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회사의 한국화
외국계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 (8편)
그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는 커뮤니티가 인기였다. 우리 회사에 대해 많은 직원들이 '외국계 회사지만 한국인 패치 완료'라는 평가를 한 것을 보고 여러 생각들이 들었다. 당연히 한국에서 운영하는 회사인데 이 직원들은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외국계 회사가 한국에서 운영을 오랫동안 하다 보면 흔히 한국화가 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문점이 생기는데
1. 그들이 생각하는 외국계 회사에 대한 기대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2. 한국화가 된다는 것이 왜 부정적인 것인가 라는 것이다.
(약간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무턱대고 한국은 이래서 안돼, 라는 말을 하는 것과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는 것이 예전에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했던 한국의 패배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일본인들은 영악하게도 한국인들이 스스로 자아비판을 하도록 브레인워시를 했다고)
나 역시 외국계 기업에 대한 기대는 있었다. 한국 회사에 비해 좀 더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해주고 대화가 열려있다. 하지만 지원부서에서 비즈니스 운영을 하다 보니 한국화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일하는 직원들이 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들이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의 병가 시스템은 다른 외국 지사들처럼 직원들이 아프면 심플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연차와 별개로 운영되도록 초기 세팅을 했었다. 말 그대로 직원을 믿는 것이다. 타 회사의 경우 병가는 무급이지만 우리 회사는 급여를 일부 지원해 준다. 1, 2년 운영을 해 보니 어느 순간 이 시스템은 더 이상 아픈 직원들을 위한 복리후생이 아니라 '사용하지 않으면 바보'라는 말이 직원들 사이에 돌면서 아프지도 않은데 악용하는 사례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인사팀은 의사 진단서를 제출하라는 조항을 추가할 수밖에 없었고 직원들은 우리를 믿지 못하냐며 항의하였다. (병가제도의 한국화)
물론 한국 매니저들이 많아지면서 어쩔 수 없는 top-down 식의 커뮤니케이션은 직원들의 사기를 저하하지만 많은 요소들이 일하는 사람들의 근무방식이 외국과 같지 않다 보니 제도가 추가되는 형태가 많다.
우리 회사의 외국 지사 매장에서는 고객의 컴플레인을 해결하고 악수를 했다. 고객은 문제가 해결됨에 감사를 표현하고 직원도 우리 이제 아무 문제없는 거야, 다음에 또 보자라며 고객에게 농담을 했다. 그런데 한국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들과는 이런 의사소통이 힘들다. 아무리 외국계 회사지만 고객은 한국 매장에서 받던 서비스를 기대한다. 우리가 고객에게 좀 더 친절하라고 직원들에게 말하면 직원들은 실망한다. 외국 지사에서는 안 그러면서 왜 한국에서는 고객 서비스를 기대하냐는 반응인 것이다.
결국 이러한 갭들로 인해 외국계 회사가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할 때 어느 정도의 한국화는 불가피한 것 같다. 하지만 나 역시 우리 회사가 한국 회사들처럼 관료주의에 젖어들지 않길 바라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좀 더 다르게 문제에 접근하려고 노력한다. 적어도 내 의견만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으려 하고 스스로 리플렉션을 하는 시간도 많이 가진다. 하지만 이 노력을 직원들도 같이 해 주었으면 한다. 문화라는 것은 다 같이 만들어 가는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