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은 여정 08: 잘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내게 '감사직 공무원'이라는 길을 권한 이는 대학 시절부터 십 년 넘게 인연을 이어온 후배였다.
후배는 삶에서 '출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 견고한 사람이었다.
자녀에게까지 이어질 안정적인 삶의 궤도를 위해 7급 감사직이라는 목표를 고집하던 이에게,
몇 번의 실패를 하자 9급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나의 말은 가닿지 않는 위로였을지도 모른다.
나와 결은 달랐지만, 그는 누구보다 투명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나를 오랜 시간 지켜봐 온 그가 진지하게 건넨 제안은 가볍지 않았다.
"형은 감사직이 정말 잘 맞을 것 같아. 괜히 시간 버리지 말고 이거 공부해."
그 말은 마치 나를 비추는 거울처럼 내 앞에 놓였다.
후배의 말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수학을 전공하며 다져진 수리적 감각, 특유의 꼼꼼한 성격, 그리고 10년의 행정 업무 경험까지.
모든 조건을 대조해 보면 감사직은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일'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머리가 끄덕여지는 속도만큼 마음은 따라오지 않았다.
이미 몸이 한 번 무너졌던 기억 때문이었을까.
더는 나를 극한으로 몰아붙이며 혹사시키는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적성에는 맞을지 몰라도, 두 번째 직업만큼은 숨 쉴 틈이 있는 여유로운 길이었으면 했다.
후배는 내 망설임을 읽은 듯, 최근 블루오션으로 떠오르는 다른 직렬까지 언급하며 나를 설득했다.
그 대화 끝에 나는 다시 시험이라는 무거운 선택지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공무원이라는 선택이 왜 이토록 마음을 짓누르는지 곰곰이 파고들어 보았다.
그 끝에는 여전히 떨쳐내지 못한 '타인의 시선'이 있었다.
'교사까지 그만두고 결국 다시 공무원 시험을 본다고?'
누구나 던질 무심한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그려졌다.
나 자신의 행복을 찾겠다고 학교를 나왔으면서, 정작 나는 내 선택보다 타인에게 내놓을 변명과 설명을 먼저 준비하고 있었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했다면 잘할 수 있는 일이라도 붙잡아야 하는 것 아닐까,
수없이 나를 설득해 보았지만 마음 깊은 곳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결국 문제는 하나였다. 나는 아직, 충분히 절실하지 않았다.
이 지루한 방황에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이라고 믿고 싶은 무모한 선택을 감행하기로 했다.
오래전부터 마음속 한편에 품어왔던 나라, 호주였다.
1년이라는 기한을 정하고 어학연수와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둔 학생비자를 준비했다.
문득 교직에 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교실 창가에서 시들어가는 화분을 돌보는 일을 참 좋아했다.
다른 반에서 버려지다시피 한 식물을 데려와 정성껏 살려내면, 우리 반 화분들은 늘 생기 있게 빛났다.
그 기억을 더듬어 '원예'라는 분야를 떠올렸다. 호주는 가드닝으로 안정된 직업이 풍부한 나라로 알기에.
그곳에서 흙을 만지며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가능하다면 이민까지도 조심스럽게 꿈꿔보았다.
물론 스스로에게 단단한 조건을 걸었다.
그곳에서도 답을 찾지 못한다면, 그때는 더 이상 미련 없이 돌아와 후배가 말한 그 시험을 준비하겠노라고.
이 선택이 진정한 용기였는지, 아니면 현실을 피하기 위한 마지막 미련이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나는 아직 나를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알베르 카뮈는 말했다.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는 데 있다."
당시의 나는 새로운 풍경을 향해 비행기 표를 끊었지만, 사실은 나를 긍정할 수 있는 새로운 눈을 갖고 싶었던 것 같다.
방황은 그렇게, 나를 다시 낯선 대륙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의 시간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 알지 못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