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광숙이

by 한 나강

한밤중 12시 12분.


또 난리가 났다. 대체 오늘은 또 왜 그러는 건지. 좀 전에 방문을 쾅하고 닫더니 이내 다시 열어선 쾅쾅쾅 연달아 세 번을 닫는다. 기껏 닫아 놓은 문을 새로이 열었다 닫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을 만큼 격노할 일이 있었는가 보다.


이에 그치지 않고 방바닥에, 그러니까 우리 집 천장에다가 자기 발꿈치의 위력을 증명하느라 바쁘다. 문간방에서 안방까지를 런웨이로 삼아 씩씩거리듯 오가며 입으론 뭐라 뭐라 성대를 죽죽 찢는 소리를 낸다. 약간은 멀어진 비명소리에 이제 좀 잠을 청해볼까 싶었지만 우리의 광숙이는 새벽에도 잠이 없다는 게 문제다. 악 하는 비명과 함께 다시 쿵쿵쿵 발을 찧으며 돌아와선, 겨우 휴식에 들어간 방문을 또 열었다 쾅하고 닫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흡사 군대에서의 제식훈련 같기도 하다. 아직 나이도 어린것 같은데, 여자도 입대를 하면 좋을 것 같다.


아니, 됐고. 저걸 잡아다가 자장가라도 불러줘야 하는가 싶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들은 제법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척들을 하지만, 집안에 들어가면 다들 짐승이 된다. 마취총을 쏠 수도 없고...


미칠 광자에 숙은 그냥 숙. 어느 날 밤 여지없이 들리는 그녀의 괴성에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은 이름이다. 내 삶에 이토록 깊숙이 침투한 생명체를 불리는 이름도 없이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매번 십오 층, 그 집, 미친 호모, 또라이 등으로 부를 바엔 나름 한 자라도 뜻을 담아 정성껏 불러야겠단 생각이었다.


이 狂자엔 원래 이중적 의미가 담겨있었는데, 하나는 단순히 그녀가 ‘미칠 광’을 대표하는 인간이란 뜻이었고, 다른 하나는 언젠가는 내가 미쳐버리는 날이 올 거라는 예언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후 이사한 지 일 년이란 시간이 지나며 후자의 의미는 점차 퇴색되어 갔다. 하자면 무박훈련 내지는 불침번과도 같은 것들로 말미암아 어느 정도는 적응이 된 탓이다.


다만 잘 버티다가도 불쑥 나 또한 광숙이에 못지않을 억울함과 울분이 치솟는 날이 찾아올 뿐이다. 이런 날엔 말라 붙은 두 눈을 수십 번의 깜빡임으로 축여가며 이 감정을 어찌 처리할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한다. 사건이 아닌 감정을 해결하는 데 골몰한 이유는 이러하다. 벌써 그럴듯한 방안을 다 써보았거나 그 나머지는 차마 쓸 수 없는 방법들이라서다.


우선 관리소 직원들은 이른 아침 나타난 한 주민의 피폐한 몰골 따위에는 하등 관심이 없었다. 그날 나의 눈앞에는 희망의 불씨가 아닌 절대로 넘어갈 수 없는 가시철조망이 보였다. 그들은 저마다 팔짱을 끼거나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어느 집에 불이 났나 기웃거리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두 번째로 찾아간 보안팀은 어긋난 관심으로 일을 키워 도리어 내가 가시철조망을 설치하고픈 심정을 일으켰다. 이를테면 신고한 지 시간이 훌쩍 지나 찾아와선 그 사이 까무룩 들었던 잠을 다시 깨운다거나, 신고자를 비밀로 해달라고 그리 부탁했건만 고요한 복도에서 마치 피아노 댐퍼 페달을 밟은 듯 풍성한 음향을 자랑하며, "윗집은 아니라는데요!!" 하는 식이었다.


웬만큼 질렀으니 이만 가줬으면 좋겠는데, 동글동글한 외모에 호탕한 웃음을 지닌 그는 한참 동안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정 안 되면 관리소에 가보라느니 — 갔다 왔다. 원래 층간소음은 증거를 잡기가 힘들다느니 — 누가 모를까. 요 앞에 문방구에서 귀마개를 사서 껴보라느니 — 껴도 잘 들려서. 따위의 말을 쉬지도 않고 해댔다. 싹둑 끊어 버리기가 미안하도록 착하고도 우렁차게.


참기 힘든 날엔 '이웃사이 센터'나 '지자체 층간소음 센터'까지도 고민해 봤지만, 간 일 년을 버텼는데 까짓 거 더 못 버틸까 싶은 오기가 생겼다. 무릇 내 집이 없어서 좋을 때도 있는 법이다. 그 외에는 앞서 말했듯 '묶어놓고 자장가 불러주기'나 '마취총 쏘기'를 포함한 소 위협적인 방법들도 두에 두었었다. 아직 덜 키운 아이가 있어 미처 실행하진 못했지만.


이렇듯 격노하지 않기 위해 내가 안간힘을 쓰는 줄은 모르고, 우리의 광숙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제 이름값을 하느라 고된 몸부림을 치는 중이다. 세상에 어느 누가 미쳐서 난동 부리는 일이 쉽다고만 할까. 불면도 마다하지 않고 제 한 몸 불살라 이 세상에 광숙이가 존재함을 소리와 진동으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이 얼마나 역사적이고 경이로운 순간인가.


감탄을 금치 못하는 순간, 이제는 광식이의 고함도 들려온다. 아무래도 저주파이다 보니 광숙이보단 뭉뚝한 소리다. 다만 울림이 큰 편이라 오컬트 영화 속 악귀를 쫓는 주술처럼 끊임없이 웅웅 거린다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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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호모 사피엔스들에겐 욕이 필요하다. 오늘날의 비속어는 그 옛날 조상들의 슴베찌르개나 새기개와 같이 삶에 필수적인 도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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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부터 사티의 <짐노페디 1번>에서 최유라의 <숲>까지 류별로 틀어봤지만 모두 헛수고다. 반쯤 감긴 눈으로 들야 할 보드라운 선율에 두 광인의 고함이 내리 꽂힌다. 이유도 모른 채 난도질당한 음악들이 처참하게 널브러져 울부짖는다.


그래서 그냥 어쩔 수 없이, 글을 기로 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저들의 고함이 서로를 향한 분노라기보다 자신에게로 향한 힘듦으로 느껴져서다. 어차피 그대와 나는 같은 종족. 서로가 꼭 닮은 두 호모 사피엔스들의 고통이 내 마음에 공명하도록. 그대로 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