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해 Feb 18. 2021

서울의 낭만은 고요한 퇴근길 위에 떠있는 별

<서울 구경>과 <대도시의 사랑법>

 정재윤의 서울구경과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었다. (정재윤 작가님은 2-30대 여성들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야기를 너무 잘 쓰시기 때문에 좋아하는데, 언리미티드에디션에서 뵀을 때 너무 부끄러워서 아는 척을 못해서 아쉬워하는 중) 두 책 다 흡입력이 너무 좋아서 선 채로 깊게 집중하며 본 책이다. 또 부산에서 온 여자가 그리고, 대구에서 온 퀴어 남성이 쓴 책이라 어쩐지 더 정이 갔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랑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은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보다는 아무래도 타지에서 서울이라는 도시로 올라온 경우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기회와 재미가 있는 곳, 서울로 오세요.


 서울구경의 주인공인 여자는 원래 사는 곳인 "동네"에서 맛집 블로그를 하려다가도 접는다. 주변의 식당은 솥뚜껑 삼겹살밖엔 없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는 서울에 동생을 유학 보내고 싶어 하고 그것은 기회라고 생각하지만 동생은 회의적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이겨내야 하는 서울의 맛집 빵집보다, 지금처럼 동네에서 소소하게 주민들에게 빵을 팔면서 일찍 문을 닫고 집에 가는 빵집을 운영하는 게 더 괜찮은 거 아닐까? 동생은 궁금하고 남자와 여자도 서울에서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른다.


 대도시에서 대부분의 이방인들은 끊임없이 거취를 옮기게 된다. 이사를 한 번 하면 진이 빠지면서, 한 인간이 살아가는데 왜 이렇게 많은 짐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에 도달하는데, 짐을 하나하나 빼고 정리하는 것은 자취방을 구하는 것보다는 쉽다. 한정된 자본으로 인간답게 살아가기에 적합한 공간을 발견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내 흔적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공간을 정리하는 일은 차라리 간편하게 느껴진다.


 떠돌아다며 흔적을 정리하고 다시 짐을 푸는 일련의 과정들은 내가 속한 도시에 소속감을 갖지 못하게 한다. 나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지만 여전히 '포항에서 온 애'이고 지하철의 길고 긴 환승구간을 걸으며 사람들에게 치여 환멸이 날 때에는 기차를 타고 포항에 가서 바다를 본다. 그럼에도 언젠가 서울에 정착하고 싶은 건, 이 도시에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포항에서는 여성 영화제는커녕 예술영화를 접하기도 힘들다. 수능이 끝나고 개봉한 라라랜드를 아이맥스로 보고 싶어서 나는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 남자애와 시외버스를 타고 대구까지 갔다.


 늦은 밤 중앙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편의점에 나오는 길에 보이는 달동네가 빛나고 있었다. 마치 별처럼. 그 별동네의 꼭대기에는 보증금 500에 월세 50만원인 신축의 원룸이 있다. 방을 보러 다니며 가장 좋은 컨디션이었지만 산 꼭대기까지는 가고 싶지 않아 고르지 않았다.

 갓 상경한 대학교 1학년 때 학회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나와 취한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소리쳤다. "별 너무 예쁘다!" 그러자 서울 친구가 웃으며 그건 별이 아니라 인공위성이라며 서울엔 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한밤중 조용한 오르막길을 오르며 집에 갈 때 많은 별들을 본다. 하루 종일 시끄럽던 서울이 조용해지고 별은 빛날 때, 자취방들이 멀리서 별처럼 빛날 때, 나는 서울이 싫고 또 서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I love you, alway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