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것보다 멈춰 서서야 보이는 것

나를 찾는 여정 07: 머리가 쉴 줄 모를 때, 몸이 건넨 경고

by 낙천지명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내 손에 쥐어진 정답은 아무것도 없었다.

짐은 한결 가벼워졌으나 마음의 무게는 여전했다.

곧장 집으로 돌아가 안온한 일상에 숨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발길은 속초를 향했다.

11월 초, 걷기에는 조금 늦었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스쳤지만, 인도 여행 가방 속에 담겨 있던 침낭 하나를 믿고 무작정 도보 여행을 시작했다.

속초에서 부산까지, 동해 바다를 곁에 두고 걷는 길.

인도에서 끝내지 못한 일, 즉 '오롯이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낯선 타국이 아닌 익숙한 국내라면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나를 설득하며 다시 길 위의 이방인이 되었다.


몸이 먼저 배우는 '살아있음'의 감각

첫날밤, 속초의 새벽 공기는 생각보다 훨씬 매서웠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냉기에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여기서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강릉에 도착하자마자 마트에 들러 낚시용 1인 텐트를 샀다. 그날 이후 여행의 양상은 조금 달라졌다.

이슬을 피하기 위해 마을 정자를 고르는 법을 익혔고,

발에 물집이 잡히면 보건지소를 찾아가 능숙하게 치료를 받았다.

몸이 지칠 때면 동네 사우나에 들러 묵은 피로를 씻어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몸은 살아남는 법을 먼저 배웠다.

그것은 머리로 하는 성찰보다 훨씬 더 생경하고 정직한 '살아감'의 공부였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게 여행의 이유를 묻지 않았다.

식당에서 덤으로 달걀프라이를 얹어주던 아주머니, 잠시 쉬어가던 내게 커피 한 잔을 건네던 동네 어르신.

그들은 그저 묵묵히 걷는 내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 주었다.

"요즘 이런 여행하는 사람 보기 드물다"는 짧은 한마디가 그 어떤 거창한 조언보다 따뜻한 응원이 되어 마음에 남았다.


정직한 몸이 보낸 멈춤의 신호

무리하지 않는다고 자부했지만, 몸은 나보다 훨씬 정직했다.

포항에 도착했을 무렵, 매년 겨울마다 나를 괴롭히던 지병인 치질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결국 병원을 찾았고, 의사는 단호하게 수술을 권했다.

그 순간, 나의 길고도 짧았던 도보 여행은 강제로 멈춰 서야 했다.

아쉬움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내 몸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나 자신과의 대화'를 하겠다고 호기롭게 나섰으면서, 정작 가장 가까운 내 몸이 보내는 비명은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훗날이지만, 새로운 직장 생활을 할 때 동생이 내게 물었다. "형, 요즘은 감기 괜찮아?"

그전까진 몰랐다.

교직에 몸담았던 10년 동안, 나는 감기의 종류만 바꿔가며 사계절 내내 아픈 상태로 지내왔다는 사실을.

그저 체질이려니 여겼다.

일을 즐겁게 해내고 있다고 믿었기에 괜찮은 줄 알았지만, 사실 내 몸은 매 순간 한계치를 넘나들며 혹사당하고 있었다.


답은 걷는 중에 생겨나는 것

도보 여행 중에 찾아온 뜻밖의 멈춤은 나에게 준 마지막 경고였다.

머리로만 '쉼'을 말하지 말고, 이제는 몸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는 태도를 배우라는 신호였다.

답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과 집착이 나를 또 다른 낭떠러지로 몰아붙이고 있었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말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가만히 머물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

나는 너무 오래 달려왔다. 멈추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쉬는 시간조차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일하듯 살아온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길 위에서 다시 진짜 '쉼'을 배워야 했다.

여전히 손에 쥔 명확한 답은 없다.

하지만 답을 찾지 못했기에 나는 비로소 걷기 시작할 수 있었고, 그 걸음 속에서 부서진 나를 조금씩 회복하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알 것 같았다.

답은 길 끝에 놓여 있는 결과물이 아니라, 걷는 내내 내 몸과 마음이 나누는 대화 그 자체라는 것을.


수술을 마치고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나를 흔쾌히 맞아준 것은 근처에 살던 후배였다.

며칠간 그의 집에 머물며 몸을 추스르기로 했다.

한참을 길 위에서 떠돌던 내가 비로소 지붕 아래 정착한 시간.

그 정적인 시간 속에서 후배는 내게 조심스럽게 새로운 길 하나를 제안했다.

"형, '감사직 공무원' 준비해 보는 거 어때요? 형 성격이랑 정말 잘 맞을 것 같은데."

그의 제안은 꽤 구체적이었고,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분명 머리로는 수긍이 가는데,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한 망설임이 고여 있었다.

그것은 절실함의 부족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방황의 시작이었을까.

나는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이번에는 길 위가 아니라, 후배가 건넨 현실의 서류 뭉치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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