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관계 속 성장- 나를 잃지 않는 법
"엄마, 내일 학교 준비물 사러 같이 가줘"
"이번 주말에 시댁 가야 하는데 애들 좀 봐줄 수 있어?"
"이번 모임 준비 당신이 맡아줄 수 있지?"
거절하고 싶은데,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그래, 알았어"입니다.
그러고 나서 후회하죠.
"왜 또 그랬을까. 나도 힘든데."
상담실에서 만난 A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거절을 못 해요. '안 된다'라고 하면 상대가 실망할까 봐, 나를 이기적이라고 생각할까 봐 무서워요. 그래서 항상 '미안해, 근데...'로 시작하게 되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거절을 '미안한 일'로 여깁니다.
특히 부모, 배우자, 친구처럼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그렇죠.
하지만 여기서 질문 하나를 던져봅니다.
"당신이 거절할 때 느끼는 미안함은, 정말 당신의 것인가요?"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느끼는 미안함은 상대의 실망이나 불편함을 미리 걱정하는 것입니다.
상대는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우리가 먼저 "이 사람이 속상해하겠지"라고 예상하고 미안해하는 거예요. 심지어 상대가 "괜찮아"라고 해도, 우리는 계속 미안해합니다.
"진짜 괜찮을까? 내가 너무 한 거 아닐까?"
한 어머니는 고등학생 아들이 밤늦게 "엄마, 배고파. 뭐 좀 해줘"라고 할 때마다 일어나 음식을 만들어줬습니다. 피곤하고 힘들어서 짜증이 났지만,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힘든 아이를 생각하면 그냥 해주게 되더라고요.
문제는, 음식을 만들면서도 표정은 일그러져 있고 그릇을 툭툭 놓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겁니다. 말로는 "알았어"라고 하면서, 몸과 얼굴로는 "나 지금 엄청 짜증 나"라고 말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어느 날, 너무 힘들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냉장고에 김밥 있는데, 그거 챙겨 먹을래?"
아들의 반응은 의외였어요. "네" 하고는 아무렇지 않게 스스로 챙겨 먹더라고요.
이 어머니가 깨달은 건, 거절이 관계를 망치는 게 아니라 '짜증 섞인 허용'이 오히려 관계를 해친다는 것이었습니다. 차라리 솔직하게 "오늘은 힘들어"라고 말하는 게, 억지로 하면서 얼굴 찌푸리는 것보다 서로에게 훨씬 나았던 거죠. 이 어머니가 깨달은 건, 거절이 관계를 망치는 게 아니라 '계속된 억지 허용'이 나를 망친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부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B 씨는 배우자가 주말에 "친구들 만나고 올게"라고 할 때마다 속으로는 불편했지만 "그래"라고만 했습니다. '거절하면 싸울까 봐' 걱정했거든요. 하지만 쌓인 불만은 결국 다른 순간에 폭발했습니다. 사소한 일로 크게 싸우고 나서야, B 씨는 알게 됐어요.
"내가 필요한 걸 말하지 않은 게 문제였구나."
다음번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주말에 좀 쉬고 싶어. 이번 주는 네가 가기 전에 우리 같이 애들 돌보는 시간을 가지면 안 될까?"
배우자는 뜻밖에도 "그래, 미안. 난 네가 괜찮은 줄 알았어"라고 답했습니다.
거절은 상대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나를 존중하는 행위입니다.
먼저, 거절할 때 "미안해"를 습관처럼 붙이지 마세요. 대신 이렇게 말해보세요.
"지금은 어려울 것 같아"
"이번엔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아"
당신이 미안해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미안해"를 남발하면, 거절 자체가 잘못된 행동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당신은 잘못한 게 없어요. 단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없다고 말한 것뿐입니다.
다음으로, 이유를 길게 설명하려 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말이야..." 하며 변명처럼 늘어놓으면, 상대는 "그럼 이렇게 하면 되잖아"라며 설득을 시도합니다. 간결하게 "지금은 내가 힘들어서 어려워"라고 말하면 됩니다. 그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아요.
마지막으로, 거절 후 상대의 반응을 내가 책임질 필요는 없습니다.
상대가 실망할 수도, 서운해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건 상대의 감정이지, 당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진심 어린 태도로 "미안하지만 지금은 안 될 것 같아"라고 전하는 것까지입니다. 그 이후는 상대가 자기감정을 처리할 몫이에요.
거절은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면서도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당신이 계속 "예"라고만 하면, 언젠가는 지쳐서 관계 자체를 피하게 됩니다. 하지만 필요할 때 건강하게 거절할 수 있다면, 관계는 오히려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어요.
오늘부터 연습해 보세요. 미안하지 않아도 되는 거절을.
당신에게는 "아니요"라고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