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품은 우리 04: 돌고 돌아 다시 마주한 이름
인연은 돌고 돌아 결국 만난다는 말을 나는 오래도록 믿지 않았다. 적어도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새로운 직장에 자리를 잡은 후, 어머니를 통해 몇 차례 소개 자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만남은 번번이 다음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흩어졌다.
이유를 돌아보면 문제는 상대가 아닌 나에게 있었다. 열 살, 많게는 열다섯 살 어린 동기들과 매일을 함께 지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만 높아져 있었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와 내가 건너온 험난한 시간을 잠시 잊은 채, 빛나는 청춘의 단면만을 쫓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허공을 헤매던 내 곁으로, 잊고 있던 이름 하나가 다시 불려 왔다.
우리는 20대 시절, 각자의 자리에서 교사였다. 나는 지방에서, 아내는 서울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당시 양가 어른들의 권유로 한 차례 자리가 마련될 뻔했지만, 둘 다 결혼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기에 그 인연은 닿지 못한 채 조용히 흘러갔다.
세월이 흘러 다시 인연의 끈이 이어진 건 우연이라기엔 묘한 운명 덕분이었다. 우리 어머니의 중학교 친구이자, 장모님의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분이 십여 년 전의 그 만남을 기억해 낸 것이다. “아직도 둘 다 혼자라면 한 번 만나나 보지 그래.” 그 한마디가 멈춰있던 톱니바퀴를 다시 돌리기 시작했다. 아내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좋은 기억이 없어 망설였다고 했지만, 마침 비슷한 시기에 제2의 삶을 시작한 언니의 모습을 보며 마음의 빗장을 조금씩 풀었다고 했다.
첫 만남부터 시간은 무섭게 흘러갔다. 우리는 말이 많았고, 무엇보다 말이 잘 통했다. 서로의 지난 시간을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단숨에 이해되는 순간들이 잦았다. 우리는 둘 다 안정적인 교직을 내려놓은 사람들이었다. 아내는 퇴사 후 목표를 세워 차근차근 다음 단계를 밟아왔고, 나는 긴 방황의 시간을 가로질러 왔다.
속도는 달랐지만 우리가 걷고 있던 궤도는 닮아 있었다. 돌아보면 우리는 서로의 흉터를 알아본 것 같았다. 그것은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파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기척이었다. 무언가를 과감히 내려놓아 본 사람,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해 본 사람, 그리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해 본 사람만이 나눌 수 있는 깊은 대화가 우리 사이에 흘렀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다음 만남부터 결혼이라는 주제를 피하지 않았다. 각자의 가치관을 가감 없이 꺼내 놓았고 삶의 방향을 확인했다. 조급하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담담하고 평온했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인연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마음의 빈자리에 머문다는 것을 말이다.
나를 조금 덜 미워하게 되었을 때, 나의 과거를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만났다. 돌고 돌아 다시 만난 인연은 기적이 아니라, 각자의 고독한 시간을 꿋꿋이 건너온 두 사람이 마주한 필연적인 결과였다.
생텍쥐페리는 “사랑이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문장은 지금의 우리를 가장 잘 설명해 준다. 우리는 서로를 소유하기 위해 붙잡기보다, 같은 쪽을 향해 나란히 서 있었다. 그 온기만으로도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