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는 여정 10: 방황의 끝, 정착의 시작
너무 많이 돌아온 것일까, 문득 뒤를 돌아보니 꼬박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있었다.
나는 그 시간을 '서른다섯의 사춘기'라 부른다. 남들보다 늦은 성장통이었지만, 어머니의 착한 아들로만 살아왔던 내게는 그 치열한 방황을 겪을 권리가 충분히 있었다.
이제는 그 길고도 짧았던 탐색의 시간을 멈추고, 다시 현실의 땅 위에 발을 내디뎌야 할 때임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 3년은 결코 헛된 수확이 아니었다.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온 삶에 처음으로 '쉼'이라는 호흡이 들어왔고, 그 덕분에 삶의 다음 장면을 그려 넣을 넉넉한 여백이 생겼다.
그 여백이 없었더라면 나는 여전히 무엇을 위해 사는지도 모른 채 표류하고 있었을 것이다.
방황의 마침표를 찍기로 결심하자 행동은 망설임이 없었다.
귀국하자마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후배를 찾아가 "딱 두 달만 같이 지내자"라고 부탁했다. 나를 붙잡아둘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도서관 구석에 고정석을 만들고, 말발이 화려한 강의보다는 기본 교재를 붙들고 문장 하나하나를 스스로 소화해 나갔다.
처음 접하는 헌법과 행정법은 마치 외계어처럼 낯설었지만, 한 번 또 한 번 읽어 내려갈수록 문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식을 채우는 과정이라기보다, 흐트러졌던 나 자신을 다시 정립해 가는 탐구의 시간과도 같았다.
"딱 2년만 해보자." 그 안에 답이 없다면 이 길 또한 내 길이 아님을 인정하겠다는, 나 자신과의 마지막 약속이었다.
첫해의 도전에서 영어와 경제학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두 번째 해, 나는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선택지를 넓혔다. 국가직 7급을 목표로 하되, 9급 시험도 함께 치르기로 한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보험이라 불렀지만, 내게 그것은 '어떤 삶으로 돌아갈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대답이었다.
결과는 정직했다. 7급은 다시 한번 영어의 한계에 부딪혔으나, 9급은 두 곳 모두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상하게도 마음은 아주 담담했다. 충분히 공부했고, 그 과정 속에서 나 자신을 납득시켰기 때문이다.
내게 중요한 것은 더 상위 직급이나 타인의 시선이 아니었다.
무너진 일상을 다시 세우고, 나를 기다려주는 자리로 돌아가는 것 자체가 승리였다.
나의 방황을 곁에서 지켜봐 주시던 스님은 늘 삶의 균형을 말씀하셨다.
그 가르침은 결혼이라는 선택으로 이어졌다. 혼자가 아닌 삶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다시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직장에서는 다르게 살고 싶었다. 스스로를 혹사하는 워커홀릭이 아닌, 일과 가정의 균형 속에서 여유를 만끽하는 삶을 꿈꿨다.
후배의 추천으로 시작된 국가직 공무원 생활이 어느덧 13년 차에 접어들었다.
상담을 공부했던 시간도, 행정 현장에서 굴렀던 경험도 이제는 업무 속에서 고르게 쓰이고 있다.
퇴근 후 아내와 아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거실에서 조용히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지난날의 방황을 비로소 웃으며 추억한다.
3년의 치열한 방황과 2년의 후회 없는 몰입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알베르 카뮈는 말했다.
"인생은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이제 안다.
나를 찾는 여정은 끝났지만, '나'로 살아가는 진짜 삶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그리고 단단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