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주어지는 기회

나in나 essay 42

by 나in나


새해 첫새벽은 유난히 떠들썩하게 고요하다. 밤새 도시를 밝히던 불빛이 꺼지고 컴컴한 어둠이 내리면 잔뜩 기대를 품은 사람들 마음속에 작은 등불이 하나둘 켜진다. 오랜 슬픔도, 미완성한 꿈도, 사소한 후회도, 즐겁던 순간도, 새해를 시작하는 순간만큼은 모두 정지된다. 각자 소원을 빌며 마지막 달력을 넘기고, 반짝이는 두 눈으로 새 달력을 펼친다. 그렇게 다가온 설렘은 바스락바스락 새벽을 깨우고 누구보다 더 빠르게 아침을 시작하게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고 부지런하게 새해 첫날 시작게 만든다.


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며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특히 새해를 시작하는 순간에 스치게 되는 사람들의 표정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무언가 말하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가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픈 상처, 작아진 용기,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욕심, 기대와 두려움, 깊은 그리움, 오래된 소망, 당찬 결심 등... 지난 한 해 동안 무의미하게 흘러가버린 것들에 대한 모든 감정들은 사람들 눈에 출렁이는 파도를 일게 한다. 두 눈 속 너울거리는 파도를 간신히 잠재우는 것은 '새해는 분명 지난해와 다를 것'이라는 '믿음'과 '다시 해내리라'는 '각오'다. 지난해의 자신을 돌아보고 새해를 의미 있게 맞이하려는 의식적인 태도, 끊임없이 재각성을 반복하면서도 부족한 자신을 똑바로 보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자고 결심하는 것은 새해가 가진 힘이요, 새해가 가지는 가장 깊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새해는 지난해의 연속이다. 생의 시간은 죽음을 맞기 전에는 끊임이 없다. 새해가 시작되었다고 전혀 다른 시간이 펼쳐지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새해의 시작이 특별한 이유는 해마다 변화하고 성장하여 달라지는 나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새해를 살아갈 ‘새로운 나’의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다. 새해는 실망하고 포기하며 내려 두었던 ‘다시’라는 단어를 가슴에 품게 한다. 지나온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고 후회하고 실망하고 아쉬워하면서 결심하고 또 결심하게 한다. 다시 한번 도전하고, 다시 한번 견뎌보고, 다시 한번 살아보자고 다짐하게 한다. 새해는 결심만 하고 상상하만 하는 아니냐고 비난하지 않는다. 그동안 무엇을 이루었냐고, 무엇을 놓친 줄 아느냐고 질책하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다가와 '지금 다시 시작해도 괜찮아'하고 속삭인다. 무언가를 거창하게 바꾸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새해는 모든 이들을 품는다.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새로운 출발을 허락해 준다. “다시 시작할 수 있어”하고 격려한다.


새해 아침이 눈부신 이유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삶을 기꺼이 다시 살아보겠다는 의지, 알 수 없는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희망들이 여기저기서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희망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노력의 순간들이 만들어 내는 찬란한 빛이다. 그 빛이 있어 잠시 주춤하다가도 다시 방향을 찾게 되고, 다시 노력하고 다시 희망할 수 있다. 그 빛을 포근하게 끌어안으면 의지는 더욱 불타오른다. 의지는 희망을 현실로 만든다.


지금까지 살면서 몇 해고 반복하여 새해를 시작했지만 그때마다 기대와 두려움, 설렘과 불안은 늘 함께했다. 그 감정들을 품고 때로는 서두르며, 조심스럽게, 당당히 새해의 시간 위를 걷기도 했다. 그 시간의 길을 걸으며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행동하고 실천하면 불안과 걱정은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행동하는 순간들의 울림은 이전과 다르게 시간을 사용하게 한다. 삶은 언제나 비슷하게 반복되는 것 같지만 지금까지 같은 새해는 한 번도 없었고, 같은 나 또한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새해가 특별한 이유, 새해의 뜻깊은 의미는 결국 나로부터 결정된다. 희망을 바라며, 용기와 의지로 새해라는 시간의 문턱을 넘어서,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내딛을 때마다,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의 결'이 달라지고, 걸어온 순간들은 반짝이는 빛이 되어 가야 할 길을 환하게 비춰준다. 새해를 향한 희망의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희미하기만 했던 새해의 풍경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때때로 새해의 시간이 낯설어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는 불안이 느껴지면, 그럴 때는 잠시 쉬어 갈 필요가 있다. 단 새해의 희망과 새로운 마음가짐을 한 번 더 새기고, 목표한 바를 포기하지 않을 용기를 다시 품어야 한다.


한 번 더 주어지는 기회 앞에, 선택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 있는 행동들로 새해의 희망이 이뤄지는 그 순간까지 특별하고 의미 있는 하루하루를 완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