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껐다. 내게 묻지도 않고. 심지어 책상 앞에 서서 다이어리를 읽고 있었는데, 자기 집인 양 스위치를 내렸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보이지 않는 글자들을 더듬었다. 다시 켜달라고 할까. 왜 마음대로 껐느냐고 따질까. 그냥 내가 켤까. 이 좋은 분위기를 망치려나. 그들은 이 집의 야경을 보며 한창 떠드는 중이었다. 여자는 시뻘겋게 칠한 입술을 놀리느라 바빴다. 어둠 속에 뻣뻣하게 서있는 세입자의 기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후로도 여자는 우리 집 화장실 문과 비상대피소와 찬장과 수납장 등을 여는 동안 나에게 단 한 번도 양해를 구한 적이 없었다. 여자의 눈에 내가 보이지 않거나,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 이곳이 모델하우스가 되어버린 걸 수도 있었다. 활짝 열려있는 화장실 문을 닫았다. 다 닫지 않은 채 어정쩡하게 놓아둔 베란다 창문도 닫았다. 다소 묵직한 감정이 실렸다. 증기 기관차처럼 열기가 올랐고, 어디론가 내달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여자는 뒤늦게 나를 사모님이라 부르며 찾았다. 중문을 어떻게 닫는 거냐며 물어왔지만 안방에 들어앉아 안 들리는 척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갑자기 떠안게 된 이 형언하기 힘든 기분을 내려놓지 못한 채였다. 어디다 어떻게 두어야 할지 몰랐고,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몰랐다. 단지 내가 선 방바닥이 평소보다 더 차가웠고 앙다문 턱은 점점 저려왔다. 여자는 아직도 중문을 닫지 못해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안쪽으로 완전히 밀어 넣는 구조라 예비 세입자들은 중문이 없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하는 수 없이 물 먹은 듯 늘어지는 발을 끌고 여자에게로 다가갔다.
처음의 알록달록했던 말투는 무채색으로 덧입혀졌다. 직접 문을 당겨 보이는 시늉조차 건너뛰었다. 다행히 한 번에 내 말을 알아들은 여자는 드디어 중문을 닫았다며 기분 좋은 얼굴을 했다. 나는 그 웃음을 보기가 싫었다. 부엌으로 가 그들 때문에 늦어진 저녁을 준비했다. 반찬을 꺼내는 도중 여자가 또 사모님을 찾으며 이제 가보겠다고 말했다. 친절한 배웅 따위는 어둠 속에서 물 건너 갔다. 이 정도 했으면 세입자로서 할 도리는 다 한 것이다. 그리고 현관문이 매섭게 쾅 하고 닫혔다. 대찬 작별인사에 나 역시 중문을 쾅 하고 닫아주었다. 부동산 업자인 여자와 전 고객이었던 세입자의 참 아름다운 만남이었다.
일 년 전 이 집을 보러 왔을 당시만 해도 여자는 더없이 친절했다. 우리 부부에게도 그랬지만, 당시 여기 살고 있던 집주인에게도 똑같이 예의를 차렸다. 온 집안에 불을 켜놓고 기다리던 그에게 혹시 불을 꺼도 되는지를 아주 조심스레 물었었다. 그의 허락 하에 여자는 거실 등 스위치를 살포시 눌러 우리에게 야경을 보여주었다. 온갖 문고리들을 잡아당길 때마다 집주인에게 양해를 구하며 모난 곳 없는 웃음을 또르르 흘렸었다. 그날 여자가 보였던 물풀 같은 부드러움은 오늘에 이르러 나이 든 느티나무 껍질만큼이나 거칠어져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보는 것은 불을 켜고 끄는 순간만큼이나 찰나에 이루어진다. 아무리 웃는 얼굴을 하고 듣기 좋은 소리를 해도 저도 모르게 숨 하나에 뱉어지는 진심이란 것이 있다. 오늘 여자가 드러낸 마음에 찔려 움찔했고, 조금이지만 피도 보았으며, 내내 울컥하는 속을 숨기느라 대신 분노를 택했고, 그 끝에는 결국 움츠러든 심정만이 남았다.
세입자가 죄인인가 하는 모난 소리만 머릿속에 맴도는 지금 여태 헤아리지 못한 심사를 빤히 들여다본다. 혼자서 활활 타는 육중한 덩어리를 이제는 손바닥 위가 아닌 반 발짝 너머에 놓아둔다. 가만가만 그것을 만지며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나씩 해체한다. 무시로 인한 억울함이거나 서글픔이거나 또는 존재를 확인받으려 튀어나온 뿔따구이거나 악다구니거나. 한 마디로 압축할 수 없이 버썩 마른 채 풀풀 날리는 기억들이 있다. 언제 어디서 느껴보았던 것들인지 알 법도 하지만 더는 헤집지 않는다. 오늘은 피곤하니까.
한편으론 신기루와도 같은 것에 너무 집착하는가 싶다. 이 마음 말이다. 소나무처럼 기세 좋게 하늘을 찌르다가도 순식간에 모든 걸 늪으로 뒤덮어버리는 곳이자 산들바람에 귀엽게 흔들리던 강아지풀을 하루아침에 태풍으로 짓밟아버리는 곳이다. 어느 하나로 정할 수 없는 마음의 모양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내일과 오늘도 다르다. 결국엔 내 심정이 상했다 한들 어찌 그 하나만 붙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언젠가부터 그랬다. 누군가에게 상처받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혼자서 퍼르르 떨며 발작하다가도 방전된 배터리처럼 일순간에 떨림이 멎곤 했다. 새까만 이명 속에 갇힌 인간은 이제 밖을 볼래야 볼 수 없다. 너를 아는 것만큼이나 나를 아는 것 또한 중요하단 생각일까. 실은 훨씬 더 중요하단 걸 알아서일까. 그 시점엔 상대가 왜 나를 그렇게 대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단지 지금껏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며 그와 똑같은 행동을 한 적은 없는지 내게 묻는다.
혹시 나는 누군가가 선 자리에 불을 끄지 않았던가. 눈앞에 버젓이 존재하는 이들을 못 본 척하진 않았는가. 상대가 홀로 삭이지 못한 울분을 나 몰라라 고스란히 되받아친 적은 없었는가. 그래서 나는 이렇게 소리칠 자격이 있는 건가.
여전히 화는 난다. 그토록 맹렬하게 타오르는 것을 맨손으로 다시 쥐기도 한다. 내게서 난 것을 마음대로 버릴 수도 없어 난감하다. 하여 그지없이 뜨거워진 마음에 찬물을 붓는다.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 동동 구르는 나를 식힌다. 적어도 이 손가락으로 포위망에 걸려든 그 한 사람만을 가리키진 않겠다고 다짐한다.
가만히 앉아, 드러난 지반이 전부라는 그 확신의 균열을 기다린다. 평생에 걸쳐도 다 정리하지 못할 겹겹이 쌓인 장면들. 그로부터 전해지는 떨림과 붕괴. 두서없이 떨어져 나간 조각들이 허연 먼지를 일으키며 갖가지 형태를 드러낸다. 그래 봐야 자존심, 자존심, 또 하나의 자존심일 뿐. 다쳤던 나의 마음들이 이때다 하고 서로 아우성친다. 오늘만큼은 이것들이 참 시끄럽고 성가시다. 누가 좀 가져가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