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의 감정일지 2

by 한 나강

"사모님, 저기 불 좀 켜 봐요!"

약속시간이 넘어서도 늦는다는 연락 한 통 없었던 양반이 집안에 들어와선 기세 좋게 명령을 내린다. 잘못 들은 건가, 싶기에는 그녀의 목소리가 부서진 각목처럼 선명한 형체를 하고 있다. 생각 없이 휘두른 둔기가 뒤통수를 스치고, 멍해진 머릿속엔 가느다란 가시들이 박힌다. 사과는요?라고 묻고 싶지만 나도 할 말은 없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괘씸한 마음에 벨소리를 듣고도 오 분 동안 문을 열어주지 않았으니.

열 시 반에서 열한 시 사이에 온다고 하면 보통은 열 시 반부터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늘, 어째서 삼십 분을 그냥 보내고 거기에 오 분이 더 지나도록 늦을 거라는 예고조차 하지 않은 것인지 만하면 이해할 수 있지만 이해하고 싶지 않다. 이미 몇 달 전부터 그녀에 대한 마음이 앙칼져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예의라곤 흐르는 물에 을 박박 헹구고 보아도 찾기가 힘들다.

가급적 화살을 나에게 돌리려 했다. 일종의 습관 같은 것인데,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건 언제나 나여서 상대의 미간을 향해 뻗었던 손가락도 제 그랬냐는 듯 도로 오므리길 잘한다. 이래선 안 되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일까 하면서. 종일관 남 탓을 하며 그려놓은 정교한 밑그림에 결국 오만가지 색깔의 자학을 쏟아붓는 이런 미치광이 화풍에는 이제 이골이 다. 오늘은 또 무엇을 잘못했나, 허점을 찾아볼까 하는 사이 아까의 자그마한 가시들이 생살을 파고든다. 왜 이렇게 아픈 건지. 또 그놈의 자격지심이 발동한 건가.

아니, 아니다. 모든 걸 자격지심에 떠넘기기에는 여태 그녀가 보여준 행동이 넘어 불쾌에 닿았던 건 았다. 결벽증 환자라도 되는 양 그녀에 관한 모든 기억들을 말끔히 씻어내고만 싶다. 짙은 속 쌍꺼풀 아래 구렁이처럼 번들거는 새까만 두 눈동자 있다. 갈라진 혀로 하대와 존대를 변덕스럽게 넘나들어 이 어리숙한 표적의 가지런하던 이성을 교란한다. 살랑살랑 흔드는 미소 뒤로 똬리 튼 성미가 보인다. 기분이 좋지 않으니 더 이상 웃지 말라고 말하고 싶지만, 우리의 지난 역사를 알 리 없는 예비 세입자가 안쓰러워 그저 고개만 돌릴 뿐이다.

요즘 들어 발끈하는 일이 잦다. 지근지근 밟혀도 숨어나 꿈틀대던 인간이 제 목소리를 내는 데 혈안이 되어간다. 원래부터 있던 성질머리가 본모습을 보이는 것인데, 나로서는 그 힘을 감당할 재간이 없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모른 체해 봐도 어느새 나의 오른손은 활시위를 턱 끝까지 끌어당기고 있다. 긴 김에 로 쏴버리면 될 것을 살가죽이 벗겨지도록 부들부들 떨면서도 그놈의 때를 기다리며 놓지를 못하니 언제나 고통은 나의 몫이다. 또 부지불식간에 애먼 곳으로 날아가기도 해서 이 고통은 가까운 자의 몫이기도 하다. 런 이유로 더는 괜찮지가 않다. 화는 마냥 가둔다고 해서 가둬지는 것이 아니다. 누가 열을 세라고 했던가. 대체 왜 그걸 세고 앉았나 했더니,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경보를 울릴 시간을 버는 것이다.

지금 화가 나 있다. 계속해서 난다. 앞으로도 날 것이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적어도 내 마음은 법이나 도덕이나 남의 시선 따위를 규범으로 두지 않는다. 지금 나의 영혼이 저 자의 언행을 심판하라 말한다. 오로지 이 자가 느끼기에 저 자가 무례하다면, 한 번쯤은 실토해야 할 성싶다. 설사 이 자가 타고나길 여기저기 찢기고 구멍 난 꼬락서일지라도, 그래서 뒤통수에 이 아릿한 통증이 아무의 탓도 할 수 없는 발적 생채기라 하더라도 말이다. 매번 만날 때마다 전보다 한층 더 질긴 인내를 필요로 한다면, 애당초 독도 없는 능구렁이쯤 잡아다가 혼쭐을 내줄 필요도 있는 것이다. 땅땅땅.


더는 감추지 않을 진짜의 마음을 글로 정성스레 엮어 보내주었다. 상대가 씹어 삼킬 수 있을 만큼 푹 익힌 화(火)를 얇게 저민 예(禮)로 둘러싸 자그마치 열네 줄에 달하는 속 얘기를 적어 문자로 전송했다. 맛있게 먹어줄 리야 없겠지만, 꽤 잘 만들었단 생각이다. 부디 남기지 말고 다 드세요.


누군가는 말했다. 그냥 앞에서 싸울 것이지 소심하게 문자질이나 한다고. 지극히 개인적이라 하더라도 싸움에는 나름의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 (독감 치료제인) 페라미 플루를 맞은 환자에게 타미플루를 처방해놓고도 안하무인으로 구는 의사라든가, 아이에게 먹일 약을 잘못 설명하고도 나 몰라라 짜증으로 일관하는 약사라든가 하는 인물들에게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살모사에 빙의하곤 했다. 반면 지금처럼 상대의 행위가 실체가 없는 마음에 불편함을 야기하는 그친다면 얘기가 다르다. 모든 사건에는 증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물 증거도 없이 내 속이 이리도 다쳤소라고 하면 그냥 닥치라고 할 것이 뻔하다. 그래서 대개 여러 번을 참고 생각하다 계치를 넘어설 즈음 욕먹을 각오를 하고 역공한다.


유달리 참을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틀렸을까 봐 겁이 나서다. 그 시작도 이유도 알지 못하지만, 나는 내 감정을 잘 믿지 못한다. 기분이 나쁘면 인상을 구기는 것이 맞는지를 묻고, 눈물이 나면 우는 것이 맞는지를 묻고, 욕을 하고 싶으면 미워하는 것이 맞는지를 따져 묻는다. 아무래도 틀린 건 나라는 생각에 끓어오르는 모든 감정들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러던 인간이 얼마 전부터 있는 그대로의 분노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답장을 읽지 않았다. 돌아오는 답이야 뻔할 것이고 구태여 판도라의 상자를 두 번 열 생각은 없다. 말했으면 되었다. 그걸로 되었다. 적어도 오늘은 내 손을 들어주었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칠 일은 없을 것 같다.


이렇듯 성질을 내고도 후회가 없으려면 화에 담금질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지금 괴롭다는 것을 알고,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주 웃을 줄 알아야 한다고 다짐하던 변(便) 같은 날들을 지나, 이제는 겁게 달아오른 정신을 거머쥐고 풀쩍 그곳을 뛰쳐나다. "나 지금 기분이 변 같소."라고 큰소리로 외치지는 못하고 조용히 상대의 귓가에 읊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