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여행

by 조옥연

- 이별여행-


지구 반대편으로 도망쳐 12시간을 건너왔건만

여기는 아직도 그날

그래서 기억은 여전히 아팠다

시름없이 떠나온 건 잘한 일이었다

아득한 세상에 던져진

나, 혼자가 어색하지 않았으니까

낯선 아침과 만났을 때

세상의 축복은 내게도 공평하게 와 주었다

언덕에서 나무를 쓰다듬던 바람이 날아와

광장에 우두커니 서있는

나의 우울을 어루만지다 떠나갔고

뜨거운 태양을 피해 들어선 골목에서

달고 시원한 피오렌지를 마시며

아! 이제야 살 것 같다 그렇게 말했으니까


나에게 무책임했던 그동안의 나는

살고 싶었던 거였다

잘 자! 거기 기억 끝에 서성이는……


네가 잠자리에 들 시간쯤

나는 늦은 점심을 손에 들고

한없이 낯선 골목을 걷고 있을 테지

길이 끝나는 곳에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종탑이 서있을 테고

그 곁엔 500년을 살고도 여전히 우아한 성당이 서있을 거야

성당의 문을 열면 내 시간의 흔적 따위

시간의 무게에 질려 찰나처럼 부서져버렸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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