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나in나 essay 41

by 나in나


나무는 잎을 떨구고, 바람은 온기를 잃고 낮게 흐른다. 나는 창가에 앉아, 잔잔히 흔들리는 나뭇가지 끝을 바라보고 있다. 나무는 풍성하던 나뭇잎들과 작별했다. 앙상해진 나무는 어떤 마음으로 서 있을까.

시선을 옮겨, 구름 속에서도 빛나는 달을 고개 들어 바라본다.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달빛 아래 내가 잘한 일, 못한 일, 좋은 일, 나쁜 일, 모두 투명하게 드러난다. 그 기억들이 나를 뒤흔든다. 남들에게는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내게는 너무 컸던 고민들, 나 혼자 끌어안아야 했던 외로움들. 그 속에서 나는 방황했고 많이 아팠다. 달빛에 드러난 내 그림자가 흔들리며 다시 방황하는 나를 마주하게 한다. 과연 그 결정이 옳았던가. 그것만이 최선이었던가. 후회는 없는가. 쉽게 지나간 날은 하나도 없었다. 때로는 버티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졌고, 조용한 미소 뒤에 숨겼던 눈물들이 밤이 되면 쏟아져 내렸다.

한 장 남은 달력이 찬찬히 흘러간 시간을 되짚게 한다. 비로소 나를 들여다본다. 한 해의 끝자락까지 어떻게 달려왔던가. 나에게 2025년은 참 낯설고 새로운 해였다. 밝은 길도 있었고, 어두운 길도 있었다. 의도하지 않았던 길을 걷기도 했고, 계획하지 않고 예상하지 못했던 달라진 시간의 길 위를 걷기도 했다. 그 모든 길 위에서 나를 지우기도 했고, 새로운 나를 그려내기도 했다.

나에게 2025년은 무엇이었느냐고 묻는다면 '시작과 변화'라고 답하겠다. 새로운 시작. 한동안 멈춰 있던 삶의 바퀴를 어느 날 갑자기 굴려야 했다. 기름칠도 하지 않고 관리가 소홀했던 탓에 삐그덕 소리를 내는 내 삶의 바퀴를 움직였다. 쳇바퀴처럼 꽤 오랫동안 제자리만 머물렀다. 아무리 노력해도 헛수고 같았다. 혼자의 힘으로 그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명백한 현실은 이제야 내가 어른의 자리에 서게 되었음을 실감하게 했다.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아서, 모든 것을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책임의 무게는 힘들었다. 그 순간 나를 위로해 준 것은 눈물이었다. 어지간한 고통이나 슬픔에도 눈물이 나지 않는 나인데 스스로도 놀랄 만큼 주최하지 못하고 꺼억꺼억 울음이 터져 나왔다. 눈물과 함께 모든 감정들을 쏟아내고 나면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울고 다시 일어났던 순간들이 내 삶의 바퀴가 다시 굴러가게 했다. 가끔은 그냥 괜찮은 날도 있었다. 혹시라도 내 삶의 바퀴가 굴러가지 못할까 봐 하루하루 조심스레 매만지며 살았다.

[고통은 네 적이 아니라 네 무기다. 멈추는 순간 가능성은 썩어간다. 편안함은 달콤하지만 너를 약하게 만든다. 남의 기준에 묶이면 남의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고독을 견디는 자만이 세상을 견딜 수 있다. 실패는 방향을 알려주는 가장 정직한 표지판이다. 끝까지 버틴 자만이 진짜 승리를 쥔다. 견디고, 밀고, 끝까지 가라] 뻔한 이야기 같지만 내가 믿고 기댔던 문장들이다. 내가 견딜 수 있게 용기를 주었다. 내가 도전할 수 있게 했다.

새로운 시작은 거창하지 않다. 작은 변화들이 만든다. 나의 용기와 도전은 새로운 변화와 새로운 시작을 가져왔다. 2025년의 주된 변화와 시작은 경단녀의 딱지를 떼어낸 자리에 새 명찰을 단 것이다. 여유롭게 거닐던 동네길은 발걸음을 재촉하는 출근길이 되었고, 새로운 호칭으로 불렸으며, 내 목소리는 조금 담담해졌다. 나는 달라지고 있었고 달라져야만 했다. 재취업이라는 단어는 흔히 들어서 익숙했지만, 직접 몸 담고 나니 낯설고 어색했다. 새 일터에서 처음으로 만나 협업해야 하는 사람들의 낯섦은 싫지 않았다. 일터의 분위기는 냉랭하면서도 즐거웠다.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즐거움이었다. 사람도 일도 점점 익숙해지면 편안해질 것을 알기에 즐거운 순간들만 기억하며 일의 보람을 찾기로 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더 많은 용기와 도전이 필요했다. 용기내면 낼수록 도전하면 할수록 쓸모 있고 실력 있는 사람이 되는 듯했다.

용기와 도전으로 내가 변화하니 관계도 서서히 변화했다. 흐르는 것은 흐르게 그냥 두기로 했다. 나에게로 걸어오는 발걸음이 있다면, 흔쾌히 맞아들이기로 했다. 멀어지는 사람은 결국 뒷모습을 보였고, 다가오는 사람은 다정함으로 곁에 와 주었다. 매일 조금씩 나를 긍정적으로 밀어주던 사람, 내가 어떤 모습이든,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다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 나를 향한 응원과 신뢰로 나를 믿어준 사람. 곁에 있어준 이들의 이해와 배려, 따뜻한 말과 행동들이 나를 견디게 해 주었다. 멈추지 않고 한해의 끝까지 걸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들 덕분에 누구와 함께 어떤 마음으로 어디를 향해 걷는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지나온 시간 덕분에 나는 더 단단해졌고, 함께한 이들 덕분에 나는 더 부드러워졌다.

또 한 번 새로웠던 한 해가 지나고 있다. 새해가 오면 나는 또 다른 용기와 도전의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새로움 앞에서는 누구나 떨리는 법이다.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올해를 살아낸 나의 마음은 작년의 나보다 훨씬 깊고 넓어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깊이와 넓이를 품고 걸어가는 길은 분명 이전보다 덜 외롭고 덜 흔들릴 거라고.

“수고 많았어. 나는 항상 네가 어떤 길을 선택하든 방향을 잃지 않도록 네가 걷는 그 시간의 길 위를 온 마음을 다해 함께 걸을 거야. 너는 지금도 괜찮은 사람이고, 앞으로는 더 나아질 거야!” 한해의 끝과 새해의 시작, 그 순간에 꼭 듣고 싶은 말이다.

시끌벅적한 시간 속에 한 해는 끝이 나고 새해는 강렬하게 찾아올 것 같았다. 하지만 늘 그랬듯 끝은 조용하고 조용히 시작되고 있다. 끝과 시작을 앞두고 잠시 눈을 감아 본다. 지금 이 길은 내가 바라는 방향과 일치하는가. 누구와 함께 가고 있는가. 한 걸음 또 한 걸음 걸어 본다. 이 순간도 조금씩 다른 내가 되어 간다. 내가 걸어온 시간이 남긴 흔적들을 살피며, 아직 걸어야 할 시간의 길 위에 담담히 올라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