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몸뼈가 다 녹아내렸다고 했다. 어금니 중엔 제일 튼튼하다고 여겨 신경도 안 쓰던 것이 나 몰래 천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육 개월 전 검진 때만 해도 별 말이 없었는데, 무슨 이유로 이렇게 급하게 내려앉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생명의 붕괴는 이렇듯 소리 소문도 없이 찾아오는 모양이다. 다만 전투에서 지고도 허리를 꼿꼿이 세운 전사의 시체처럼 그 당당한 모습은 이전과 다를 바 없다.
살다 보면 포기해야 할 일들이 늘어난다. 특히나 생명체인 만큼 그것의 몰락과 해체는 이미 예정된 일이다. 치아만 해도 그 조짐이 하나 둘 보이는데, 뼈 없이 버티는 중인 어금니(일식이)와 금이 간 어금니(이식이), 때운 면적이 넓어 시린 어금니(삼식이) 등이 그렇다. 헐거워진 경첩처럼 다시 죄어 원래대로 만들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당황하고 억울해하는 건 잠깐에 불과하다. 시간은 내가 아직 처리하지 못한 감정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밀려든다. 그런데 비단 시간만 그럴까. 음식도 매한가지다.
왼쪽이 아프면 오른쪽에 더 힘을 줘 씹고, 그 오른쪽마저 시려서 오금이 저릴 땐 차고 뜨거운 음식을 식탁 위에 올려두곤 가만히 기다린다. 음식이 적정한 온도를 찾으면 들쑥날쑥하던 나의 마음도 언제 그랬냐는 듯 평형을 이룬다. 어디까지나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문제는 내가 그 시간을 견딜 만큼 성격이 느긋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대개는 차고 뜨거운 걸 그대로 밀어 넣어 잔뜩 예민해진 삼식이의 비명을 먼저 듣는다. 이어서 묵언 수행하며 조용히 사라져 가는 일식이와 호두처럼 깨어질 수 있는 이식이를 의식하며 이보다 더 불안할 수 없게 저작운동을 한다.
벌써 몇 달이 지났지만 여태 기울어진 마음으로 음식을 받아들인다. 좀 전에도 냉장고에서 갓 꺼낸 마늘종 무침을 좌우로 굴리다가 결국 한가운데 모아선 잠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를 한탄하는 시간을 가졌다. 두더지인 양 입을 오므려 작은 어금니로 어떻게든 해결하려 애를 쓰다가, 이렇게까지 해서 먹고살아야 하는가를 끝없이 자문했다. 언젠가 휑하니 드러날 민둥산 같은 잇몸이 눈앞에 그려진다.
때로는 그만하고 싶다. 먹고 마시고 닦고 헹구는 행위 하나하나가 통증과 불안의 연속이다. 다만 이런 생각도 반나절을 넘기지는 못한다. 어느새 나는 먹을 것을 입에 물고 있다. 보통은 눈썹 앞머리에 수 겹의 주름을 잡고서, 고작 이 아픈 것 하나에 생사를 들었다 놨다 하는 불평불만을 튀겨 낸다. 오복 중 하나를 가진 뭇 지인들의 튼튼한 치아를 떠올린다. 그게 누가 됐든 내가 원하는 걸 이미 가진 자가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내가 이런 사람인데 아닌 척하는 건 불가능하다. 대신 이렇게 생겨먹은 스스로를 고백하고,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을 감상한 뒤, 보다 못해 생각의 전환을 기대하는 건 가능하다. 이를테면 균열이 나고 뿌리를 잃은 것이 단지 어금니가 아닌 나 자신인가. 그래서 하루 온종일 억울함과 측은함 사이를 오가며 평형을 이루지 못해 안달복달하는가. 아,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못 가진 것을 향한 집착으로 바라 마지않는 어금니를 쫓는 중인가. 내가 원하고 또 원하는 것은 비단 어금니 하나만이 아님을 잘 알 텐데.
스토커와 다를 바 없다. 원하는 것들을 손에 넣으면 전보다 더 행복해질 것만 같다. 행복한 나를 만들겠다고 역설적으로 여기에 있는 자신을 버리고 간다. 매번 스스로를 놓는 이유는 그것이 꼭 짐처럼 느껴져서다. 아무리 봐도 나의 이상형은 내가 아니다. 가진 것에 대한 안도보다 잃은 것에 대한 울분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한다. 오늘도 온전한 내가 될 수 없는 나는 손에서 무언가 빠져나간 것만 같아 불안하다. 가진 것이라곤 허물뿐인 어금니도 이토록 굳건하게 섰는데, 그보다 백배는 더 큰 것이 징징거리느라 하루를 다 써버린다.
거울 속 어금니들을 바라본다. 이제 가야 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주제에 그 자태가 자못 꿋꿋하다. 성치도 않은 것들이 옹기종기 붙어선, 오늘도 제 몫들을 하느라 부지런하다. 비어버린 손을 원망할 겨를이 없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미련을 갖거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 버리려는 마음조차 없다. 본래의 자리에서 남아있는 날들을 저 나름의 방법들로 이겨낼 뿐이다.
겨우 어금니 하나를 잃고도 앓아눕는 인간이다. 그렇기에 더 잊지 않으려 한다. 아무리 많은 걸 잃더라도 나를 잃는 것보다 더 큰 상실은 없다. 기다리라고 한 곳에 변함없이 서있는 자신을 끝끝내 모른 체하지 말기를. 그러다 잠시 눈 돌린 사이 텅 비어버린 그 자리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