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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은진 Dec 01. 2023

스쿨미투 세대, 대담하다

청주여성시민매거진 <떼다> 2호 인터뷰 기사



'IMF키즈', '세월호 세대', '코로나 키즈' 등 강렬하고 집단적인 기억을 가진 특정 세대가 등장하곤 한다. 그렇다면 2018~2019년도에 중·고등학생이었던 지금의 20대 초중반 여성들을 '스쿨미투 세대'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 시절 학생이었다면 용맹한 기세로 전개됐던 스쿨미투 운동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번 다시 그러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하는 것일 터다. '충북스쿨미투지지모임', '정치하는 엄마들' 등 당시 스쿨미투 운동에 연대한 주체들이 가해자 정보공개 문제를 두고 여전히 교육청과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이 운동의 유일한 이유이자 목적은 운동의 주역이자 생존자, 목격자였던 이들의 회복일 것이다. '스쿨미투'를 겪은지 5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어떤 기억을 갖고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스쿨미투 세대 나은진이 또 다른 스쿨미투 세대를 인터뷰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였던 세 여성은 이제 서로에게 안녕을 묻는다.








스쿨미투, 오토바이가 되어 달리다(이소영, 라이더)


이소영 라이더의 뒷모습. (본인 촬영)




최근까지 스쿨미투 인터뷰를 진행했더라. 그래서 오늘 인터뷰는 그냥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한다. 가령 요즘의 고민이라든가, 취미라든가.


스쿨미투 재판을 이어가던 10대 후반에는 무력감도 많이 느끼고 우울한 삶이 이어졌었는데, 재판이 끝나고 20대가 되면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졌다. 정확히는 재판이 마무리되면서 기존의 삶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문장으로 20대를 시작하게 되었달까. 이전까지는 ‘스쿨미투’라는 주제가 아니면 나를 설명할 수 없었는데, 요즘 나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오토바이’가 되었다.


원래 모아두었던 돈과 재판 (가해교사로부터 지급된) 위자료를 더해 마음에 드는 오토바이를 샀다. 어떤 의무도 좋고 싫음도 느끼지 못했던 상태에서 그저 오토바이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 무면허 상태에서 구입한 것이다. 그리고 헬멧만 들고 오토바이 기술을 배우러 갔다. 유일하게 ‘하고 싶다’라는 마음에 시작한 오토바이가 내게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정말 이곳저곳 다 돌아다녔다. 바다를 좋아하는데 동해, 서해, 심지어 산길도 간다.




흔한 취미는 아닌데. 무엇보다 거금을 들여 오토바이를 산다는 선택부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저 자유롭게 달리고 싶었다. 무거운 자동차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달릴 수 있는 오토바이가 끌렸다. 마침 좀처럼 구하기 힘든 매물이 싸게 올라와 당장 서울까지 올라가 오토바이를 구매했다. 무면허 상태였는데! (웃음) 당시 주인이 면허도 없는 여자가 괜찮겠냐며 걱정했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배우면 되니까. 물론 기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당하는 일도 많았다. 요즘이야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여자들이 늘어났다지만 아직은 ‘남초 문화’에 해당하지 않는가. 보험료도 일반 자동차와 다르게 비싸다.


하지만 그 모든 단점을 이겨내는 오토바이만의 자유로움이 좋다. 오토바이가 주는 자유가 뭐냐면 정말 필요한 것만 챙기고 목적지로 가는 건데, 언젠가 너무 답답해서 일몰을 보러 가야겠다고 서해에 간 적 있다. 점차 지는 노을을 등진 채 해가 보이는 쪽으로 달리는 그 길이 너무 좋았다. 사방이 탁 트여있고, 시원한 바람을 느끼면서 자연이 넘치는 길을 달리는 기분! 내가 내 힘으로 이곳까지 올 수 있다는 자신감, 목표에 대한 고양감. 그게 너무 즐겁다.



이소영 라이더의 오토바이. (본인 촬영)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무척이나 재밌을 것 같다. ‘스쿨미투’라는 주제가 아닌 ‘오토바이’라는 주제로 설명되는 나의 이야기. 이젠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그런 ‘이소영’의 이야기를 궁금해한다. 오토바이를 만나면서 기존과 달라진 지금의 일상을 비교해 본다면?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나이, 관심사, 지향하는 가치가 전혀 다른 새로운 사람들과 가벼운 인간관계를 맺어보면서 시야가 넓어졌다. 특히 기존의 인간관계는 어떤 목적과 취지를 정하고 정적인 만남을 갖는 것이라 지칠 때가 많았다. 그런데 현재는 아니다. 


지금 속한 오토바이 크루와는 길거리에서 처음 만났는데, 청주에서 내가 갖고 싶었던 ‘할리데이비슨’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 사람이랑 가볍게 인사를 나누다가, 어느새 같이 오토바이를 타는 지인들과 커피도 마시고 지금의 관계를 이어가게 되었다. 새로운 만남과 낯선 경험이 주는 매력이 있다.


