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 하기 좋은 날 vs 사진 찍기 좋은 날
혼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술이 당기는 날이 있다. 알코올의 소독감을 뜨끈한 국밥 국물에 희석시켜 함께 빨아들이다 어느 순간 알딸딸함이 밀려 올라올 때 산책을 하면서 취기를 공기로 환원시키는 과정이 무의미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혼술이 당기는 그런 날이 있다.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니 소주 중에서 가장 순한 것을 달랬더니 가장 좋아하는 술이 나왔다. 무엇보다도 병 색깔 때문에 좋아하게 된 술인데 이게 가장 순했던 모양이다. 술은 알코올 도수보다는 병 색깔이지.
술 한 모금에 뜨끈한 국물 서너 숟갈 같이 먹으면 속 마사지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이다. 다만 알코올 초짜가 하는 말이니 다 믿으면 안 된다.
먹다 보니 국그릇은 바닥이 드러났고 술병은 3분의 1이나 남았지만 알딸딸함이 딱이다.
계산을 하고 식당을 나서니 알딸딸함 덕에 세상이 다 멋스럽다. 덕분에 집까지 가는 가까운 길을 멀리하고 멀리 돌아 산책길로 향하였다.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어서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큰 도로를 주행하는 자동차처럼 내 옆을 쌩쌩 지나쳐갔다. 그들의 눈에는 술 한잔 한 아저씨가 산책을 방해하는 한 마리의 빌런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걷다 보니 어느덧 아파트 주차장까지 와 있었다. 이런 멍 때리는 산책 너무도 좋다. 그때 적당히 시컴하게 맑은 하늘이 눈 안으로 쏙 빨려 들어왔다. 자주 보던 하늘이었지만 오늘따라 너무도 가슴에 담아두고픈 하늘이었다.
일단 폰을 꺼내 들고 앞으로 쭈욱 내밀고 화면에 들어오는 컷을 만들기 위해 빠르게 직진을 하였다. 서슴없이 걷다가 좋은 컷을 만들기 위한 지점이 다다르자 걸음을 멈추었다. 이제 찍으면 된다.
'찰칵'
찍고 나서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니 바로 눈앞의 트럭 안 아저씨가 놀라 눈이 마주쳤다. '헉', '헉' 아저씨의 표정과 나의 표정이 아마 비슷한 표정이었을 것 같다.
좀비처럼 카메라를 들이대고 쭉 직진을 해와서는 찰칵찰칵 찍어대니 그 아저씨 입장에서 본인을 찍는 줄 알고 얼마나 당황했을까.
그래도 사진은 건졌다.
그런데 아저씨, 왜 집에 안 들어가고 차 안에서 폰 하고 있었던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