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휴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성향이 매우 다른 우리 부부는 우연한 기회에 스킨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따게 되었고 그 이후로 다이빙으로 휴가기간을 보내고 있다. 첫 다이빙이자 교육 다이빙을 사이판에서 받게 되었는데 그때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면서 아침과 저녁을 해 먹었다. 수영도 못하는 우리 부부는 정신이 없었다. 정신없이 바닷물에서 적응하랴, 이론적인 것을 적용하랴 머리가 아픈데, 렌트를 해서 운전을 해야 했고, 어느 정도 한국에서 밑반찬을 만들어갔지만 밥을 해 먹고 설거지를 해야 했으며, 래시가드 등 빨래도 해서 널어야 했다. 이것은 휴가인가 무엇인가. 물론 나라마다 다이빙 분위기가 다 다르므로 시야가 최고인 사이판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몸이 고되긴 고되었었다.
흔히들 황제 다이빙이라고 하는 필리핀의 다이빙 문화는 좀 다르다. 사이판에서는 장비 체결 및 슈트 세탁도 직접 해야 하지만, 필리핀에서는 거의 1부터 10까지 현지 스태프들이 다 해준다. 그래서 필리핀으로만 계속 오게 되는 묘한 끌림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침 7시 50분이 되면 필리핀 현지 주방장이 차려주는 한식 조식을 먹는다. 밥을 다 먹어 갈 때쯤 되면 후식으로 과일을 주고, 원두커피나 믹스커피는 요청하면 제공해준다.
아침을 먹고 나서는 각자 방으로 돌아가서 나갈 채비를 하고 8시 50분까지 브리핑 룸으로 집합한다. 그날 어디를 가는지, 오늘 바다 상황은 어떤지, 서로의 의사소통을 위한 수신호등을 점검하고 배에 탑승을 하면 된다. 웬만한 장비들은 현지 스태프들이 이미 세척 후 건조까지 해서 배에 실어놓았으므로 내 한 몸만 살포시 실으면 된다.
오전에 나가서 2번의 다이빙을 하게 되는데 우리는 부부 둘이서 갔지만 배에서 팀 구성이 이루어진다. 자연스럽게 삼삼오오 각자 온 사람들이 어울리게 되는 환경설정이다. 배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약 30분 정도 배를 타고 나간다. 1회 다이빙을 40여분간 하고 출수하고 난 뒤 간단하게 간식을 먹으면서 30분 이상을 쉰다. 어느 정도 쉰 다음에 2회 다이빙을 40여분간하고 다시 리조트로 돌아온다.
리조트에 돌아오자마자 바닷물만 대충 씻어내고 물이 떨어져도 상관없는 외부 식당에서 점심을 곧바로 먹는다. 이게 대략 12시 30분 정도 되는 것 같다. 밥을 먹고 나서 1시간 이후인 1시 50분쯤 오후 다이빙을 하기까지 잠시 각자의 시간을 갖는다. 누군가는 밖의 썬배드에 누워 책을 보기도 하고, 멍을 때리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나는 후딱 숙소로 들어와서 초스피드로 샤워를 하고, 탈수기로 래시가드의 물기를 제거한 후 1시간을 널어놓으면 그새 마른 래시가드를 입을 수 있게 된다.
한국 사람보다 더 한식을 잘 만드는 필리핀 주방장 덕분에 매번 감탄하면서 밥을 먹는다. 점심은 거의 분식류이고, 출수하고 난 다음에 먹기 때문에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또 과일 대신 셰이크가 제공되는데 원래는 망고를 원 없이 먹는데 올해는 망고 가격이 비싸서 ㅠㅠ 다른 과일들로 대체되고 있어서 슬프다. 내 사랑 망고가 그립다 ㅠㅠ
리조트에 돌아오면 어느덧 방은 깨끗하게 싹 정리가 되어있다. 수건교체및 화장실 청소, 배드 정리등 깔끔모드로 정리되어 있으니 쉬러 들어오면 마음까지 편해진다.
