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고장 그리고 43번 알베르게

산티아고 순례길 <바욘에서 생장으로> 8월 6일(월)

by 나타미

알람 없이 일어났다. 계단 삐걱거리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몇 시지. 시계가 없어서 데스크로 내려가야 했다. 7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데스크 직원이 불어로 뭐라 뭐라 했는데 조식 먹을 거냐는 말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만 빨라진다. 눈 뜨자마자 핸드폰을 확인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벌서 익숙해진 것 같다. 심심함에 적응된 것 같았다. 앉아서 조식을 먹는 데 평화로웠다. 이대로 지내도 괜찮을 것처럼.

프랑스 바욘에서 핸드폰 사기


애플 매장이 있어서 들어갔다. 어차피 한국에서도 계속 써야 하니 아이폰을 쓰고 싶었다. 아이폰 신봉자인 나는 다시 사도 아이폰을 사고 싶었다. 잔고가 허락할지 의문이었다. 외국에서 아이폰이 좀 더 싸다고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그래도 부담이 됐다. 잃어버린 아이폰 7은 할부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비싼 아이폰은 뒤로하고 매장에서 제일 싼 핸드폰을 사기로 했다. 보이는 핸드폰 매장 아무 곳이나 들어갔다. 유쾌한 아저씨 두 명이 가게를 보고 있었다. 망설이지도 않고 삼성 폰 중에서 제일 싼 폰을 골랐다. J1 인가 뭔가, 처음 들어보는 거였다.


한국 사람이라서 삼성을 사냐고 했다. 아니라고, 난 아이폰이 최고라 생각한다 했다. 대충 설명을 듣고 유심을 골랐다. 그리고 둘이 안으로 들어가서 새 제품을 가져온다고 했다. 근데 안에서 뭘 하는지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다. 안에서 놀고 있나 생각하는데 아저씨들이 나오면서 사실 우리는 커플이라 늦게 나왔다고 농담을 한다. 재밌는 아저씨들이었다. 내가 파리의 소매치기에 대해 걱정했다고 말하자, 괜찮다고 그들은 너의 것을 훔칠 뿐이지 널 칼로 찌르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새 핸드폰을 샀다.

생장행 기차 고장?

기차를 타고 가기 전 빵집에 들러 비에라에게 고맙다고 작별 인사를 하고 인스타 아이디를 교환했다.

역에 가서 기차 시간을 기다리는 데 여기저기서 순례자 같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조개껍질을 단 사람들. 그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뭔가 힘이 되고 안심이 됐다. 기차역 앞에서 토르티야 같은 걸 사 먹었는데 주인이 영화배우같이 생겨서 기억에 남았다. 유럽에 참 잘생긴 사람이 많다. 좋은 곳. 작은 방송국에서도 취재를 나와 순례자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기차는 몇 칸 안 되는 작은 칸이었다. 안은 깔끔했다. 기차를 타니 드디어 순례자들의 시작, 생장에 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풍경을 보고 감상에 빠지기도 전이었다. 한 10분이나 갔을까? 갑자기 기차가 멈췄다. 뭐지.

그렇게 안에서 10분, 20분 하염없이 기다렸다. 관계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왔다 갔다 했다. 안에 승객들도 서로 무슨 상황인지 묻고 있었다. 영어 할 줄 알아요? 이탈리아어 할 줄 알아요? 하면서 상황을 물어 댔다. 별일 아니겠지 싶었는데 갑자기 다 내리라고 한다. 밖에서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고 버스를 타고 가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아마 기차 고장이었나 보다.

갑작스러운 상황이 재밌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소풍 하듯이 걸어갔다. 승객들이랑 나란히 걸어가는데 기차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이것도 기념이겠다 싶었다. 그런데 햇빛이 너무 뜨거웠고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은 완전히 오르막길이었다. 아, 벌써부터 순례 길인가? 땀을 엄청 흘렸다. 그래도 승객들에게 미안했는지 물도 한 병 주더라. 버스에서 기절하듯 잠들었다.

