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남긴 이야기
2025년은 두려움과 불안으로 시작된 해였다. 2024년 말 갑작스럽게 경제적 책임을 도맡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오랜 경력을 쌓은 분야 없이 경력 단절이던 내가 당장 재취업한다는 것은 어려웠다. 거주지 인근에는 마땅한 경력직도 없을뿐더러 전혀 경험 없는 일자리는 서류전형에서 탈락이었다. 물론 새로운 도전을 위해 배우고 자격증을 취득하는 기간을 거치느라 2월 초까지는 바쁘게 지냈다. 헌데 현실은 나이를 핑계로 새로운 도전을 쉽게 허락해주지 않는다. 생각처럼 재취업이 쉽지 않으니 다시 후회스러운 마음이 밀려든다. 후회라기보다는 인생 최대 결정의 순간에 그런 선택을 했던 나를 원망하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분명 다른 선택지가 있었음에도 그 길로 들어서게 한 과거의 내 결정이 현재의 나와 내가 돌보아야 할 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누구나 다 아는, 남들이 알아주는, 그럴싸?한 전공을 선택했더라면 분명 나는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만일 그 시절 부모님과 선생님의 조언과 추천을 따랐더라면 나는 전혀 다른 일을 하며 지냈을 테니까. 첫 번째 후회도 없었을 것이고 지금의 두 번째 후회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껏 내 생활이 불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재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전공이 걸림돌이 되는 것을 느끼며 후회스러운 마음이 솟구치고 있다. 되돌릴 수 없는 일인 것을 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자기 위안을 하는 중이다. 다른 인생길을 걸었더라도 지금 후회되는 것이 아닌 또 다른 것을 후회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토닥이고 있다.
그 시절 젊은 패기로 인생 선배인 부모와 스승의 조언을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린 결과가 이렇게 쓰고 아플 줄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물론 내가 선택했던 전공을 살려 쭉 한 길을 걸었더라면 그쪽 분야에서 승승장구했으리라. 승승乘勝하던 중에 처음으로 후회가 밀려들던 그때 참 많이도 힘들었다. 승승乘勝했으나 장구長驅를 포기하고 다른 길로 들어섰으니 말이다. 결국 걷던 길을 돌아서는 선택을 하며 그 후회스러운 순간을 모면하고 내 선택을 덮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다른 길을 걸으면서 후회하거나 원망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물론 승승장구하던 길을 포기한 것은 잘한 일이다. 똑같은 것을 다시 후회하게 하는 두 번째 위기가 찾아온 것 뿐이다. 그때와 다른 길을 걷는 나임에도 당시의 내 선택이 없었던 것처럼 숨길 수 없는 오점이 된 것에 대한 자책을 견딜 수 없을 뿐이다.
그 당시 나는 왜 그런 모험적인 선택을 했을까. 그때의 나는 '이미 나도 알만큼 알고 있고, 알아볼 만큼 알아보고 내린 결정'이라는 착각을 했다. 내 눈에 보이고 내게 보이는 것, 내 귀에 들리는 것이 전부라고 믿고, 한 치 앞을 모르고 훗날을 예견하지 못한 어리석음이 낳은 결과다. 나를 위해 잔소리 아닌 잔소리처럼 말씀해 주신 그 조언들을 담아 듣지 않고 흘려버린 엄청난 실수를 범하며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후회를 하며 두 번째 속앓이를 하는 중이다. 한 번 실수하여 오점을 남기면 그것이 평생 가는 법임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물론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믿는다.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니었던 것처럼 이야기할 날이 올 것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현재 나를 위태롭게 하는 그 오점이 민망한 건 사실이다. 물론 재취업도 만족스럽게 이뤄질 것이다. 언젠가 후회될 결정이 되지 않도록 내가 선택할 테니까. 인생에 죽으란 법은 없다 하지 않았던가.
한 번 부정적으로 본 것은 계속 부정적으로 보이는 법이다. 아무리 오점으로 남은 나의 선택과 결정이었다 하더라도 더 이상 부정적으로 여기거나 후회하고 자책하면 안 되겠다. 혹시 아는가. 다른 선택으로 다른 길을 걸어온 내가 그때의 선택을 또 후회하며 그렇게 살아보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게 되는 날이 또 있었을지 말이다. 되돌릴 수 없다면 인정하자.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결국 인생길은 거리나 높이, 속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 과정 속에 선택과 결정으로 인한 후회나 자책 등은 누구나 건너야 할 징검돌로 놓여 있다. 건너는 것은 나다. 오점을 없앨 수 없다며 후회하고 자책할 때가 아니다. 껑충껑충 넘을지 그 속에서 허우적거릴지 결정 내려야 한다.
새로운 도전에 당당히 맞서 두려움과 불안에서 해방되는 자유로운 한 해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