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관해

함께하기 위해 나의 폭력을 고백합니다.

by 나하나

부산 남성으로 폭력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폭력에 관한 최초의 기억은 아버지도 아닌 삼촌이다. 그날은 설날이었고 할머니 댁을 방문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는 잠깐 장난감에 정신이 팔려 문방구에서 놀다가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갔는데, 열쇠가 없어 집에 못 들어가고 있던 삼촌이 사정없이 뺨을 후려쳤다. 울먹이며 현관문을 열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촌 동생에게 뺨을 때리는 장면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동생과 나에게 가했던 물리적 폭력과 심리적 폭력. 어머니도 자기 화를 우리에게 풀었는데, 자신 주변에 집히는 것들로 마구잡이로 때렸다. 그리고 동생에게 내가 했던 행동들. 별 이유 없이 폭력을 당했던 내가 나보다 약한 이에게 같은 방식으로 폭력을 가하는, 받은 만큼 돌려주는, 내 주변의 남성들과 닮은 나. 괴물을 보고 자란 내가 괴물이 되어버리는, 똑같이 살기 싫은데 어느새 닮아 있는 나를 볼 때면 내가 끔찍이 싫었다.


주 맞을래요??

라는 말이 내 입에서 장난처럼 툭 튀어나왔을 때, 나님이 정색하면서 안 좋은 표현이라고 이야기했다. 생각해보면 나님보다 힘센 나는 심사가 뒤틀리는 순간이면 말로 표현하지 않고 나님에게 물리적 압력을 가하거나, “주 맞고 싶어요?”라고 장난처럼 이야기해왔다. 불편한 기색을 비치는 나님을 향해 장난이란 말로 넘어갔지만, 내 말과 행동이 나님에게 어떤 위압이 되는지 상상하지 못했다. 그냥 연인이 투닥투닥하는 정도로 여겼는데, 며칠 전 나님의 지적을 듣고 “주 맞을래!”에 관한 위력과 위압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나님에게 가하는 폭력이 얼마나 많을까. 조금은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형태만 달라졌지 여전히 폭력적인 나.


데이트 강간이었다.

지난 9월, 나님은 며칠 동안 시무룩한 상태였다. 특별한 이유 없이 뚱해 있는 나님을 보고 나 역시 토라졌다. 며칠 만에 지리산에서 만난 우리는 어색함을 유지한 채 등을 돌리고 있었다. 어두운 침묵을 깬 건 나님이었다. 나님은 숨을 고르면서 과거에 모르는 남성들에게 당했던 성희롱을 나에게 고백했다. 그리고 전 남자 친구에게 당했던 폭력도 이야기해주었다. 그 순간들이 떠올라 지난 며칠 우울했다고 했다. 나는 그 시간을 오롯이 나님을 위로하는 데 썼어야 했는데 “이제 더 애쓰고 싶지 않아요.”라는 말에 또 토라져버렸다. 정말 큰 용기를 냈을 텐데,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는 못난이었다.

지리산에서 이야기했던 남자 중에 내가 없었을까, 나님을 만난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정동진에서 나는 나님이 거절했음에도 성관계를 요구했고 억지로 관계를 가졌다. 나님은 자신이 흥분을 시켰고, 충분히 거절 의사를 밝히지 않았고,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자신도 잘못이 있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건 엄연히 데이트 강간이었고 그 순간에 나는 성희롱하고 폭력을 가한 남성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걸 깨닫고 나 역시 나님의 불안에 기여하고 있었다는 절망감과 두려움이 든다. 나님은 내가 모르는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폭력을 당하며 자신을 자책하면서 살았을까. 그 감각을 상상할 수 없는 나는 어찌해야 할까.


나는 나의 폭력을 가리기 위해

우리 관계에서 어색한 침묵이 흐르게 되는 걸 마치 나님만의 탓인 듯, 그런 분위기로 몰아갔다. 늦었지만 나님의 과거를 소환하고 ‘잘못 살아온 것 같다’라고 탓하는 것에 나의 말과 행동도 여러 몫 했다는 걸 인정한다. 나님은 나에게, 현재를 옭아매고 있는 과거의 자신과 결별하고 오롯이 나님으로 서겠다며 도와달라고 했다. 나 역시 과거의 나로 귀결되기 전에 나의 폭력을 고백하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바라는 삶을 함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님이 힘겹게 자신의 과거와 싸우고 있을 때, 나는 지금의 나와 싸워야 한다. 나님이 내게 그런 기회를 준다면, 나 역시 변하도록 노력하겠다.

이런 나여서 정말 미안한데, 그런 나를 꼭 껴안아줘서 고맙고, 염치없이 또 나님을 사랑합니다. 우리 서로가 한 사람으로 오롯이 설 수 있도록 노력하고, 서로에게 힘이 돼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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