잠시 쉬면서 오후 다이빙을 준비하고 1시 50분쯤 브리핑 룸에 모였다가 2시에 출발해서 다이빙을 40여 분간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면 3시 30분 경이된다. 오전보다는 가까운 바다로 나가고 1회 다이빙만 하기 때문에 금방 돌아온다. 리조트로 복귀하면 현지 스태프들이 슈트와 장비 세척을 해주니 우리는 그냥 방으로 들어가서 본인들의 래시가드만 세탁하고 샤워하면 된다. 저녁 먹는 5시 50분까지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출장 마사지사를 예약해서 마사지를 받거나, 해가 지는 것을 보거나, 방에서 편하게 쉬면 된다. 나는 주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몸은 노곤 노곤하지만 밤에 자야 꿀잠을 잘 수 있기에 이 시간에 낮잠을 자지는 않는다.
에너지 소모가 꽤 되는 다이빙이 끝나고 난 후의 먹는 저녁은 정말이지 꿀맛이다. 하긴 솔직히 내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누군가가 차려주는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맛이 없을 수가 없는데, 정말 한국보다 더 맛있다. 거의 저녁에는 고기가 메인으로 나오고, 오늘 저녁에는 요즘에는 꽤 비싸다는 망고가 나와서 원 없이 먹었다. 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지 스탭에게 얘기하면 리필을 해주니 눈치 보지 않고 더 먹어도 된다.
가끔은 같이 온 일행끼리 술을 마시거나 얘기를 하기 도하지만, 파티가 있는 다른 샵과는 다르게 10시까지 모임을 정리해야 하는 이 샵은 조용한 편이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좀 아쉬운 면이 있을 수 있으나 우리같이 조용하게 쉬고, 책 읽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취향저격이다. 오늘은 같은 테이블에 앉은 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느냐고 식사시간이 1시간 걸렸지만, 평소에 우리 부부끼리 먹을 때는 20분 내에 밥을 후딱 먹고 숙소로 가서 자유시간을 만끽하는 편이다.
여기는 필리핀 마닐라에서도 차를 타고 3시간 정도 더 이동해야 하는 "아닐라오"라는 시골 동네인데 주변에 갈만한 곳이 전혀 없다. 픽업 차량 외에 교통수단도 별로 없어서 자발적 고립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거의 인천공항에서 마닐라로 이동, 마닐라에서 픽업차량으로 아닐라오로 이동해서 다이빙을 즐기다가 다시 픽업 차량을 타고 마닐라 공항으로 이동 후 인천공항으로 이동하는 Door to Door 시스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온전히 다이빙에 몰입하고, 쉬는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필리핀 현지인 스텝들과 가끔 농담을 주고받고, 제공되는 밥을 먹으면서 우리는 자발적으로 이 리조트에 고립되어 있는데 너무 행복하다. 쇼핑도 안 하고, 관광도 안 하지만 우리의 만족도는 최고이다. 왜냐하면 바닷속에 볼게 너무 많고, 방해받지 않고 쉴 수 있으며, 크게 신경 쓸 일이 전혀 없으니 릴랙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아직 초보 다이버로서 이제 겨우 51 로그를 넘고 있지만 이곳에서 63까지 채우게 된다. 장비도 하나 없고 모든 것을 렌털로 해결해야하지만 덕분에 항공 티켓을 끊을 때 수화물이 없는 티켓을 끊어도 상관이 없다. 심플하게 짐을 싸서 Door to Door로 여기에 오게 되면 모든 게 해결되니 달라만 들고 오면 끝이다 ㅋㅋ
여행이든 휴가를 가려면 누군가가 계획을 짜야하고, 일정 조율을 해야 하고, 어디를 갈 것인지 사전조사를 해야 하는 등 수고가 따른다. 그런데 휴양이 목적이라면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조용히 쉬고, 다이빙을 배우고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고 '이게 휴가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실지도 모르지만, 다이빙계에서는 평범한 일상이다. 우리는 바닷속을 보는 게 가장 큰 관광이고 보람이기에. (바닷속 사진은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