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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일 Oct 05. 2022

반포장 이사, 사서 고생의 즐거움



방 두 칸이 비워졌다. 그리고 이번에도 반포장 이사를 선택했다. 가전과 가구는 이사 업체에서, 나머지 짐들은 계약자가 직접 포장하고 정리해야 한다. 남자 패커 분들 3명만 오기 때문에 10만 원 정도의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메리트가 있다. 하지만 그에 비해 감당해야 하는 수고가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바쁜 분들은 포장 이사를 선택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3개월 정도의 물건 정리를 마치고, 이사 일주일 전 박스를 요청했다. 4년 전에는 모든 짐을 나 혼자 포장하고 담았는데, 이번 이사의 주인공인 남편은 나 대신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자발적 고생에서 의미를 찾는다면 즐거울 수 있다고, 남편도 이번 이사에서 깨닫지 않았을까!




주방 살림과 일부 옷들만  담당이었는데,  번째 경험이다 보니 나름의 요령도 생겼다. 제일 번거로운 포장은 그릇과 주방 살림이다. 예전에는 하나씩 에어캡을 싸고 과도하게 테이핑을 했었는데. 포장을   힘들고 쓰레기도 많이 나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크기가 비슷한 그릇들은 함께 포장했다. 소창 손수건이나 행주 등을 사이에 끼우고 한꺼번에 에어캡을 렀다. 다행히 깨진  하나 없이 무사했고, 테이프를 벗기는 시간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12년을 함께 한 냉장고는 3번째 이사에서 바퀴 한쪽이 부러졌다. 작고 가벼운 냉장고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상의 끝에 마지막까지 함께하기로 했다. 이사 한 달 전부터 타이트하게 장을 봤다. 냉동실은 텅 비어 두면 냉동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생수병 같은 플라스틱 통들을 얼려두었다. 이삿날 아침, 냉장고 안 음식들을 아이스 가방 2개에 나눠 담았다. 얼려 둔 아이스 팩과 플라스틱 병도 함께 넣는다. 이 모든 걸 직접 챙겨야 하는 부담감이 무겁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사 후 물건들이 바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즐거움에, 반포장 이사를 포기할 수가 없다.





옷이 가장 간단하다. 재사용하는 박스들이기 때문에 옷이나 이불을 넣을 때는 새 비닐을 깔고 넣는다. 업체에서 깜빡하는 경우가 있으니, 박스 받을 때 함께 챙겨달라고 요구하는 편이 좋다. 개어진 옷들은 남편과 나, 아이들 옷을 구분하여 박스에 차곡차곡 담고, 옷걸이에 걸린 옷들은 그대로 넣었다. 이사 가서 바로 꺼내 걸어둘 수 있도록.





이삿짐을 싸기 직전에 한 일이 있다. 바로 평면도에 가구 배치를 그려보는 것. 동시에 수납공간과 물건의 양도 최종적으로 점검했다. 좁은 집이어도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걸 직접 그려 넣으면 보다 선명해진다. 커튼과 레일의 사이즈 체크도 잊지 않는다. 가져갈 커튼을 골라서 세탁 후 박스에 담고, 남는 커튼은 일부 판매하고 필요한 분에게 나눔 했다.




내가 선택한 것들로 이룬 공간을 다시 비우는 일은 묘하다. 구석구석 깨끗이 청소하면서 다정했던 공간을 마음에서 떠나보낸다. 개운함과 공허함. 그 사이 어딘가에서 빈 서랍의 먼지를 쓸어 모았다.



모든 것을 제로화할 수 있는 것이 이사의 미덕이라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했지만. 단, 이것 하나만은 남겨둬야겠다. 공간에 담긴 우리 가족의 추억만큼은.



7시 30분 이사가 시작되었고,

9시 10분 트럭이 강원도로 떠났다.


4년 전 이삿날처럼 부슬비가 내렸다.

적당히 슬프고. 적당히 설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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