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는 사업가가 아니다

기업을 원고지처럼 쓰는 SF작가

by quende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론 머스크를 사업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론을 ‘사업가’로서만 바라보면,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생긴다. 이번 글은 ‘뼛속까지 전략가인 피터 틸’과 ‘뼛속까지 SF 주인공인 일론 머스크’를 비교하여 관찰한다.


피터 틸 보고오기 : https://brunch.co.kr/@naisieaquende/2

(요약) 피터 틸은 신화를 끌어다가 전략으로 사용한다. 팔란티어, 안두릴 등 — 그는 톨킨의 세계관을 꺼내 자기 사업에 입혔고, 그 이름들은 전략 언어로 변환되어 각 기업의 비전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그 모든 기업들을 손아귀에 쥔 절대반지의 소유자 피터 틸은 ‘신화라는 장비를 장착한 전략가’다.
→ 그런데 그의 가까운 동료는 다른 방식으로 신화를 쓴다. 그가 바로 일론 머스크다. 그는 신화(SF) 안에서 산다. 그는 SF를 집필하고, 스스로 그 SF의 주인공으로서 산다


신화 먼저 vs 전략 먼저


MixCollage-28-Aug-2025-02-01-PM-6428.jpg 체스를 두는 피터 틸


틸은 뼛속부터 전략가다. 이념을 포함해 모든 것이 그에게는 체스의 말이다. 80억 명을 상대로 판을 읽고, 구조를 뒤집는다. 선의도 악의도 없이, 그냥 그게 이 게임에서 가장 최적의 수라면 둘 뿐이다. 신화를 이용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였다.


IMG_1883-scaled.jpg 일론의 추천 도서 리스트 - Anna Crowley Redding


머스크의 출발점은 달랐다. 따돌림 속에 자란 일론에게 SF는 탈출구이자 유일하게 살 만한 세계였다. 머스크의 진짜 내면은 탐구할 수 없지만,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나또한 현실이 고독했던 시절, SF속 주인공에 이입하며 SF속에서 살았다. 그 경험이 가르쳐준 건 꽤나 단순했다. SF속에서 사는 건 한계가 있다. 내가 숨쉬고 대사하는 것은 현실이기 때문에, 계속 돌아와야 한다. 그럼 이 현실을 SF와 똑같게 만들어버리면, 그러면 계속 SF속에서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일론의 출발점도 그랬으리라 나는 읽는다.


따돌림당한 아이가 SF 속에서 사는 건 도피가 아니라 일종의 생존이다. 그리고 그 세계가 창의성으로 승화되면 —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나온다. 대부분의 언더독들이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고도 진짜 “세상을 바꾸겠다”고 결심할 수 없는 것은 의지가 없어서라기보단, 손 댈 각이 안 서는 막막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머스크는 진짜 세상을 바꾸겠다고 결심했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전제들이 진정 당연한 건지부터 뜯어발겼다(First Principle). 그리고 거기서부터 다시 쌓아올렸다.


explosion.jpg 폭발 후 대기권에 진입한 스타십(Starship)의 잔해


스페이스X가 대표적이다. 일론은 원래 로켓 회사를 세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다행성 인류의 첫걸음으로 화성을 선택했을 때 그에겐 자연스럽게 로켓이 필요해졌다. 그런데 화성에 문명을 옮기려면 일회용 로켓으론 안 됐다. 비행기를 한 번 띄우고 폐기하는 항공사는 없다. 그래서 로켓을 재사용하기로 결심했고, 업계 전체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걸 해냈다. 화성이라는 서사가 먼저 있었고, 재사용 로켓은 그 서사를 실현하기 위해 역산된 수단이었다. 테슬라도 같은 구조다. 화성에서 화석연료를 쓸 수는 없다. 하나의 SF에서 챕터가 역산되어 온다. 또한 그것들을 구상할 만큼 똑똑했고, 해낼 때까지 버틸 만큼 집요했다.


거기에 시대가 따라줬다. 닷컴 버블에 페이팔을 엑싯하고, 그의 ‘X’들은 AI 버블이라는 날개를 달았다.



머스크는 사실 작가다


foundation3.jpg 아이작 아시모프의 프론티어


그래서 머스크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은 이것이다.

그는 SF를 집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작품을 원고지에 쓰는 것이 아닌 기업으로 쓴다.

설계자이면서 동시에 그 설계 안에서 사는 사람. 그래서 그가 왜 그토록 일관된지가 설명된다. 세계관이 앵커로 박히면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테슬라가 굶어 죽기 직전, 스페이스X가 세 번 연속 폭발하던 시절 — 그는 피봇하지 않았다. 자기 서사를 버리는 주인공이 어딨나. 그에게 포기는 사업 실패 수준이 아닌, 현실에서 자신을 지우는 일과 같았을 것이다.


그가 소설 속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그가 하는 기이한 행동들이 설명되기 시작한다. 캐릭터는 효율과 합리가 아닌 개연성에 방점이 찍히기 때문이다.


그 일례로 일론의 ‘X’집착을 들 수 있다. X.com은 페이팔 시절에 이미 한 번 거부당한 이름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Space X라느니, Model X라느니. 그의 X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곤 17년 뒤에 X.com도메인을 다시 사 왔다. “지금 당장 계획은 없지만 나한테 큰 감정적 가치가 있다”고 말하면서였다. 종국에는 트위터를 인수하면서 트위터에 X.com이라는 도메인을 연결했다. 그것도 모자라 아들의 이름마저 X라고 지었다. 그가 왜 X에 집착하는지는 전기 작가들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냥 그걸 숭상하는 ‘캐릭터’인 거다.


