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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냥 Feb 13. 2024

힘내라 지구야. 파이팅이다.

어느 평범한 저녁의 쫄보 인간은.....

지구가 태양을 50억 바퀴를 열심히 돌던 중 최근에 발생한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저 인간의 평균치로 보더라도 보잘것없고 소소한 일상으로 지나쳐버릴 어느 한 쫄보 인간에게만 또렷하게 기억에 남을 그런 순간이었다.


배는 괜찮다고 하였으나 입은 심심하니 도저히 안 되겠다며 뇌에 협박을 가하여 편히 쉬고 있던 발이 어느새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서게 하고 있었다. 뜻밖에 나선 저녁 9시경의 겨울밤은 겨울치고는 비교적 따뜻하였다. 복도식 아파트 공간에서 훤히 내려다 보이는 밤 풍경은 잔잔하기 그지없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옆집으로 추정되는 아주머니가 한 손에 우산을 들고 내렸다.


'응? 비가 오나? 한 겨울에 비라니.'


우산을 들고 나오지 않았던 탓에 순간 망설였다. 아무리 집 앞 편의점이라고는 하나 우산이 필요할지에 대한 갈등이 선택장애자의 뇌를 뒤흔들고 있었다. 우산이냐 아니면 엘리베이터냐.


망설이다 엘리베이터가 닫힐 무렵 본능적으로 열림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우산을 가지러 회군을 선택한 것이었다. '회군이다. 모두 나를 따르라.' 갑자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 떠오른 유사성이라곤 1도 없는 이 몹쓸 연상작용이 얼마나 쓸모없는 쫄보인간의 뇌인지를 가리켰다.


일단 급하게 내려 집으로 향하다 보니 방금 전 내린 옆집 아주머니의 뒤를 따라가게 된 모양새가 그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몇 걸음 채 걷지 않았을 때 갑자기 앞서 가던 아주머니가 마치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처럼 통 튀어 오르며 뒤를 돌더니 악 소리를 내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 게 아닌가. 순간 덩덜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라?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 거냐?'


짧은 순간 오만가지 상상이 머리를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동물적으로 나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아, 저 옆집이에요. 옆집. 우산 가지러 가는 중이에요." 


화급히 순한 양의 탈을 쓴 목소리로 안전한 상황이라는 걸 변호하고 나니 그제야 아주머니는 가슴에 손을 얹으며 '안심이구나'라는 표정과 함께 자신의 실수를 뻘쭘한 미소로 미안함을 대신하였다. 


퀴즈, 이 상황의 장르는 대체 무엇일까요? 드라마, 스릴러, 코미디?


하도 험한 일들이 뉴스에 오르내리니 놀랄 법도 하다. 검은 마스크, 검은 옷의 사내가 저녁 9시라고는 해도 짙은 어둠이 깔린 아파트 복도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다 말고 갑자기 뒤따라 오면 남자라도 조금은 섬뜩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해는 간다. 머리로는 이해는 간다만 이웃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놀라는 모습에 대한 서운함을 쫄보 인간의 가슴에는 새겨지고 말았다.


오늘도 지구는 이 무겁고 하찮은 인류를 떠안고 열심히 태양 주위를 달린다.

힘내라 지구야.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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