오토바이는 내게 스쿨미투라는 주제를 단절시키면서 동시에 나를 연결해준 존재다. 이를 통해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이게 내 힘이야’라고 보여줄 수 있는 나의 결과물이다. 오토바이는 내게 클러치 같은 존재다. 자동차 클러치처럼 기존의 나와 지금의 나를 이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제는 잠시 거리를 두고 지금을 즐기기를. 우리에겐 앞으로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가.


맞다. 나는 자유를 너무 추구하는 사람이라, 요즘은 대학교도 안 간 지 꽤 오래됐다. 학교 안 가도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다. 조주기능사 자격증도 따고 싶고, 속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싶어서 전용 키보드도 구매했다. 또, 카메라를 사서 오토바이를 타고 목적지까지 향하는 여정도 영상으로 남기고 싶다.


당시는 너무 힘들었지만, 그때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버텼기에 내 삶도 달라진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후회는 하지 않는다. 가끔씩 지치고 의기소침해질 때마다 재판 당시 적었던 판결문을 다시 읽는다. 법원에서 인정했고 공판이 내려진 결과이자, 나를 방어하고 지금의 나를 보여주는 그 문장들을.





다음에 올 사람을 기다리며(전승아, 대학생)


사진 출처, 언스플래쉬




우리끼리 ‘스쿨미투’라는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도 무척이나 오랜만이다. 벌써 5년이 지난 일을 지금에서야 말하게 되다니.


벌써 5년이라는 것도 신기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이 사건이 터졌는데, 지금은 대학생이라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그때는 수업에 들어온 교사가 우리에게 성희롱하는 일이 너무 잦았다. 기분 나빠도 넘겨야 하는 일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젠 시대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당시 B학교 관련 사례도 뉴스 기사가 나올 정도로 꽤 떠들썩했던 기억이 난다. 가해 교사의 성희롱 발언을 트위터에 익명으로 올리면서 논란이 되었으니까. 그때 가해 교사의 근황을 알고 있나?


모른다. 학교를 졸업한 후 소문도 쉬쉬하며 사라지고 스쿨 미투에 대해 다시 언급하는 친구들도 없다. 당시 처벌이랄 것도 대단치 않았다. 교감이 대표로 학교를 옮기고 가해 교사는 그저 교실을 돌아가며 ‘사과’로 끝을 맺었다. 그것도 웃긴 게, 가해 교사가 피해 입은 학생들에게 일어나라고 시킨 뒤 사과를 했다. 솔직히 누가 일어나고 싶겠나. 불쾌했든, 하지 않았든 그 발언을 들은 모두가 ‘피해자’였는데.


교사의 잘못된 발언에 불쾌하긴 했어도 무언가 바꾸려고 행동할 생각은 하지 않았었는데, 스쿨미투 운동을 통해 목소리를 높이고 공감한 많은 학생들이 함께 들고 일어나면서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긴 것 같다. 그 결과가 이상적이진 않았지만. (웃음)




함께 움직이면 더 큰 변화의 물결을 일으킨다는 결과를 보여준 사례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코로나 등의 커다란 변화가 연달아 이어져서 그런지 5년이 지난 지금은 그 일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세상이 조금 달라지기는 한 모양이다. 그것에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고 있다. B학교의 후배들은 관련한 사건이 터졌을 때 우리보다 더 잘 대응하지 않을까?




5년이 지난 지금, 사회의 여성 인권과 논제는 어떻게 변화했다고 생각하는가?


진보했다면 진보했고,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문제와 심각성을 인지하는 사람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여전히 줄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다만 이제는 ‘묻지마 사건’이 ‘약자 혐오 사건’으로 이름이 바뀐 것처럼 사소하지만 확실한 변화에 집중하게 된다. 세상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건 아니니까, 발전했고 발전하고 있다고 믿을 수밖에.



앞으로도 이와 같은 비슷한 사건이 일어난다면 어떨 것 같은가?


화를 내겠지.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세상에 화도 나고, 여전한 가해자들의 반응에도 화가 날 거다. 다만 아까 말했다시피 ‘미투’를 접해본 사람들이라면 우리 때보다 더 잘 대처할 거라고 믿는다. ‘또 미투야?’ 같은 반응이 아닌 진지하게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돼’라고 반응하는 사회가 오면 좋겠다. 나도 그렇게 반응할 거고.




앞으로 ‘제 2, 3의 스쿨미투’가 나오고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겠지. 한 개인을 넘어서서 사회 전체의 인식이 바뀌려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래도 지치지 않고 버틸 자신이 있는지?'


버텨야지. 살려면 버텨야 하지 않겠나. (웃음) 어쨌든 이런 자리에 서서 인터뷰를 받아보니 신기하다. 내가 할 얘기가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질문을 받아보니 그때 내 감정이나 상황을 다시 떠올리게 되어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더 이상 내게 스쿨미투와 관련된 것을 물어볼 사람은 아마 없을 테니, 이쯤에서 한때 있었던 사건으로 정리되지 않을까 싶다.






청주여성시민매거진 <떼다> 2호 신문에 실린 인터뷰 기사입니다.

펀딩을 통해 종이신문 발간을 진행하였으며 본 기사 및 총 신문 내용은 해당 사이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cwcm2022/223247293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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