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사랑

Sizzano Novara의 아주 낡은 집

by 조옥연

Sizzano에선 여름 내내 취할 것같이 농익은 포도향기가 났다.

내 방 창문 넘어 한 뼘 거리에 서있는 캄파넬라는 새벽 다섯 시가 되면 어김없이 댕댕댕댕댕 종을 울렸다.

아무리 새우처럼 등을 말고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도 마지막 다섯 번째 종소리는 꼭 세고 있게 만드는 캄파넬라 덕에 한 번도 통학기차를 놓쳐본 적이 없었다.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켜 세우면 잠이 덜 깬 코끝에 제일 먼저 달려와 매달리는 포도향기 때문에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며 집안을 걸어다녔다. 욕실에서 이를 닦으며, 거울을 보면서 "총각김치 먹고 싶다." "아~ 콩나물 쫄면이 먹고 싶다." 툭툭 털어내듯 좀스러운 잔망을 떨기도 했다. 이국의 낯선 냄새가, 그리움 때문에 오소소 소름 돋는 아침이 길어지는 날에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들리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 우울에 시달려야 했으니까.

시짜노에서 아침 기차를 타면 밀라노까지는 한 시간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두오모까지... 어쩌다 기차가 빠지는 날에는 버스를 타고 노바라역으로 가야 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그 아침의 일상을 무던히도 사랑하려고 애썼었다. 가끔 기차 안에서 낯이 익은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 나는 꼬레아나! 밀라노에 학교가 있어, 그래서 기차를 탄 거야. " 같은 대답을 스무 번쯤 했던 것 같다. 처음 얼마간은 말하기 좋아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더 이상 말을 걸어올까 봐 겁이나, 짐짓 자는 체를 하기도 했다.


Sizzano, Via santamaria의 110년 된 내 집은 너무 낡아서 하얀색 회벽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붉은 벽돌 집이었다. 벽체의 하얀색 스킨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는 너무도 견고해 보이는 붉은 벽돌들이 건장한 남자의 핏줄처럼 툭툭 불거져 나와 있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의 집들이 모여있는 골목이 어쩌면 그렇게 묘한 아름다움을 주는지, 골목에서 만나는 할아버지의 굵은 베이스가 인사하는 무뚝뚝한 칭찬 '본조르노 벨라' 와는 또 어쩜 그렇게 잘 어울리는지, 끝없이 뻗어있는 길끝을 막아선 몬테로자와 그 앞으로 불쑥불쑥 올라 서있는 청록색 포도밭은 또 왜그렇게 목가적 서정을 펼치며 내 마음으로 품어들었었는지...

사소한, 그러나 특별한 그리움들이 자주 몰려와 시짜노를 추억하게 한다.

sizzano.jpg sizzano에서는 몬테로자의 하얀 맨얼굴이 그대로 보이고 아찔한 포도향에 취해 비틀거리며 걸어다녔다. 손바닥만한 piazza에서는 마을사람들이 모여 Vino(와인)축제를 벌였다.


인생의 계획표가 내 맘대로, 계획한 대로 흘러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10년 가까이 노래하며 살던 무대를 버리고 음악이 아닌 건축을 공부하기 위해 성악의 본고장 이탈리아로 아이러니한 유학을 떠났다. 하나님은 무슨 이유로 내게서 음악을 거두어가시는 거냐며 대들기도 했지만 대답을 듣지 못한 채 어설프게 꾸린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새로운 시작이 두렵기만 한, 그렇다고 멈추기에는 아까운 어정쩡한 나이, 서른 살 즈음의 나는 새로 시작한 인생을 쫓아 이탈리아로 떠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새 계획표는 듬뿍 남아있는 음악에의 미련이 그대로 드러난, 새로 짠 계획표가 너무 두려워 질 때면 그대로 찢어버려도 좋게 선택된 장소였다.


처음, 근처에 학교가 있는 밀라노의 두오모 광장에 섰을 때, 그 육중한 두오모 성당의 문을 밀고 들어갔을 때, 나는 헤어 나오기 힘든 새로운 사랑에 빠질 것을 예감했다. 노바라에서 기차를 내려 마지막 버스를 놓치던 날, 한 시간이나 걸리는 시짜노까지 터덜터덜 걸으면서, 길 끝에 걸린 몬테로자의 장관을 바라보면서, 마을 길 왼편에 따뜻하게 놓여있는 치미테로(공동묘지)의 애틋함과 고요를 경험하면서, 밥 먹으러 가다 길을 잘못 들어 우연히 만난 밀라노의 자랑 암브로지오 성당의 섬세한 디테일을 보면서, 베네치아로 첫 여행을 떠나던 날 산마르코 광장의 가면무도회 같은 축제를 보면서, 노바라 시장의 작은 카페에서...

이제 그곳의 삶이 일상이 되어버린 그 즈음, 나는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의 아름다움에 눈뜨고, 일상으로 흘러나오는 건축의 선율을 느끼고, 보고 있었다. 어쩌면 낯선 땅이었기에 보이고 느껴지던 그 광경들이 한없이 뭉클했고, 새로운 계획표가 만들어 준 느닷없는 인생이 감사했다.

그리고 음악 대신 음악처럼 아름다운 건축을 이야기하는 지금의 나를 거기서 만나 그렇게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곳 시짜노, 노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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