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게

by 나타미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많아졌다.


오늘보다 어제를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다. 기억을 먹고 있었다. 사랑할 수 있는 게 기억 밖에 없다면. 곧 늙어버린 느낌이었다.


눈을 감으면 마을과 마을이 떠올랐다.


길이 보였다. 나는 스페인에 있었다. 순례길이었다. 800km를 걸었다.


“포기해도 괜찮아”라는 응원의 말을 듣고 길에 올랐다. 내가 거기 왜 갔더라?


어떤 기억은 가물가물해진다. 어떤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잊히지 않는 기억을 먹고 또 먹는다. 오늘을 소화 할 수 없는 날이면 기억을 더욱 집착적으로 먹는다.


나는 길에서 C를 만났다. C는 나를 추월해가며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예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첫 만남이었다. C와 나는 또래였고, 금방 혹은 더디게 친해졌다. 금방 친해진 것은 외국인 틈바구니에서 말이 통하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고, 더디게 친해진 건 길이 끝나고 다시는 만날 일이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C는 선을 넘지 않았다. 거리를 두는 사람은 아니었다. 짐작하기로 C는 그저 그만큼만 나와 친해지고 싶어 했다. C와 나는 며칠을 같이 걸었다. 도미토리 이층침대에 우리는 위층과 아래층을 각자 차지하고 누웠다. 같은 침대에 누워있다는 것에 한 팀이라도 된 것 마냥 뿌듯했다. 오래 걷는 게 익숙하지 않은 나를 위해 C는 걸음을 맞춰줬다. “처음에는 빨리 걷는 게 중요한 줄 알았는데, 걷다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라고 C는 말했다. C에게 미안했고, 고마웠다.


순례길의 어느 아침이었다. 이층의 C를 까치발을 들고 깨웠다. C가 오늘은 먼저 가라고 말했다. 다리가 아파 이 곳에서 하루를 더 묵던지, 아니면 늦게 출발하던지 하겠다고 했다. C가 나랑 같이 가기 싫은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길 중간에서 C가 다른 외국은 몇 명과 무리지어 걸어오는 걸 봤을 때 생각은 확신이 됐다. 그렇게 며칠 간 C를 볼 수 없었다. C가 보고 싶었다.


다음에 다시 C를 만났을 땐, C 옆에는 매력적인 대만 여자애가 있었다. 영어를 잘했고, 웃는 게 예뻤다. 그 여자애는 C가 잘생기고 귀엽다 말했다. 마을에는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화려하게 입은 퍼레이드 행렬이 지나가고 음악이 새벽 내내 울려 퍼졌다. 여자애는 C에게 팔짱을 꼈다. 축제를 구경하다 핸드폰을 잃어버린 여자애를 C는 저녁 내내 달래줬다. 나는 와인을 벌컥벌컥 마셨다. 와인 때문인지 밤새 내 심장이 쿵쾅거렸다.


다음 날 아침, 누구보다 빨리 일어나 혼자 짐을 싸고 길을 나섰다. 도망치듯 마을을 나섰다. 길 위에 사람들은 내 컨디션이 다른 어느 날보다 좋아 보인다고 말했다. 과연 그랬다.


길은 길었다. 30일 정도 걸어야 하는 긴 길이었다. 나는 C와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했다. 내가 길 위에서 걸음을 멈추고 C를 다시 찾아간 곳은 산 중턱의 마을이었다. C는 나보다 앞서 있었지만 몸이 아파 그곳에 멈춰있었다. 나는 그 마을을 지나쳐 갈 수도 있었다. 얼마 걷지 않아 체력이 한참 남아 있었다. 아픈 C를 찾아가도 되는 걸까. C가 부담을 느낀다면 스스로 민망해 다시는 C를 보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두려움은 보고 싶은 마음 앞에 항복했다.


약을 먹고 누워있는 C를 찾아갔다. 열이 나고 있었다. C와 나는 열에 대한 처방 방법이 서로 달랐다. 나는 무조건 시원하게 있어야 한다며, 이불을 걷고 찬 수건을 얼굴에 얹어야 한다고 했고 C는 땀을 빼야한다며 이불을 덮고 있을 거라 했다. 한창을 실랑이 했다. 결국 이불 속에서 찬 물에 잔뜩 적셔 이마에 올려줬다.


C 옆에 나란히 누워 폰세바돈은 어땠는지, 철의 십자가에서 본 일출은 듣던 대로 멋있었는지, 밥은 잘 먹고 다녔는지, 그간 길 풍경은 아름다웠는지 물었다.


C 몸에서 나오는 아픈 열기가 뜨끈하게 느껴졌다. 내 귀로 바로 옆, C의 가슴팍에서 심장 소리가 들렸다. C가 날 빤히 쳐다봤다. 어깨가 뻣뻣하게 굳는 것 같았다.


나의 온도와 C의 온도가 맞닿았다. 나는 차가웠고 C는 뜨거웠다. 입술들의 간격이 메워졌다.


C가 웃었다. 처음 보는 낯선 웃음이었다.


“너 축제 날 나한테 심통 났었지?”


C가 물었다. 눈치는 빠르다. C가 말을 이었다.


“난 거기서 더 다시 만났을 때 되게 반가웠다? 근데 네가 나한테 엄청 틱틱거렸잖아.”


“부르고스에서 무릎 아프다고 나보고 먼저 가라고 그랬잖아. 그래서 나랑 걷기 싫은가, 혼자 있고 싶은가 했지.”


“아픈 걸로 피해주기 싫어서”


“오늘도 오라고 안했잖아”


“나 때문에 오라고 어떻게 그래”


나라도 그랬을 거다.


“너랑 있는 게 제일 마음 편하더라.”


듣기 좋은 말이었지만 절반은 믿고 절반은 믿지 않았다

.

그 날 이후 C와 같이 스페인 병원을 찾아가고, 지겨울 때만큼 같이 걸었다. 가끔은 손을 잡았다. 가끔은 서로 멀찍이 떨어져 걸었다. C는 내가 한 발 다가가면 뒤로 물러났고, 뒤로 물러나면 한 발 다가왔다. 나는 C가 좋았고, C는 아니었다. 그 후 나는 다시 C와 헤어졌고 길에서 우연히 만나 800km의 끝을 함께했다. 길 위에서 헤어짐이 아닌, 진짜 헤어짐의 마지막 순간에 C는 아쉬움 하나 없이 돌아서 갔다. C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울었다. 평생 C를 만나는 게 이것이 마지막일 것 같았다.


어렸을 땐 “안녕”이라 말하면서도 언젠가 다시 보겠지 하고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이제는 “안녕”이 영원한 안녕이 될 수 있음을 안다. 모든 건 기억으로만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