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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로진 Jan 06. 2021

침대 위의 폭력

아닌 건 아닌 거야, No means no

1970년 30대 중반의 A 씨는 강간 혐의로 법정에 섰다. 누굴 강간했을까? 다름 아닌 그의 아내였다. A 씨는 다른 여성과 동거하다 아내에게 들통이 났다. 부인은 그를 간통죄로 고소했고 다급해진 A는 “동거녀와 관계를 청산하겠다. 새 출발하자”며 화해하려 했다. 집에서 이야기하던 중 부인이 이들의 재결합을 거부하자 A는 그녀와 섹스를 시도한다. 손을 잡자 부인이 뿌리쳤고 입을 맞추려 하자 밀어냈다. A는 결국 부인을 성폭행했다. 


이 사건에 대해 대한민국 대법원은 ‘무죄’판결을 내렸다. 당시에는 부부 사이에 강간이 성립한다고 보지 않았다. 판결문을 보면 “두 사람이 실질적인 부부인 이상 정교情交 청구권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A를 강간으로 처벌한 것은 그릇된 판단”이라고 되어있다. 쉽게 해석하면 “남편은 언제든 아내에게 섹스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남편이 외도하고 들어와도, 아내의 감정이 상해도, 아내가 싫어해도 상관없다. 남편은 배설할 권리가 있고 아내는 배설을 받아들일 의무가 있다.”는 거다. 딱 강아지 수준의 인식이다. 그 수준은 현재에도 진행형이다.     


희주는 잠자리가 괴롭다. 남편과 평소에 덤덤한 사이인 데다 최근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겹쳐 부부관계를 할 생각이 없다. 각방을 쓴지도 오래됐다. 문제는 남편이 직장에서 회식하는 날이다. 한 달에 한두 번, 그는 술에 취해 들어와 희주의 방으로 침입(!)한다. 자고 있는 희주를 덮쳐 삼겹살과 소주, 담배와 마늘 냄새가 섞인 입으로 키스를 한다. 그녀는 싫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포기 상태로 그를 받아들인다. 그 어떤 전희도 애무도 사랑의 밀어도 없이 남편은 삽입을 시도한다. 섹스를 마치면 그는 제 방으로 돌아가 곯아떨어진다. 희주는 그때부터 잠을 못 자고 밤을 지새운다. 다음 날 술이 깬 그에게 “술 취해 들어 와 하는 섹스는 싫다”고 말한다. 남편은 “미안하다”고 하지만 그때뿐이다. 다음 회식 때 이런 일이 반복된다. 명백한 성폭행이다.      


No means no. 한국 남성들이 뼛속까지 명심해야 할 문구다. 기혼이든 미혼이든, 미성년자든 100세 노인이든 잘 들어라, 남자들아.      


1. 여성을 만나 차 한 잔을 마셨다. 호감이 갔다. 헤어질 때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는데 상대가 거부했다. 기분 나빠야 할까?

=> 먼저 손 내밀지 마라. 말로 인사하라. 가족이 아닌 여성에게는 손등이든 어깨든 터치 자체를 하지 마라.    

  

2. 여성을 만나 식사를 하고 술을 한잔했다. 대화가 너무 잘 통했다. 그녀도 나를 좋아하는 눈치다. 헤어질 때 골목길에서 키스를 하려고 했는데 여성이 얼굴을 돌렸다. 벽으로 몰아야 할까?

=> 키스 시도 같은 건 하지 마라. “오늘부터 1일” 선언하고 서로 연인인 상태를 확인한 뒤에 해라. 서로 번개가 통해서 입을 맞추는 것...은 영화에나 있는 일이다. 여성이 얼굴 돌리는 건 싫다는 의미다.      


3. 연인 사이다. 1박 2일로 여행을 갔다. 와인도 적당히 마셨다. 키스도 하고 같이 침대에 누웠다. 옷을 벗기려 하자 갑자기 그녀가 “싫다”고 한다. 어떻게 할까? 이럴 때 ‘싫다’는 건 ‘좋다’는 뜻 아닐까?

