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이정록
의자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라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의자』, 이정록, 문학과지성사(2006.03.03)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몇 해 전, 어머니 댁 처마 밑에 그늘막을 치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허리를 심하게 다친 적이 있다. 골절로 두 달 넘게 병원에서 누워 지내야 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허리를 다쳐봐서, 또 온종일 서서 일해봐서 안다. 의자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기댈 자리’라는 것을. 몸을 기대고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을.
시인의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세상 모든 존재에게는 의자가 필요하다고, ‘꽃도 열매도, 참외도 호박도’. 어머니의 너른 품과 삶을 대하는 깊은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삶이란, 어쩌면 그늘에 의자 몇 개 내어놓는 일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잠시나마 고단함을 잊고 쉬어갈 수 있도록.
나는 과연, 그에게 ‘좋은 의자’였을까. 이정록 시인의 ‘의자’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