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김 부장을 보며 울었나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가 보여준 감정의 정치학

by 라캉트

1. 우리는 왜 '김 부장'을 보며 울었을까

이 드라마는 참 이상한 효과를 남긴다.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김 부장형 인간’을 안다.
폭압적이고, 가부장적이고, 회사의 윤리를 집안까지 들여오는 인물.
대부분은 그들과 가까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데 7화 “낙수 효과”에서 김 부장이 명예퇴직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와 “미안해”라고 말하는 장면—
우리는 이상하게 울컥했다.

이것은 단순한 공감이 아니다.

581719244_17874117366446035_4114474245357430881_n.jpg 하진 "고생했다. 김 부장", 김낙수 "미안해" 명세빈, 류승룡의 명연기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눈물이 났을까?

배우의 육체성이 만들어낸 감정의 진동,
그리고 한국 사회가 집단적으로 학습해 온 ‘부성의 서사’를 모방하는 우리의 정서 반응이다.
우리는 그가 가부장의 폭력 구조에 기여해 온 사실을 알면서도,
그 “미안해”가 전달하는 취약성을 외면하기 어렵다.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한국 사회의 무의식적 감정 지도다.



2. 김 부장의 부인은 결코 ‘성녀’가 아니다

드라마는 김 부장의 부인 하진을 지나치게 선하고 내면이 단단한 인물로 그린다.
하지만 이는 현실의 여성들이 짊어져야 했던
가부장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낭만적으로 미화한 버전일 뿐이다.

0001239011_001_20251130133610944.jpg 완벽한 가족사진을 완성하는 버팀목은 김 부장이 아닌 아내 하진이다

가족을 부드럽게 봉합하는 존재.
감정 노동을 기꺼이 떠안는 존재.
남편의 실패와 몰락까지 함께 수습하는 존재.


이건 사랑이라기보다 역할이다.
K-드라마는 그 역할을 너무 매끄럽게 윤색한다.



3. 김 부장은 왜 세차장에서 ‘구원’을 얻는가

김 부장은 결국 ‘똘똘한 집 한 채’의 서울 아파트를 떠나
경기도 어느 빌라 월세로 이사 간다.

그의 새로운 직장은 형의 카센터.
손세차, 창문 닦기, 영업.

화면 캡처 2025-12-01 141549.jpg

이 과정은 계급 이동의 하강이지만
드라마는 이를 정반대로 포장한다.

하강이 아니라 ‘치유’처럼.

그러나 실제로 그가 찾은 것은 승진도, 돈도 아니다.

그가 되찾은 것은 자기 자신을 다시 느끼는 감각이다.

그 감각은 회사가 주던 자존심과 다르다.

그건 오히려 몸의 노동,
구체적인 손의 움직임에서 오는 실재감이다.


한국 사회에서 중년 남성이 자기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 순간은
종종 이렇게 ‘수입이 아니라 노동의 촉감’에서 나타난다.



4. 도진우가 실패하는 이유

연적 도진우는 전략과 책략으로 굴러가는 인간형이다.
그는 세계를 계산한다.
사람도 계산한다.
조직도 계산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화면 캡처 2025-12-01 141102.jpg

K-드라마는 냉정하게 세계를 판단하는 존재를
결국 공허하게 만들어버린다.

감정도 육체도 없는 인간은
드라마 세계의 윤리 안에서 ‘벌’을 받는다.


그건 현실의 구조라기보다
한국 서사 전통이 가진 집단적 도덕 감수성이다.


5. 그래서 우리는 이 드라마를 사랑하는 동시에 불편하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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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장 이야기>는 힐링물의 문법을 따른다.
가족은 다시 단단해지고,
부부는 손잡고 산책하며,
김 부장은 더 겸손한 모습으로 다시 노동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엔딩이 감동적인 만큼
어딘가 아릿한 찜찜함이 남는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굉장히 한국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구조인데,
서사는 구조를 치유의 서사로 변주해 버린다.


우리는 아버지의 몰락과 재기를 보며 울지만
정작 이 부성이 어떤 폭력을 축적하며 유지되었는지는
끝까지 제대로 말해주지 않는다.


6. 그리고 나는 다시 한 편의 영화를 떠올린다

한국적 가족 재구성 서사 앞에서
나는 늘 한 영화의 엔딩을 떠올린다 —
<허공에의 질주>(1988)

화면 캡처 2025-12-01 142507.jpg 대니와 헤어지며 "우리 모두 널 사랑한다. 그러니 세상에 좋을 일 좀 해봐라"

이 영화는 가족을 지킨다는 것이
함께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서로를 놓아주는 것임을 말한다.

화면 캡처 2025-12-01 142448.jpg 영화 속 James Taylor의 Fire and Rain은 이들의 축가가 된다.

한국 드라마가 그리는 가족은 언제나 ‘함께’로 귀결되지만
가족이 서로를 살리는 방식은
훨씬 더 복잡하고,
훨씬 더 다층적이다.


7. 우리가 김 부장을 보며 울었던 이유, 마지막으로

그렇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김 부장을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김 부장을 미워했다가,
또 문득 사랑하게 된다.


그 감정의 진폭이야말로
한국 사회를 살아온 우리의 감정 구조다.


이 드라마가 남긴 것은 단순한 힐링이 아니라
중년 남성성, 가부장, 가족, 감정의 정치학이 뒤엉킨 복잡한 질문들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을 이렇게까지 섬세하게 읽어내는 일 자체가
나에게는 또 하나의 작은 ‘회복’ 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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