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알려준 ‘정의’의 힘

내 삶의 두드림 03: 아이들의 꿈을 깨우는 수업 만들기

by 낙천지명

대학 시절, 나는 늘 같은 질문을 품고 있었다.

‘수학은 단순한 계산을 넘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학문일까?’

오랜 사유 끝에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수학은 약속의 학문이다.

모든 정의를 이해하고 그 약속을 정확히 알아야만 비로소 문제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정의가 사라진 공부

교단에 서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아이들의 '공부 방식'이었다.

'원' 관련 문제는 막힘없이 풀던 학생들이,

정작 “원의 정의를 쓰시오”라는 질문 앞에서는 백지 답안을 내밀었다.

정의를 모른 채 공식만 외우는 공부.

문제를 풀면서도 왜 이 풀이를 써야 하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알 수 없는 공부.

이런 텅 빈 공부가 학생들의 삶에 무엇을 줄 수 있을지,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시험에 개념 정의 문제를 꼭 넣기로.
수학을 암기 과목이 아니라 이해하는 과목으로 돌려놓기 위해서였다.

또한 수학 용어는 대부분 한자어로 이루어져 있다.
등비수열(等比數列) = 비가 같은 수의 나열.
한자의 뜻을 알면 개념의 구조가 보인다.
학생들이 조금 놀라긴 했지만, 나는 종종 한자 문제도 냈다.
물론 ‘출제 후보’는 미리 알려 부담을 덜어주었다.


나는 왜 첫 수업 시간에 ‘꿈’을 묻는가

하지만 나에게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었다.
학년 첫 수업이면 나는 책을 덮고 학생들에게 세 가지를 물었다.

1. 너의 꿈은 무엇인가?
2. 그 꿈을 실현할 중·장기 목표는 무엇인가?
3. 올해 실천할 가장 작은 목표는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첫 질문에 답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한 반에서 한두 명이면 많았다.
대부분은 꿈을 말하기보다 ‘대학 이름’이나 ‘직업명’을 조심스레 꺼내곤 했다.

나는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이미 방향 잃은 불안함, 설명할 수 없는 압박감이 아이들에게 먼저 와버린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진로 상담에 깊이 발을 들였다.
학생의 마음을 이해하지 않고는 그 어떤 수업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의가 필요했던 것은 수학만이 아니었다

수학에서 정의를 아는 일은 문제를 읽는 힘을 길러준다.
꿈도 마찬가지다.
꿈을 정의할수록, 삶은 선명해진다.

칼 융의 말처럼,

“의식이 무의식을 비추지 않으면,
무의식은 삶을 지배하고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 부른다.”


정의 없이 문제를 풀 수 없듯,
정의 없는 꿈은 쉽게 잊히고 흔들린다.

나는 매년 교실에서 이 사실을 다시 배웠다.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꿈을 정의할 시간’이었다.


수업은, 지식만을 전달하는 시간이 아니다

수학 수업은 숫자와 공식을 넘어,

학생의 마음을 읽고 그들의 잠재된 가능성을 확인하며,

그들이 스스로를 ‘정의(定義)’하도록 돕는 시간이었다.

정의 없이 문제를 풀 수 없듯, 스스로의 꿈을 정의할수록 삶은 선명해진다.

그 깨달음은 나를 자연스럽게 '상담'이라는 새로운 길로 이끌었다.

늦게야 확신했다. 교육은 문제 풀이가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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