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욘에서
만약 핸드폰이 있었다면
-버스에서 내린다. 핸드폰을 연다. 구글 맵을 이용 해 호텔로 가는 길을 찾는다. 별 어려움 없이 호텔에 도착한다. 호텔에서 짐을 풀고 바욘의 맛집과 관광거리를 찾는다. 검색으로 찾은 식당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거리를 구경한다. 중간중간 사진도 잔뜩 찍는다. 인스타 스토리로 내가 여기에 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소리 없는 자랑도 실컷 한다. 가족들에게 인증 사진을 보낸다. 내일 가야 하는 생장에 대한 정보와 기차 시간도 마저 확인한다. 산티아고에 관한 정보도 더 찾아본다. 일어나야 하는 시간에 알람을 맞추고 기분 좋게 잠에 든다.
핸드폰 없는 리얼 현실
-버스에서 내린다. 호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모른다. 지도도 없다. 주변에 물어봐야 한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는 두 소녀에게 호텔 이름을 말하며 위치를 아냐 묻는다. 두 소녀는 안타깝게 영어를 못한다. 나한테 더 미안해하는 소녀들에게 괜찮다고 그것만으로 고맙다고 진심으로 말한다.
이제 스마트폰 없이 여행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아니, 적어도 20대인 나한테는 그랬다. 한국에서도 지하철 시간을 찾는 것부터 모든 길의 방향 잡이가 되는 게 핸드폰이었는데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서 잃어버렸으니 막막하기만 했다.
운 좋게도 버스가 내린 곳 바로 앞에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었다. 프랑스인데 일요일에 열려있다니, 감사합니다. 거기서 마을 지도도 받고, 핸드폰 가게 위치, 호텔 위치까지 알아냈다.
종이 지도를 보며 호텔을 찾아갔다. 고등학생 때 스마트폰을 처음 산 이후로 스마트폰 없이 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게 무슨 세상과 이어주는 끈이라도 되는 것처럼 신봉하고 있었다.
바욘에는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호텔로 가기 위해선 다리를 건너가야 했다. 햇빛은 눈부셨고 나는 반나절이 넘도록 씻지 못한 상태로 피곤하고 꾀죄죄했다. 한국과 나를 이어주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다리 위를 건너면서 이곳이 나에게 주는 이국적인 것들을 실감했다. 이제야 아주 먼 나라로 떠나 온 것 같았다. 이제야 낯선 것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크루아상 먹다가 청승맞게 울기나 하고
호텔에 도착하기만 하면 당연히 컴퓨터를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한 대는 작업용이고 한 대는 인터넷 사용이 안 된다고 했다. 밖에 나가면 컴퓨터를 쓸 수 있는 카페가 있다고 했는데 주말이라 문을 닫은 것 같았다.
보이는 빵집에 들어가 크루아상 하나랑 오렌지 주스를 사고, 밖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뭐라도 먹어둬야 기력이 생길 것 같았다. 핸드폰을 잃어버린 물리적은 문제를 뒤로 하고 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이 먼저 걱정됐다. 하루 반나절 동안 부모님이 내 연락을 목이 빠지게 기다릴게 뻔했다. 여행 한지 일주일만 됐어도 내 연락을 기다리지 않았을 텐데 유럽에 온 지 고작 3일 째였다.
왜 나는 여기 와서 사서 고생이지. 핸드폰은 다시 사는 데 얼마지. 몸도 마음도 피곤했다. 빵을 먹는데 청승맞게 눈물이 나왔다. 뭐가 서러운지 훌쩍이고 있는데 가게에서 주문을 받았던 여자가 다가왔다.
“너 뭐 잃어버렸어?”
어떻게 알았지. 내가 정말 뭐 잃어버린 사람처럼 울고 있었나 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잃어버린 일을 얘기했다. 여자는 나를 달래주며 자기 핸드폰을 빌려 준다 했다. 페이스북으로 친한 친구에게 통화를 걸었다. 갑자기 외국인 이름으로 전화가 가면 안 받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친구가 전화를 받았다. 핸드폰 잃어버렸다고, 부모님께 대신 연락을 해달라고 말하고 나니 조금 진정이 됐다.
