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클래스(학교 상담실)에 상주하는 전문상담교사는 일반적으로 심리검사 실시와 해석, 상담 업무를 하게 됩니다. 사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상담사들이 심리평가보다는 상담에 집중했었습니다. 왜냐하면 병리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병원을 갔었고, 환자들은 1)병원에 고용된 임상심리전문가의 종합심리평가를 통해 증상이 변별되고 2)심리평가 결과를 건네받은 정신과 의사의 약물치료 및 상담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이에 상대적으로 덜 병리적인, 예를 들어 불안 혹은 강박과 같은 신경증 수준의 내담자는 상담심리전문가의 도움을 통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길러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경계가 모호해졌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상담사들이 상담만 하기에는 내담자의 증상이 심각(조현병과 같은 정신증)해졌다는 뜻입니다. 이에 상담 심리 영역 전문가들은 심리평가를 본격적으로 훈련하기 시작했고, 임상심리 영역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은 상담 훈련을 받는 움직임들이 생긴거죠.
그래서 학교에서 일하는 전문상담교사들 또한 심리평가와 상담 훈련을 함께 받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상담교사 개인의 스타일과 역량에 따라 실시하는 검사의 종류는 물론 학교마다 다를 겁니다. 초등학교 급에서 일하는 상담교사가 놀이치료와 미술치료 등에 집중하는 반면, 중고등학생을 만나는 전문상담교사들이 주로 언어상담을 진행하는 것 처럼요.
저의 경우는 MMPI-A(다면적 인성검사), TCI(기질 및 성격검사), SCT 문장완성검사, HTP(집-나무-그림 검사), KFD(동적가족화) 검사를 실시합니다. 이 글을 보게되시는 학부모님 혹은 담임교사 분들을 위해 각 검사의 유용성에 대해 짧게 말씀드리면요.
MMPI-A(다면적 인성검사) - 이 검사는 우선 문항이 무려 478문항입니다. 성인 버전은 567문항이고요. 그래서 내담자(학생)가 최근 1개월 전후로 우울, 불안수준은 어떠한지, 신체증상을 얼마나 호소하는지 , 에너지 수준은 어떠한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또래에 비해 얼마나 성숙한지, 약물치료를 해야할 정도로 정신증을 호소하고 있는지, 현재의 어려움이 만성화되어있는지도 파악하고요. 무엇보다 이 검사를 얼마나 성실하게 했는지, 인지기능에 어려움은 없는지, 지나치게 잘 보이려고 방어하지는 않았는지 까지도 종합적으로 보게 됩니다.
상담사가 아무리 훈련을 받더라도 불완전한 인간인 만큼, 내담자들을 만날 때 주관적인 인상으로 판단하게 될 때가 있는데요. 그리고 의뢰된 사람(부모 혹은 담임교사)에 의해 편견이 생긴 채로 만나게 되기도 하고요. 그러나 이 MMPI-A 검사를 통해 빠른 시간 내에 내담학생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2. TCI(기질 및 성격검사) - 해당 검사는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검사인데요. 요즘 유행하는 MBTI를 예로 들면, 똑같은 ISTJ 들끼리도 정말 다른 부분이 많지 않습니까? 상극에 위치하는 ENFP 유형의 사람들 또한, 그 사람들을 한 데 모아보면 정말로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경향성을 구분하기에 MBTI는 과학적이기도 하고 재미있는 검사이지만, 이와 같은 디테일한 차이점을 보여주지는 못하는 거죠. 애초에 인간의 유형이 16가지로 구분되기에는 우리는 너무나 복잡한 존재고요.
그러나 TCI 검사는 타고난 기질과, 후천적으로 변화 가능한 성격 요인을 나눠서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타고난 기질은 바꿀 수 없는 것이므로 수용해야 하며, 미발달된 성격의 경우는 여러 환경적 지원(상담 포함)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는 뜻이죠.
해당 검사의 가장 큰 장점은 부모님에게 자녀를 이해시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자극추구 기질이 강해 도전성과 모험심이 강한 자녀와, 자극추구 기질이 낮은 반면 위험회피 기질이 높은 어머니의 궁합을 생각해보죠. 어머니는 자녀의 행동이 항상 위험해보이고, 자신의 안전감을 위해 자녀를 자꾸만 통제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기질은 바뀌지 않죠. 아무리 통제하고 또 통제하더라도 사이만 나빠질 뿐입니다. 식욕과 수면욕 처럼 기질은 인간의 타고난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자신과 맞지 않는 기질의 자녀를 통제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에게 늘 상처를 줬던 남편(배우자)의 기질을 닮은 자녀가 미웠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남편에 대한 마음을 자녀에게 투사했을 수 있다는 거죠.
제가 좋아하는 달과 6펜스라는 책의 주인공 스트릭랜드 이야기를 잠깐 하려하는데요. 스트릭랜드는 누가봐도 괴짜입니다. 그런데, 타히티라는 섬에 가서는 그 누구도 괴짜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스트릭랜드의 기질을 온전히 수용해준 대상들이 그 섬에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기질대로 성장한 사람은 누구보다 창의적이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저는 과거에 다소 보수적이고 규칙적인 성향의 사람인지라 창의적이고 통통 튀는 친구들과 참 많은 대립을 했었습니다. 엄격한 꼰대 vs 재치있는 예능계 입담꾼들의 갈등같은 느낌인데요. 저한테 그 친구들은 자신의 기질을 수용받지 못 해 피하고 싶은 존재였겠지만 그들끼리 모여있을 때 그들은 아주 행복하고 잘 살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예능인으로서 탁재훈 씨가 매우 웃기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분의 주변에 저같은 사람들만 있었으면 지금처럼 좋은 재능을 보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예로 히키코모리로 오해받을 수 있는 기질을 가진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과 적절한 거리를 두면서 살 수 있게끔 이해해줄 수 있는 건데도, 부모들은 그런 아이들을 자꾸만 사람들 만나라며 밖으로 나가라고 push 하죠. 그러나 그런 기질의 아이들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런 기질이 사회에 살아가는 데 불리하지 않도록 수용해주면서도 성격을 발달시킬 수 있는 환경적 지원을 해주어야 하는 거죠.
3. 위에 언급한 나머지 검사들은 주로 보조적으로 활용합니다. MMPI-A 및 TCI 검사를 통해 알수 없는 내용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질문하기 위해서 사용하고요. 내담 학생 또한 의식적으로 인지하지 못 하는 무의식적인 부분은 그림에 나타날 수 있어 활용하기도 하고요. 대표적으로, 입으로는 우울하다고 보고하지만 그림 검사에는 전혀 우울이 반영되지 않는 경우, 그 학생은 우울하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는 것이지, 우울한 정서를 실제로 느끼지 않는 것일 수 있겠죠.
그 외에 보다 면밀한 지적장애의 변별이나, 세밀한 정신증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주변 전문기관(주로 위센터)에 의뢰합니다. 해당 기관에는 종합심리평가를 매우 전문적으로 실시하는 임상심리사가 상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부분을 고려하여 학부모님 또는 담임교사 분들은 학교 위클래스에 내담 학생을 연계하거나, 타 기관 연계와 관련된 의논을 위해 연락을 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