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주차_달에서 온 파이리
이제 임신 마지막 달이다. 아내의 배는 신기할 만큼 나왔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폭발하기 직전의 화산이나 터지기 직전 풍선처럼 뭔가 큰일이 임박한 느낌을 준다. 배를 제외하곤 거의 살이 찌지 않은 탓에 더 그렇게 보인다.
신기한 마음에 아내의 배를 소원구슬 만지듯 쓰다듬곤 한다. 그러다 말도 걸고, 삐죽빼죽 태동이 올라오면 올라온 부분을 슬쩍 눌러보기도 한다.
어느날은 배에 가만히 귀를 대고 있는데 낯익은 떨림이 포착됐다.
"두구두구두구두구…"
처음엔 흐릿하게 느껴지던 떨림이 미간을 찌푸려가며 집중했더니 점차 뚜렷해졌다. 바로 알 수 있었다. 파이리의 심장 소리였다. 초음파 기계로, 산부인과에 가야만 들을 수 있던 심장 소리가 그냥 맨 귀에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내 맥박 소리 아니야? 배에 동맥이 있대." 아내는 반신반의했고,
"산모 맥박 소리일 건데요. 남편 분이 소머즈가 아니라면…" 병원에선 기분 좋은 착각 정도로 치부했다.
하지만 아내 배에 다시 귀를 대볼 때마다 소리가 뚜렷해졌다. 성인 맥박이라기엔 너무 빠른 박동, 초음파 기계로 들었던 파이리의 심장 소리가 분명했다. 환청이 아니라면 녹음도 되겠지 싶었다. 귀를 대보던 곳에 스마트폰을 갖다 됐다. 녹음기를 켜고 기다리니... 일단 음파가 찍히는 게 보였다. 녹음된 파일을 아내와 같이 듣고 확신에 차 외쳤다.
"맞네, 파이리네!"
"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입니다."
최근에 유튜브에서 1969년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하는 순간의 영상을 봤다. 달에서 들려오는 닐 암스트롱의 목소리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낯익은 영어 발음은 친근한데도, 기계음이 섞인 채 툭툭 끊기는 음성 탓에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가 실감이 났다. 다른 세계에 있는 친근한 존재, 딱 그런 느낌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wZb2mqId0A&ab_channel=NTD
처음 파이리 심장 소리를 초음파 기계를 통해서 들었을 때, 달에서 온 닐 암스트롱의 목소리를 듣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까마득히 먼 다른 세계에서, 무언가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그리고 그 존재는 일정한 간격의 박동 소리를 전할 뿐이지만 왠지 모를 친근감을 준다.
처음 심장 소리를 들었던 그때, 달만큼 먼 곳에서 출발한 파이리가 이제 지구에 도착하려 하나보다. 초음파 기계를 통해서만 들렸던, 먼 심장소리가 이제 맨 귀로 들을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진 걸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