=> 귓구멍 막혔니? “싫다”는 건 “싫다”는 뜻이야. 자장가를 불러 줘. 그리고 너도 자.     


4. 부부 사이다. 키스도 하고 애무도 했다. 서로 발가벗었다. 콘돔도 끼었다. 막 삽입을 하려는데 그녀가 “싫다”고 한다. 이건 아니지 않나?

=> 아닌 건 아니다. 그녀든 그든, “N0”라고 말하면 아닌 거다. 거기서 모든 걸 멈춰라. “발가벗고 껴안고 자는 건 좋다. 그 이상은 싫다”면 그런 줄 알아라. “No”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 어떤 시도도 금물이다.      


사랑하는 모든 행위는 합의를 전제로 한다. 나와 상대 그 누구든 일말의 거부 의사가 있다면 멈추어야 한다. 멈출 뿐 아니라 안심시키고 위로하고 달래야 한다. 그게 사랑이다. 

‘노 민스 노 룰’은 어떤 상황이든 상관없이 상대방이 거부 의사를 표시했는데 성관계가 이루어졌을 때 이를 처벌하는 법이다. 미국과 캐나다, 유럽 등 선진국에선 성폭행 범죄에 대해 ‘노 민스 노 룰’을 적용한다. 그런데 이 룰이 부부 사이에도 적용될까? 강간 대상에 대해 법은 오랫동안 배우자 배제의 원칙을 지켰다. 미국은 1984년, 영국은 1991년 판결에 의해 이 원칙을 폐기했다. 독일은 1997년 형법을 개정해 배우자 강간을 인정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 1월16일에 처음, 부부 강간을 인정하는 첫 판례가 나왔다. (법조계는 왜 이렇게 늘 한발 늦을까?) 부산지법 형사합의5부(재판장 고종주)는 외국인 아내를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프랑스는 일반 강간보다 부부 강간에 대해 가중처벌한다. 왜? 부부 사이에는 싫어도 표현하지 않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 참는 경우가 많다. 부부가 서로에게 “NO”라고 한다면 이는 임계점에 다다른 상태다. 한 마디로 긴급상황이다. 이때는 모든 걸 멈추고 서로의 영혼을 되돌아보는 기간을 가져야 한다.     


왜 우리는 팔이 부러지고 인대가 손상되는 것만 아픔으로 인정할까? 골절로 몇 주씩 입원해 있는 건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영혼이 망가진 건 가볍게 생각한다. 먼저, 전제할 게 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서로 분리할 수 없다. 그냥 피곤해서 혹은 하기 싫어서 섹스를 거부할 수도 있다. 사랑하지만 오늘은 건너뛸 수도 있는 거다. 

하지만 결혼 생활을 하면서 부부가 내내 서로를 거부한다면 심각한 상황이다. 이럴 때는 마음을 입원시켜야 한다. 서로 떨어져서 지내본다든가, 절친과 며칠 여행을 다녀온다든가, 아니면 각자 조용한 곳에 가서 명상을 한다든가 해야 한다. 사람들은 손가락 하나 찰과상을 입어도 밴드를 감으면서 마음이 상하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 소홀히 한다. 마음에도 붕대를 감아주자. 그리고 정상으로 회복할 때까지 돌봐주자.


사랑하는 사람끼리 사랑을 나누는 것은 아름답다. 부부 사이의 성은 행복한 관계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다. 아름답고 행복한 섹스를 위해서는 양쪽 모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여야 한다. 강요되거나 억압받는 상태에서 아름답고 행복한 사랑을 공유할 수는 없다. 죽을 때까지 밥을 먹어야 하듯, 죽을 때까지 우리는 섹스해야 한다. 그 섹스, 기꺼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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