내가 겪어왔던 외로움 이상의 외로움
마을을 그냥 돌았다. 할 것도 없었다. 바욘은 동화 같이 아름다운 마을이었는데 그 아름다움이 보이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마을을 걷다 중앙에 있는 성당에 들어갔다. 성당은 화려했고 동상들은 무서웠다. 천장은 굉장히 높았다. 언제 지어진 걸까. 신도들은 가난에 굶주릴 때 이 성당이 지어진 건 아닐까. 안무 생각이나 했다. 그리고 남은 눈물을 짜냈다. 성당에서 우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니까.
다시 호텔 방으로 들어갔는데 문을 닫음과 동시에 적막이 몰려왔다. 밖은 해가 쨍쨍했는데 내부는 어둑했고 사람들 소리도 저 멀리서만 간신히 들려왔다. 숨이 턱 막히는 외로움이었다. 혼자 몇 년간 타지에서 살면서 외로움도 익숙하다 생각했는데 그 이상의 것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나는 완전한 이방인이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외로움은 진짜가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외로워 어깨가 뻣뻣하게 굳었다. 샤워도 하고 빨래도 해야 하는 데 힘이 나지 않았다. 우울과 외로움이 파도처럼 밀려와 그것에 질식할까 두려웠다.
그래도 살긴 살아야 하고, 할 건 해야 했다. 힘을 내서 샤워를 하고 빨래를 했다. 계단 난간에 빨래를 널고 다시 아까 울었던 빵집으로 갔다.
말이 통하는 한 사람만 있다면
아까 울고 있을 때 핸드폰을 빌려준 친구는 비에라라는 포르투갈 사람이었다. 빵집에서 일하는 직원이었다.
내가 이렇게 다른 사람과 얘기하는 걸 좋아할 줄이야. 스스로 수다를 즐기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비에라와는 계속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나는 아까 핸드폰을 빌려줘서 고맙다고 이제 좀 진정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비에라는 포르투갈에서 7년 전에 여기로 왔다고 했다. 포르투갈보다 이곳이 돈을 더 많이 준다고 했다. 나는 그 간의 답답함을 비에라에게 털어놓았다.
“나는 외국인이고, 말도 안 통하는데 핸드폰을 잃어버리니까 뭘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프랑스 사람들은 영어를 잘 안 배우는 것 같아.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니까? 넌 영어 잘하네, 한국 사람들은 원래 영어 다 잘해?”
비에라랑 한참 수다를 떨고 나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비에라를 만난 건 다행을 넘어 감사였다. 말 섞을 사람 하나만 있어도 살 것 같았다. 아니면 외로워 죽었을 거다.
핸드폰을 한 번 더 빌리고 엄마에게 핸드폰을 살 돈을 보내달라고 했다. 또 아빠에게 비밀로 한다니 미안했다.
이 하루를 언젠가는 그리워할 거야
저녁까지 시간이 남아 카페에 앉아 일기를 썼다. 강가에 있는 카페였다. 일기를 쓰며 단 것을 하나 마시자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름다웠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이 마을. 온갖 걱정이 사라질 듯 여유로운 마을이었다. 사진을 찍고 싶단 충동이 들었다. 이 풍경, 이 햇살, 바람과 습도 모두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할 것이다. 나는 그때 내가 이곳을 그리워할 거란 걸 알았다.
완전한 고립과 단절. 내 평생 이렇게 한국과 단절된 날이 있을까. 핸드폰 없이 하루만 푹 쉬고 싶다 생각했는데 소원을 이뤘다. 강가에 반사된 해의 조각들은 시시각각 모양을 바꿨고 그 풍경의 아름다움에 취했다. 그곳에 앉아 내가 정말 먼 나라에 와 있음을 실감했고, 그리워할 사람을 그리워했다. 그리고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옛사람에게 편지를 끄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