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버스는 놓치고, 핸드폰은 잃어버리고

파리에서 바욘으로

by 나타미

파리에서 심야버스는 놓치고, 핸드폰은 잃어버리고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점은 여러 곳이지만 프랑스 길의 시작점은 생장이다. 파리에서 생장으로 갈려면 먼저 바욘으로 가야 한다. 파리에서 바욘으로 기차를 타고 갈 수도 있고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다. 나는 숙소 값도 아끼고 기차 값도 아낄 겸 심야버스를 예매했다. 참 겁도 없었다. 내가 타고 가야 하는 버스는 밤 12시였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버스터미널까지 가야 하는 데 생각해 보니 그 시간이면 해가 다 질 시간이었다.


8월의 파리는 해가 길어 10시까지는 밝다 하지만 해가 떨어지자 빠르게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가로등이 켜지고 완전히 어두워지자 마음이 급해졌다. 아무도 없는 거리에 한 커플이 보이길래 길을 물어물어 터미널을 찾았다. 근데 무슨 놈의 버스 터미널이 굴다리 밑 같은 곳에 있다. 우리나라 소도시 터미널을 가도 이것보단 좋을 것 같았다.


터미널 안에는 기다려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지도 않았다. 그냥 큰 버스 주차장 같은 곳이었다. 심야라 아무도 없는 정류장에서 혼자 기다리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터미널 뒤 어둑한 공터에서는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공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나도 그 사람들 틈에서 자연스러운 척 긴장하지 않은 척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도대체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할지 모르겠는 거다. 메일로 날라 온 e-ticket을 봐도 모르겠고, 목적지가 써져 안내판 하나가 없었다. 버스를 봐도 이 버스가 어디로 가는 버스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버스와 사람들 소음 때문에 시끄럽고 번잡했다. 웃긴 건,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더 있는 건지 다른 사람들도 나한테 와서 자신의 티켓을 보여주며 여기로 가는 버스를 어디에서 타야 하는지 묻는다. 당연히 나도 모르지.


기사에게 바욘으로 가는 버스는 어디서 타야 하냐 물어봤는데 기사가 영어를 못한다. 그리고 나는 프랑스어를 못하지. 다른 기사에게 물어봐도 똑같았다. 어떤 기사는 “잉글리시?”라고 말하며 손가락을 좌우로 단호하게 흔들었다. 답답해 돌아가실 것 같은데 왠지 버스를 못 탈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큰 터미널을 무거운 배낭과 함께 몇 바퀴를 돌았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바욘으로 가는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결국 버스를 놓쳤다.


몇 분은 멍하니 그냥 앉아 있었다. 밤새도록 여기 있어야 하나? 땀으로 온몸이 찝찝했고 피로까지 몰려와 몸도 정신도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e-ticket만 계속 노려보다 갑자기 혼자 뭔가를 깨달았다. 출발지는 내가 있던 터미널이 아닌 공항 근처의 터미널이었던 거다. 그러니 애초에 그 버스는 여기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당연히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줄 알고 여기로 왔고, 몇십 분을 헤맸던 거다. 교통비 좀 아끼자고 심야버스를 끊었는데 결국에 돈이 두 배로 들었다.


다음 버스는 2시에 있었다. 다행히 내가 있는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거라 그 버스를 예매하고 기다렸다.


버스를 기다리는 데 옆에 앉아 있던 외국인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프랑스 사람이고 주말 동안 다른 나라에서 휴가를 보내고 온다 했다. 심심했던 차에 이런저런 시답지 않은 얘기를 하다 이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면 되겠다 싶어 버스를 타는 곳이 어딘지 정확히 물어봤다. 남자는 버스 기사에게 가서 뭘 물어보고 오더니 안심하라고 자기가 알려주겠다고 했다. 버스 시간이 다가와 일어나는데 이 남자 웃긴다. 언제 파리 다시 올 계획 없냐고, 오면 자기랑 파리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내자 한다. 자기가 티켓을 보내주겠다고. 참나, 어이가 없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은 채 버스에 탔다.


KakaoTalk_20200915_201741191.jpg 혼자 에펠탑 볼 때만 해도 좋았지


핸드폰 할부도 안 끝났는데


내가 여행을 간다 하면 주변에선 일단 말린다. 가장 큰 이유가 여행을 갈 때마다 뭘 잃어버리고 사고를 치고 와서다. 라오스에서는 돈을 도둑맞았고, 제주도에서는 렌터카 사고를 냈다. 내일로 여행을 가서도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이번에도 뭐 하나 잃어버릴 것 같다고 주변에서 호들갑을 떨었는데 말이 씨가 됐다.


버스는 사람으로 가득했고 자리도 불편했지만 앉자마자 잠에 들었다. 죽은 듯이 자다가 해가 뜨고 나서야 겨우 일어났다. 휴게소에 잠깐 멈춰서 시계를 봤는데 아직 도착지까지 두 시간은 더 가야 했다. 화장실이나 갈 생각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유럽에서 핸드폰을 손에 들고 다니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일 것 같고, 또 가방에 넣자니 넣었다 뺐다 할 게 불편할 거 같아 목걸이형 케이스를 사서 핸드폰을 목에 걸고 다녔다. 버스에서 내릴 때도 목에 걸린 핸드폰을 손으로 꼭 쥐고 내렸다. 프랑스 휴게소는 처음인데 사진이나 찍을까 하다 이따 나오면서 찍자 하고 핸드폰을 다시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화장실 줄이 너무 길었다. 추석도 아니고, 세계 어디나 여자 화장실 줄은 길구나 잡생각을 했다. 양치도 하고 나오는 데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아 급하게 버스로 달려갔다. 마지막으로 뒤 돌아 사진이나 한 방 찍으려 하는데 목이 가벼웠다. 목덜미를 더듬더듬하는데 핸드폰의 무게도 감촉도 느껴지지 않았다. 핸드폰을 묶고 있던 줄은 풀려서 끝만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었다.


아- 자주 잃어버리는 사람은 안다. 1초도 안 됐을 시간에 나는 핸드폰을 찾지 못할 걸 직감했다. 그래도 마지막 희망을 부여잡고 내가 왔던 길과 화장실을 모두 훑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핸드폰은 보이지 않았다.


짧은 순간에 선택을 해야 했다. 여기서 핸드폰을 더 찾을 것인지, 아니면 버스를 타고 갈 것인지. 당연히 버스를 타고 갈 수밖에 없었다. 버스 기사에게 내 사정을 말하고 도움을 청해 봤지만 버스 기사는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뭐라 뭐라 하며 손짓을 했다. 앉으라는 건가.


할 수 없이 다 포기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버스가 출발했다. 아, 진짜 나 핸드폰 잃어버린 거야? 할부도 안 끝났는데. 액정도 고쳐서 왔는데.


생각보다 상황이 빨리 받아들여졌다. 옆자리 여자에게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그러는데 잠시만 폰을 빌릴 수 있겠냐 물었다. “오 마이 갓” 여자는 나보다 더 안타까워하며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침착하게 네이버를 들어가고, 메일함으로 들어갔다. 호텔명을 확인하고 수첩에 적었다. 핸드폰 없이 여행을 하는 건 불가능이라 생각해 새 핸드폰을 사야만 할 것 같았다. 하필 그날이 일요일이라 가게가 문을 열 때까지 하루 기다려야 했다. 내리고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다시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