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가 내게 말한다

성장 - 내 마음이 나를 이끄는 방식

by 나검하랑

34. 하루를 다독이는 작은 위로의 순간


빨래를 개다가 그대로 소파에 쌓아둡니다.

'내일 입을 건데, 뭐. 결국 또 쌓일 빨래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고, 다시 열었다 닫습니다. 먹고 싶은 게 없어서가 아니라 뭘 먹어도 맛이 없을 것 같아서입니다. 샤워를 하려다가 그냥 침대에 눕습니다. '이따가 하지 뭐', 머리를 감아야 하는데 그것조차 귀찮습니다. 친구에게 온 카톡을 읽고도 답장을 미룹니다.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어서.

"00야. 뭐 해?"라는 짧은 물음에 "응, 그냥 그래"라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핸드폰을 엎어둡니다.

장바구니에 담아둔 물건들을 구경만 합니다. 사고 싶은 건지,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강가를 걸으려고 신발을 신다가도 다시 벗습니다.

'나가봤자 달라질 것도 없는데'라는 생각이 발목을 잡습니다. 좋아하던 드라마를 틀어놓고도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책을 펼쳐도 같은 문장을 서너 번 읽고 있습니다. 별일 아닌 것들인데, 요즘은 이런 사소한 것들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릅니다. "무슨 일 있어?" 아니요, 딱히 큰일은 없습니다. 그게 더 답답한 거예요. 설명할 수 없는 이 무게감. 잘못된 것도 없는데 괜찮지 않은 이 기분. 그래서 더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런 회색빛 순간들, 당신만 겪는 게 아닙니다. 누구나 이런 날들을 살아갑니다.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무거운 날, 모든 게 귀찮은 날, 나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날. 그런 날에도 우리는 작은 빛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집 근처에 강변이 있습니다. 강변을 걸어야지 하면서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다가 날씨도 좋고 걷고 싶다는 생각에 나갑니다. 강가를 천천히 걷는데 따뜻한 햇살, 생각보다 차갑지 않은 바람, 햇살에 반짝이는 노란 물결을 보고 있으니 문득 미소가 지어집니다. 관심을 준다는 것, 관심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요즘 기분 괜찮아? 힘들어 보이고 피곤해 보이기도 해."

한 친구가 조심히 물어봅니다. 어떤 조언을 하는 것이 아닌 그저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나도 예전에 그런 적 있었어. 아무것도 안 하고 싶고, 계속 피곤함을 느낀. 근데 지나고 보니까 그땐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봐. 그냥 그런 날이었던 것 같아."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런 노란빛 순간들이 내게 말을 합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당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작은 관심 하나, 짧은 말 한마디가 제 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온기가 됩니다. 타인에게 건네는 위로, 내가 누군가에게 했던 따뜻한 말들이 언젠가 힘들 때 나를 지탱해 주는 기억이 되기도 합니다.


강변을 걸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강물은 늘 그 자리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됩니다.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 더 나아가야 한다는 조급함이 늘 제게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물결을 보면서 자신만의 속도로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멋있구나, 여유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꼭 빠르지 않아도 돼. 조급하게 하지 않아도 돼. 자신만의 페이스대로 할 걸음씩 움직이면 돼.' 타인에게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 제 자신에게는 잘 되지 않음과 어떠한 성과가 나지 않은 것에 대해 자괴감을 가지고 채찍질을 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괜찮아, 천천히 해도 돼"라고 친구에게 했던 말.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라고 동료를 다독였던 순간. 그때는 그저 상대를 위한 말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내가 나 자신에게도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습니다.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 위로가 필요했었나 봅니다. 상담을 하며 느낍니다. 또 배웁니다. 어떤 말이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지, 어떤 침묵이 때로는 더 큰 위로가 되는지. 그리고 그 배움이 파란빛 강물처럼 조용히 내 안으로 흘러들어와, 나를 위로하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누군가를 위로했던 내가, 결국 나 자신도 위로받을 자격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때론 너무 나 자신만을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나 자신을 위한 위로는 이기적인 것이 아님을 알아차립니다. 나를 돌보는 것이 결국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집으로 가서 가족들을 만납니다. "엄마, 오늘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가 하는 말이...." 무언가를 함께 나누고 싶어 합니다. 그 조잘거리는 모습이 예쁩니다. 때로는 작은 한 마디에 감정이 상하기도 하고 답답하고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한 가족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서로에게 이야기하며 감정을 알아달라고 할 때에는 마치 분홍빛 석양처럼 포근한 온기로 서로를 감싸줍니다. 힘들 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무너져도 받아줄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일어설 용기가 됩니다. 가족에게 주는 위로, 가족에게 받는 위로도 모두 소중하답니다. 서로를 보살피며 함께 성장합니다.




우리의 하루는 강물처럼 흐릅니다. 회색빛 안갯속을 지나가기도 하고, 노란빛 햇살을 받기도 하고, 파란빛 고요함 속에서 쉬기도 하고, 분홍빛 온기로 따뜻해지기도 하고, 초록빛 생명력으로 다시 피어납니다.

나 혼자서는 버티기 힘들었던 날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따뜻한 말이,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들이 모여 견뎌내는 나를 만들었습니다. 타인이 건네는 작은 관심, 나 자신에게 주는 다정한 말, 가족이 보내는 무언의 지지, 이 모든 위로가 모여 우리를 지탱합니다. 힘들었던 나의 경험은 누군가를 이해하는 힘이 되고, 타인에게 받았던 따뜻함과 위로는 다시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따뜻함의 온기가 되기도 합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며,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당신을 생각하고 있고 당신이 힘들 때 기댈 곳이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를 위로하며 하루를 살아갑니다.

내일 아침, 다시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더라도 괜찮습니다. 강물처럼 그저 흐르면 됩니다. 타인의 위로를 받고, 나를 돌보고, 가족과 함께하며.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면 됩니다.

당신의 하루를, 당신이 주고받는 모든 위로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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