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이서진의 달라달라〉가 불편한 이유
나는 이서진을 좋아한다.
그래서 넷플릭스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영석을 봤다.
이것이 〈이서진의 달라달라〉를 보는 경험의 정확한 요약이다. 이서진을 보고 싶다는 욕망과, 나영석이라는 구조를 통과해야 한다는 현실 사이의 간극. 그 간극이 생각보다 넓었다.
나영석이 화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어느 순간부터였다.
처음엔 가끔이었다. 목소리만 들리거나, 자막으로만 개입하거나. 그런데 언젠가부터 카메라 앞에 서기 시작했다. 출연자들과 함께 밥을 먹고, 웃고, 반응했다. 시청자들은 그를 알아봤고, 그는 캐릭터가 되었다.
이번 〈이서진의 달라달라〉에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갔다. 나영석 혼자 나오는 게 부담스러웠던 것인지, 이우정 작가와 김대주 작가가 상당한 분량으로 함께 등장한다. 그들은 이제 단순한 스태프가 아니라 화면 안의 인물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그들만 보인다는 점이다. 다른 스태프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화면에서는 완전히 지워져 있다. 이건 자연스러운 노출이 아니라 선택이다. 보여줄 사람과 지울 사람을 나누는 선택. 팀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팀처럼 보이게 만드는 방식.
커뮤니티 반응을 보면 이 불편함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제작진이 주인공임?", "나영석 님 연예인병 걸리신 듯", "이서진만 보고 싶다고!!", "제작진은 앵글에서 좀 빠져라."
나영석이 이 반응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바꾸지 않는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왜 멈추지 않는가.
나는 그 감각을 이렇게 이해했다. 마치 집착이 강한 엄마 같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은 직접 들리지 않지만 화면 곳곳에서 반복된다. 이서진의 냉소적인 유머, 까칠한 반응, 그 모든 것을 끌어낸 사람이 자신이라는 감각. 그래서 그 관계에 계속 개입할 권리가 있다는 믿음.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는 실제로 그 관계를 만들었고, 그 캐릭터를 구축했다. 그래서 더 불편해진다. 창작과 개입의 경계가 흐릿해질 때, 관계는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다.
그런데 이번 시즌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건 따로 있다.
나영석은 손을 자주 씻지 않는다. 음식을 손으로 집어 먹고, 그 손가락을 쪽쪽 빤다. 이서진이 질색하는 반응을 보인다. 관객은 웃는다. 그리고 자막이 친절하게 덧붙인다. "손 소독을 했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었다".
이 구조를 천천히 들여다보면 이상하다.
더러움을 의도적으로 연출한다. 상대방의 불쾌한 리액션으로 웃음을 회수한다. 그리고 자막으로 면책한다. 이건 실제가 아니라 연출이라고.
코로나 이후로 손 씻기가 무엇인지 우리는 다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걸 예능 장치로 반복해서 쓴다는 것이 불편했다. 그리고 더 불편한 건 그 불편함이 어디서 오는지였다.
한국 남성성의 오래된 코드가 있다. 더러움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청결에 예민한 것은 과민하거나 여성적인 것이라는 코드. 영화에서 남자들의 연대를 보여줄 때 함께 노상방뇨하는 장면을 넣고, 사이코패스 킬러를 그릴 때 청결 집착으로 표현하는 방식. 더러움은 정상적 남성성의 일부고, 청결은 비정상이라는 도식.
나영석은 그 코드를 의도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이서진의 질색 반응을 통해 그것을 웃음으로 만든다.
문제는 위생이 아니다. 더러움을 웃음으로 소비하게 만드는 방식이 문제다. 그리고 그 방식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가 문제다.
자막은 말한다. 손 소독을 했고 화장실에서 손을 씻었다고. 그 말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실제가 아니라 연출이라는 것을.
그래서 더 이상한 감각이 남는다. 연출된 더러움을, 굳이 반복해서 보게 되는 감각. 그리고 그것이 아직도 웃음이 되는 감각.
나영석은 여전히 유효한 연출자다. 관계를 만들고, 캐릭터를 구축하고, 케미를 끌어내는 능력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번 시즌에서 보이는 건 그 능력보다 더 오래된 무언가다. 관계를 소유하려는 감각, 구조를 드러내면서도 멈추지 않는 방식, 그리고 낡은 남성성 코드를 여전히 유효한 웃음 장치로 쓰는 태도.
문제는 나영석이 아니다.
우리가 그것을 아직도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이서진을 보기 위해 오늘도 그 구조를 통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