Terraforming-Mars-Sequence.jpg 화성 테라포밍


화성도 마찬가지다. 일론 머스크는 당연하지만 바보가 아니다. 인류가 정말 화성에 가야 하는지, 그게 자신의 숙원사업이어야 하는지 얼마든지 뜯어볼 수 있었을 것이다. 지구에 더 시급한 문제들이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고, 화성 이주가 얼마나 현실적으로 험난한지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도 그 프레임을 광기로 밀어 붙인다. 자신이 집필한 서사 속 주인공 일론 머스크는 화성에 가야 한다는 목적을 갖고 창조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에게 화성 이주는 First Principle이다.



프레임을 쇼핑하는 틸과 프레임에 묶여있는 머스크


072224_kc_north-star-mass_feat.jpg 일론의 North Star는 고정되어있다. 틸의 것은 아니다.


틸에게 톨킨은 최고의 선택지였지,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르네 지라르의 프레임을 가져와 제로투원의 기반을 닦았고, 톨킨에게서는 전략을 감싸는 언어를 가져왔다. 더 좋은 프레임이 나타나면 손쉽게 바꿔끼울 수 있는 하나의 장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2008년 중국의 부상을 “새천년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트렌드”라며 추켜세워줬다. 지금의 그는 미국의 가장 강경한 반중 목소리 중 하나다. 그의 세계관이 바뀐 게 아니다. 그냥 최적의 수가 바뀐 것이다. 그래서 나는 틸은 ‘프레임을 쇼핑하는 자’라고 읽는다.


머스크는 프레임을 교체할 수 없다. 그는 X(구 트위터)에

“별들 사이로 나아가 다행성 종이 될 게 아니라면, 사는 게 너무 우울하지 않은가.(If the future does not include being out there among the stars and being a multi-planet species, I find that incredibly depressing.)”

고 했다. 세계관이 흔들릴 때 그가 내려놓는 건 세계관이 아니라 현실 쪽이다. 그게 합리적이냐고 묻는 건 소설 속 주인공에게 왜 퀘스트를 포기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낭만 하나는 인정


83230141_518786448750855_2939470240083345408_n.png 피터 틸이 이정도로 군중을 모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좋은 전략에 감탄한다. 하지만 낭만에는 열광한다.


틸의 움직임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정교하고, 빈틈없다. 몇 수 앞을 내다보는지 헤아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차갑다. 가슴을 뛰게 하진 않는다. 일론은 로켓을 쏘고, 폭발하고, 다시 쏘길 망하기 직전까지 반복한 끝에 기어코 성공해낸다. 그걸 보며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그게 효율적이어서가 아니다. 자기 서사를 포기하지 않는 인간을 보는 것 자체가 낭만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일론에게 열광한다. 어릴 적부터 현실에서 살 이유를 딱히 못 찾겠으니, 내가 살고 싶은, 내가 매일 아침 눈 뜨고 싶은 세계를 직접 만들겠다고 발버둥쳤다. 물론 스케일은 비교 불허지만, 구조만큼은 닮아있었다. 그래서 나와 같은 구조를 극단까지 밀어붙인 인간의 광기 — 그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일론도 어느순간 그걸 깨달았을 거다. 자기는 그냥 자기 세계관대로 살았을 뿐인데, 사람들이 자신을 낭만적이게 보고 추종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오너리스크를 알고도 그의 주식을 맹목적으로 모으고, 미친 업무량을 알면서도 그의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 안달나하는 것은 추종을 넘어 컬트에 가깝다. 그리고 그걸 이용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그는 틸을 조금 닮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사의 주인공이 자기 서사의 효과를 계산하기 시작하면 낭만은 죽는다. 머스크도 그걸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효과를 의식하되 계산하지 않기로 한 쪽에 가깝다. 그게 틸과의 마지막 차이다.


X


제목 없음-1.jpg 일론의 수많은 'X'들


그가 왜 X에 집착하는지는 전기 작가들도 설명하지 못한다. 다만 내 가치관에 빗대어 추측해보자면 — 모든 것을 의심하고 걷어냈을 때, 마지막으로 남는 것, 머스크에게 그게 X였을 것이다.


X는 수학에서 미지수다. 아직 값이 정해지지 않은 자리. 무엇이든 들어올 수 있고, 무엇도 배제하지 않는다. 방정식이 풀리기 전까지 X는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다. 머스크가 First Principle을 적용해서 기존 전제를 전부 걷어냈을 때, 남는 건 확정된 답이 아니라 아직 정해지지 않은 가능성 그 자체다. null마저 포괄하는 알파벳. X만 남는 거다.


나에게는 사유하는 존재로서의 '사람'이 그랬다. 내가 끝까지 의심했을 때 최후에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나는 사유하는 존재이고, 그렇기에 나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머스크는 그것을 'X'로, 발산의 가능성으로 바라봤고, 나는 '사람'으로 최종 수렴했다.


왜 자식의 이름을 X라고 지었는지도, 나는 같은 맥락에서 이렇게 본다.

지금 이 세상에 막 태어난 네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어떤 사람으로 자라날지 모를 일이다. 그런 너에게 내가 '어떠어떠한 사람으로 자라렴'이라는 소망을 담아 이름을 짓는 것이 맞는 행동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난 너에게 X라는 이름을 준다. 네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든, 그러한 너를 품을 수 있는 이름을 너에게 준다.
8e15cca4-60dd-406a-a38b-edf0fd38fa7d_e2e09fa6.jpg 일론과 그의 아들 X Æ A‑12

다만, 일론은 아이 이름을 지어놓고 본인이 발음을 못 해서 파트너한테 물어봤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니 필자의 해석으로서 봐 달라.


*나는 일론의 모든 것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일례로, 나는 2010년 초부터 20만 트윗을 넘게 써 온 트위터리안인데, 일론에게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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