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신혼생활 vol.8
'난 엄마가 늘 베푼 사랑이 어색해, 그래서 그런 건가 늘 어렵다니까~' 문득 혁오가 부른 <TOMBOY>의 노랫말에 꽂혀 여러 번 곱씹는 중이다. 얼마 전까진 이 노래 가사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어색함'이라는 단어가 '엄마가 베푸는 사랑'과 한 문장 안에 자리하는 게 낯설었다. 다소 불경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엄마가 베푸는 사랑'이란 자고로 '당연함'에 가까운 게 아니겠는가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요새 부쩍 다른 생각을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베푸는 사랑이 정말로 당연한지에 관한 의문이다.
내겐 20년 가까이 차이나는 사촌 동생들이 있다. 친가에 외가까지 합하면 무려 열댓 명이나 된다. 덕분에 명절마다 사촌 형, 오빠로서 내 역할은 명확했다. 어른들이 명절 쇨 준비를 하는 동안, 사촌 동생들을 돌보고 놀아주는 일이었다. 매년 최소 두 번, 아침부터 저녁까지 축구 팀 한 개 규모의 아이들을 감당하다보면 아이에 대한 환상은 와장창 깨지기 마련이다. 육아 프로그램에서 조명하는 예쁘고 귀엽기만 한 아이는 세상에 없다. 아이는 보통 이기적이고, 무례하며, 말이 통하지 않는다.
아이들에 대한 진실을 너무 일찍 깨달은 탓에 한때는 누군가 아이를 좋아하냐 물어오면, 질색을 하며 "아니!"라고 외치곤 했다. 지금은 그때보단 덜하지만, 여전히 아이를 좋아하는 쪽보다는 좋아하지 않는 쪽에 좀 더 가까운 것 같다. 우연한 눈 맞춤에 방긋방긋 웃어대는 아이들이 예쁘지 않은 건 아니다. 아이들의 미소에는 분명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천진난만함이 있다. 다만, 그 천진난만함이 언제든 통제불능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걸, 오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을 뿐이다.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만 부모가 되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아이를 좋아하는 쪽이 부모가 될 확률이 높겠지만, 세상 모든 부모가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닐 거다. 그렇다면 아무리 자기 아이라고 해도,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게 그저 당연한 일만은 아니지 않나 싶다. 혁오의 노랫말처럼 '엄마가 늘 베푼 사랑이 어색'할 수도 있다는 걸 이제야 느낀다. 물론, 난 엄마가 아닌 아빠가 될 테고, 혁오는 이 가사를 다른 의미로 쓴 것 같지만.
자식이 사랑스럽지 않을지도 모른단 얘길하면, 대부분은 아이를 낳아보지 않아서 그런 생각을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자식이 없는 사람들마저도 그렇다. 자기 자식은 '당연히' 사랑스러울 거란 믿음이, 출산이나 육아의 경험과는 무관하게 사람들 사이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의심이 많은 탓인지 이런 보편적인 믿음이 쉽게 납득되진 않는다. 실제로 일상에서 경험하는 대부분의 사랑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 연인에 대한 사랑은 외모든 성격이든 다른 어떤 조건이든 충분히 매력적이기에 형성된다. 언뜻 당연하게 보이는 부모를 향한 자식의 사랑 역시, 자신을 낳고 길러준 시간과 과정의 산물이다.
자기 자식은 10개월이나 뱃속에 품었다가 아파서 낳기 때문에 다를 거라 믿지만, 그 힘들고 아팠던 경험이 오히려 트라우마가 될지 모른다. 부모와 닮은 아이의 모습을 찾아내는 게 마냥 즐거울 것 같지만, 스스로 경멸하는 자신의 단점마저 아이에게서 발견하게 될 수 있다. 마냥 착하고, 예쁘고, 똑똑한 아이가 찾아와 주길 모두가 바라지만, 세상엔 고약하고, 예쁘지 않고, 둔한 아이가 더 많다.
우리가 낳은 자식은 우리의 의도와 현저히 다를 수 있단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케빈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다. 영화로도 개봉된 이 작품은 아이를 출산한 후, 기대했던 것과 다른 아이의 모습에 혼란을 겪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자식이 기대했던 모습과 다를 때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감정의 변화를 엿보게 된다.
"케빈을 임신했던 기간 내내 난 케빈에 대한 생각, 내가 운전자에서 차량으로 강등됐다는 생각, 집 주인에서 집이 됐다는 생각과 싸워야 했어."
"엄마가 되기 전에 나는 발랄하고 다정한 강아지를 데리고 있는 것처럼 작은 아기를 내 곁에 두고 있는 상상을 했었어. 하지만 우리 아들은 그 어떤 애완동물보다도 훨씬 더 갑갑하게 나를 조였지."
"나를 자기 엄마로 원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아이, 그 아이가 내 아들이 아니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매일같이 떠올리게 만드는 아이와 함께 사는 것."
적나라하게 묘사되는 주인공의 혼란을 우리는 겪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기대완 다른 자식의 모습이 가져오는 혼란을 감당하면서까지, 부모가 베풀어야 마땅한 '당연한 사랑'을 선사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에야 출산과 육아에 관한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