 원래 있던 바지가 후줄근해 보이고, 배송비 아끼려면 저렴한 티셔츠를 한 장 더 추가해서 주문하게 됩니다. 그렇게 옷을 사도 니트는 금세 보풀이 일거나, 티셔츠는 늘어나기 마련이죠. 그럼 또다시 새로운 옷을 구하게 되는, 이 도돌이표와도 같은 쇼핑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1년이라는 멈춤 기간을 정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마음도 어수선했고, 가는 곳도 한정적이어서 옷을 안 산지 몇 개월 되던 시점이었어요. 이 불편한 감정과 마주해보면, 그동안 옷을 소비했던 습관과 마음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말이죠.
1년 동안 옷을 안사면 어떻게 달라질까?
‘사는(buy)것이 달라지면, 사는(live)것도 달라진다’라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사지 않으면 내가 가진 것들을 다시 보게 됩니다. 어떻게든 이 옷들만으로 생활을 해야 하니까요. 진열대에 놓인 옷처럼 차곡차곡 정리하고, 입을 때 좀 더 조심스러워집니다.
기한을 정해 놓자, 의외로 마음이 편해졌어요.
쇼핑 카테고리는 저절로 건너뛰고, 쇼핑할 때 드는 시간과 에너지로 운동, 독서, 글쓰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선택지가 줄어드니 옷을 찾아 헤매는 일도, 입을 때 고민하는 시간도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옷을 사지 않으면 좋은 점
쇼핑과 세탁비용이 줄어들어 돈이 모인다.
쇼핑시간과 옷 입을 때 결정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공간이 생기면서 먼지가 줄어들고 옷이 숨을 쉰다.
반듯한 새 옷을 입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여름휴가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 약속이 잡혔을 때였어요. 그럴 때는 스스로 정해놓은 기한과 헌 옷에 대한 기사, 쇼핑하지 않을 자유를 떠올리며 몇 번의 고비를 무사히 넘겼습니다.
패스트 패션에 반대하는 움직임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여 빠르게 제작하고 유통하는 과정에서 환경이 오염되고, 대량 소비는 또 다른 폐기로 환경에 영향을 끼칩니다. 배우 에즈라 밀러는 중고 옷만 입는다는 원칙을 정했다고 합니다. 패션 산업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고, 섬유 산업 노동자들의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파타고니아의 ‘Don’t buy this jacket’이라는 광고는 정말 유명합니다. 최근에는 플리스 원단과 다양한 재활용, 천연소재를 이용한 플리스 랩이라는 신제품을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옷을 파는 회사이지만 ‘원 웨어’(Worn wear) 캠페인을 하며 옷을 수선하여 오래 입기를 권하는 진짜 친환경 기업입니다.
‘핀란드 사람들은 왜 중고가게에 갈까?’라는 책을 읽으면서, 환경을 위해서 굳이 새 옷이 아니어도 괜찮겠구나 느꼈습니다. 많은 소비, 많은 폐기의 이유로 중고가게가 활성화되지 않는다면 말이죠.
나는 옷이 아닌, ‘옷걸이’
같은 옷만 입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들도 있습니다. 스티븐 잡스와 마크 저커버그의 놈코어 룩 (Norm core look)은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죠.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고 편안한 스타일에 정착하는 일은, 보다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 아닐까요?
젊었을 때는 많은 것들을 더해가며 시도합니다.
익숙한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선호하며 이것저것 더해보는 것이죠. 그러다가 덜어내고 싶은 시점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조금 더 빨리 왔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도 있지만,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입니다.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써의 옷도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평범한 옷에 약간의 디테일, 그리고 옷을 대하는 마음가짐만으로도 살아가는데 충분하지 않을까요? 옷 보다는 옷걸이란 본질에 충실한 삶을 살고 싶어지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