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보지 않기로 합의했는가: 쿠팡 로켓배송의 이면
쿠팡에서 수천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
주소, 전화번호, 주문 내역. 한국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이다.
이는 분명 국가적 재난이다.
그러나 나는 묻는다.
"안 털린 개인정보가 있나?"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시스템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우리의 소비 패턴, 이동 경로, 취향은 이미 데이터로 분절되어 여러 시스템 안에 흩어져 있다.
이번 쿠팡 사건은 사실 이렇게 번역된다.
"이미 유통되던 데이터가,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형태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분노는 가장 안전한 분노이다.
이 분노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우리가 마땅히 걱정해야 할 방향을 정교하게 빗나가게 만든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데이터’를 걱정하느라, ‘너무 분명하게 존재하는 노동’을 보지 않는다.
개인정보는 더 이상 보호의 권리(right)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그 권리를 포기한 상태로 서비스를 시작한다. 이제 개인정보는 편리함을 위한 입장권(ticket)과 같다.
동의 버튼은 선택이 아닌 통과 의례이며, 거부할 권리는 형식적으로만 존재한다. 거부하면 생활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개인정보는 보호 대상이 아니라, 불안을 관리해 주는 이데올로기적 환영이다.
"그래도 이건 지켜지고 있다"는 최소한의 믿음.
그 믿음 덕분에 우리는 다른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지금 쿠팡 사태에 대해 묻는 질문은 명확하다.
내 주소, 카드 정보, 기록은 안전한가.
나는 피해자인가.
그러나 거의 묻지 않는 질문이 있다.
이 빠른 배송은 누구의 밤을 전제로 하는가.
이 속도는 어떤 신체적 대가를 요구하는가.
이 클릭은 어떤 몸 위에서 가능해지는가.
데이터는 가볍다. 복사되고, 이동하고, 삭제된다.
그러나 노동은 물성이 있다.
새벽, 엘리베이터, 계단, 손목과 무릎, 그리고 죽음.
쿠팡의 로켓배송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속도를 정상으로 만드는 구조이다.
정상이 된 속도는 언제나 누군가에게 비정상적인 신체 리듬과 안전 한계선을 넘어서는 노동 조건을 요구한다.
실제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과로와 야간 노동으로 인한 심각한 건강 위험과 사망 사고를 반복적으로 겪었다. 나는 쿠팡 셔틀에 몸을 싣는 사람들을 매일 본다.
이 노동은 통계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 바로 옆에서 작동하는 현실이다.
우리가 "편리하다"라고 말할 때, 그 편리함은 추상적이고 가볍다.
반면 그 편리를 떠받치는 노동은 지극히 물리적이며 무겁다.
가장 잔인하고 정확한 진실은 아이의 질문에 담겨 있다.
희생된 노동자의 자녀가 물었다는 이 한 문장은, 시스템의 진실을 가장 순수한 언어로 번역한다.
"엄마, 우리 아빠가 연료가 됐대.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라 물었다.
로켓은 빠르다.
빠르려면 연료를 태운다.
연료는 소모된다.
소모된 연료는 기억되지 않는다.
이 질문은 이 시스템이 사람을 연료로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드러낸다.
우리가 흔히 듣는 끔찍한 말들도 이 구조를 공유한다.
우울증 환자에게 "배때기 불러서 그렇다", "새벽에 쿠팡 물류센터 가서 일해라"라고 말하는 것은 노동을 징벌과 처벌의 도구로 사용하는 언어이다.
노동을 신화화하면서, 동시에 그 노동이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은 지운다.
우리는 추상적인 위반(개인정보 유출)에는 분노하지만, 물성 있는 파괴(노동자의 소모와 사망)에는 익숙해졌다. 추상적 문제는 비난만 하면 끝나지만, 물성의 문제는 내가 공범임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수많은 쇼핑 플랫폼을 쓰는 사람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다음 주문을 머릿속 장바구니에 담고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내 주변에서 셔틀에 몸을 싣는 사람들을 본다.
그래서 이 글은 고발문도, 도덕적 훈계도 아니다.
다만, 내가 더 이상 "몰랐다"라고 말할 수 없게 된 한 개인의 인식이다.
우리가 누르는 클릭, 당일 배송을 당연하게 여기는 감각, 새벽에 도착한 상자를 반기며 느끼는 쾌감.
이 모든 것은 누군가의 수면, 관절, 심장, 생명을 연료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척하는 구조이다.
개인정보라는 환영은 가볍게 흩어진다.
그러나 노동은 언제나 누군가의 몸에 남는다.
클릭은 즉각적이지만, 그 결과는 느리게, 오래 지속된다.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있다고 믿는 걸까.
그리고 그 믿음은 무엇을 보지 않게 만드는 걸까.
로켓은 연료를 태우고 날아오른다.
그 연료가 우리의 편리함과 맞바꾼 타인의 삶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