생장, 43번 알베르게

생장에 도착해서 생장 사무실로 가는 길은 굳이 안 찾아도 갈 수 있었다. 그냥 앞에 가는 사람 따라가면 된다. 다들 그런 마음인지 눈치를 보면서 앞사람을 슬슬 따라간다. 긴장되는 마음에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생장은 참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어딘가 평화롭고 고즈넉한.

생장 사무실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8월은 산티아고 순례길 성수기다. 휴가철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한국에서도 그렇고. 사무실에서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고, 첫 알베르게를 배정받았다. 43번 알베르게였다. 마을 바로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였다. 알베르게 정보들이 담긴 종이와 피레네 산맥 지도 등을 받았다. 카미노 정보는 거의 어플을 이용했기 때문에 볼 일은 거의 없었다.

알베르게 가기 전에 스틱을 샀다. 싸고 가벼운 걸로. 별로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해서 살까 말까 망설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스틱 없이 피레네 산맥 절대 못 넘었을 거다. 조개도 사서 배낭에 맸다.

내 첫 알베르게인 43번 알 바르게. 주인아주머니는 친절했다. 4인실 방에 일층을 배정받았다. 방에는 주인아주머니와 한국인 아저씨 한 분, 그리고 프랑스 할머니가 같이 썼다. 배낭은 베드 버그 때문에 방 안으로 들고 갈 수 없다고 했다. 그 설명을 들을 때 굉장히 낯설고 신기한 기분이 들었는데 30일쯤 걷다 보면 알아서 배낭은 침대에서 멀리한다.

저녁은 알베르게에서 주는 걸로 알베르게에 묵는 사람들과 함께 먹었다. 주인아저씨가 밥을 먹기 전 스페인 말로 꽤 길게 많은 것에 대해 설명을 해 줬는데 하나도 못 알아 들었다. 그래서 옆자리 프랑스 사람에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봤다. 근데 내가 그 말을 이해 못 했다. 어떤 사람이 죽을 때 이 알베르게에 기부를 해서 이 알베르게가 세워졌다나..? 아직도 잘 모른다.

식탁에는 아이들 4명과 같이 온 중년 프랑스 부부와 포르투갈 아저씨, 이탈리아 남자, 그리고 나와 한국인 아저씨 Y 등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절대 먼저 말을 걸지 못했을 사람들에게 내가 먼저 영어로 말을 걸었다. 아이 4명과 함께 온 프랑스 가족은 생장이 시작이 아니라 거의 끝 지점이라고 했다. 온 가족이 함께 걷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힘들지만 좋은 경험이라고 답했다.

밥은 그냥 그랬다.

한국인 아저씨 Y가 와서 나보고 혼자 왔냐고 물으며 내일 어떻게 혼자 산을 넘으려 하냐고 물었다. 사실 별로 정보도 많이 안 찾아보고 대충 온 나로선 별로 걱정도 없었다. 나보다 Y 아저씨가 더 걱정을 하시길래 나도 약간 겁이 났다.

"뭐 어떻게든 되겠죠"

아저씨가 내일같이 출발하자고 해 그러기로 했다. 아저씨는 생장에서 8km 정도 떨어진 오리 손을 예약해 놨다고 했다. 난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는데. 8km까지는 동행이 생겼고 그 후에는 길에서 누구든 만나겠지 싶었다.

알베르게 앞에 앉아서 일기를 쓰고 있는데 미국인 여자 둘이 지나간다. 옆에 앉은 포르투갈 남자 보고 그동안 걸으면서 많이 배웠고 성장했냐 물었다. 그 남자는 순례길을 마친 사람이었다. 정말 미국 사람 같은 질문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내일 출발한다니까 자기들도 그렇다며 하이파이브를 한다. 엄청난 하이 에너지를 뿜는 사람들이었다.

길을 걸으며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겠지?

얼떨떨했다. 내일 가는 게 맞는 건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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