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설계하는 심리루틴

3부. 관계 속 성장- 나를 잃지 않는 법

by 나검하랑

13. 상대의 감정, 나의 책임이 아닌 것들


"선생님 말씀 들으니 기분이 안 좋아요."


상담 중에 이런 반응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필요한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상대는 불편해합니다.

그 순간 제 안에서 작은 동요가 일어납니다.

'내가 너무 직설적이었나? 좀 더 부드럽게 말할 걸 그랬나?'


상담사인 저도 이렇습니다.

내가 한 말에 대한 상대의 반응을 살피느라, 정작 내 감정보다 상대의 감정을 먼저 챙기게 되는 거죠.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나는?'


상대의 감정에 흔들릴 때 흥미로운 건, 며칠 뒤 그 분이 다시 상담실에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겁니다.

"선생님, 그때 말씀 듣고 처음엔 정말 기분 나빴어요. '제가 그 정도인가요?'라는 생각도 들고요. 근데 집에 가서 계속 생각해 보니까, 다 맞는 말이더라고요."

저는 필요한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상대는 불편했어요. 그리고 그 불편함을 시간을 두고 스스로 소화했습니다.

만약 제가 그 순간의 불편한 반응을 보고 "아, 내가 잘못 말했구나"라며 제 방식을 바꿨다면 어땠을까요?

정작 필요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건 비단 상담실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초등학생 아들을 둔 한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아이가 친구 문제로 힘들어해서 '네가 먼저 다가가보면 어떨까?'라고 조심스럽게 말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울면서 '엄마는 맨날 내 탓만 해'라고 하더라고요.

그 순간 너무 미안해서 '아니야, 엄마가 잘못 말했어'라고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제 말이 틀린 건 아니었거든요." 이 어머니는 아이에게 필요한 조언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그 순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감정적으로 반응했어요. 그런데 엄마는 아이의 그 감정을 보고 '내가 잘못했구나'라며 자신의 말을 거둬들였습니다.


부부 관계도 비슷합니다.

"여보, 나는 주말에 좀 쉬고 싶어"라고 말했을 때, 배우자가 "당신만 힘들어? 나도 힘들어"라며 불편해한다면요?

많은 사람들이 이 순간 자신의 필요를 거둬들입니다.

'내가 이기적이었나? 상대도 힘든데 내가 너무했나?' 하면서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도 상담하면서 감정적으로 상처받을 때가 있습니다.

진심을 다해 이야기했는데 "선생님은 저를 이해 못 해요"라는 말을 들을 때, 혹은 "상담받아도 소용없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을 때.

순간 마음이 무너집니다.

'내가 부족한가? 더 잘했어야 했나?'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습니다.

상대의 그 반응은 '나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그 사람이 지금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을요.

그 사람은 지금 힘들어서, 불안해서, 혹은 변화가 두려워서 그런 말을 한 겁니다. 그게 저에 대한 진짜 평가가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연습합니다.

'이 사람의 감정은 이 사람의 것이다. 나는 내가 해야 할 말을 했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상대의 감정은 내가 책임질 부분이 아니다.'

이건 냉정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건강한 경계입니다.


상대의 감정을 존중하는 것과, 상대의 감정에 책임지는 것은 다릅니다.

존중한다는 건, "네가 지금 불편하구나, 힘들구나"라고 인정하는 겁니다.

하지만 책임진다는 건, "네가 불편하니까 내가 내 말을 바꿔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필요한 조언에 울먹인다고 해서, 그 조언을 거둬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엄마 말이 지금 듣기 힘들지? 그래도 엄마는 네가 이 상황을 잘 해결했으면 해서 한 말이야."


배우자가 "나는 주말에 쉬고 싶어"라는 말에 불편해한다면, 그 불편함을 인정하되 당신의 필요를 거둬들이지 마세요. "당신도 힘든 거 알아. 그래서 우리 둘 다 좀 쉴 수 있는 방법을 같이 찾아보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상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가 제 말에 불편해하더라도, 필요한 이야기는 해야 합니다. 대신 "이 말이 듣기 힘드실 수 있어요. 그래도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이라고 전달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상대의 감정을 존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감정을 대신 책임질 필요는 없습니다.

필요한 말을 했을 때 상대가 불편해한다면, 그건 상대가 그 말을 소화하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에요.

오늘부터 연습해 보세요.


"이 감정은 누구의 것인가?"


그 질문이, 당신을 조금 더 자유롭게 만들어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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