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품은 우리 06: 화려한 호텔 대신, 우리만의 속도를 택함
우리 결혼의 화룡점정은 신혼여행이었다. 우리는 남들이 흔히 선택하는 신혼여행 전문 패키지를 단호히 거절했다. 대신 뉴질랜드 남섬을 캠핑카로 누비는 자유여행을 선택했다. 둘 다 여행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삶에서 '자유'라는 가치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각자 인도 단체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었다. 낯선 땅에서 정해진 일정에 끌려다니며 피로를 느꼈던 기억마저 닮아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이번 여행만큼은 삶의 속도를 우리 스스로 정하고 싶었다. 추석 연휴를 포함해 보름이라는 귀한 시간을 확보한 우리는, 하객들에게 충분히 인사를 나누기도 전 예식장에서 곧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양가 어른들의 깊은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조금은 발칙하고도 설레는 도주였다.
크라이스트처치에 도착해 빌린 캠퍼밴은 열흘 넘게 우리의 든든한 집이 되어주었다. 운전은 주로 내가 맡았다. 면허를 딴 지 겨우 1년 남짓이었지만, 오히려 고정관념이 없었던 덕분에 운전석이 반대인 환경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10년 넘게 무사고 운전자였던 아내는 반대 방향의 핸들을 낯설어했지만, 대신 조수석에서 완벽한 내비게이터가 되어주었다.
우리는 캠퍼밴에서 잠을 자고, 홀리데이 파크에 들러 씻고 간단한 식사를 준비했다. 고급 호텔의 안락함이나 화려한 조식은 없었지만, 자연의 품속에서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하기엔 더없이 완벽한 환경이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비현실적인 풍경보다, 우리는 서로가 내뱉는 말의 풍경을 더 많이 담았다. 차창 밖의 속도를 늦추자, 우리 마음속의 대화는 비로소 깊어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이번 여행은 도전이기도 했다. 아내는 친구들과 유럽을 횡단한 경험이 있을 만큼 대범했지만, 나는 늘 낯선 환경과 언어의 장벽 앞에 서면 작아지곤 했다. 혼자 떠나는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던 내가 뉴질랜드의 낯선 도로 위를 달릴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곁에 있는 사람 덕분이었다.
알랭 드 보통은 "행복은 더 많은 것을 가지는 데 있지 않고, 같은 속도로 걸어갈 사람을 만나는 데 있다"라고 말했다. 광활한 뉴질랜드의 풍경 속에서 나는 그 문장의 실체를 마주했다. 누군가에게 끌려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내 의견이 자연스럽게 반영되는 평등한 관계. 함께였기에 낯선 길 위에서도 두려움은 설렘으로 치환되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여행이 아니라, 같은 속도로 걷는 사람을 확인하는 여행이었기에 나는 비로소 행복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신혼여행에서 배운 '속도 맞추기'는 여행이 끝난 뒤에도 우리의 일상 속에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아이가 아주 어렸던 짧은 시기를 제외하고, 우리는 매년 우리만의 자유여행을 이어간다. 훗날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그때는 셋이서 다시 캠핑카를 타고 호주나 캐나다의 길 위로 나설 계획이다.
삶의 속도를 맞춘다는 것은 결국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걷는 일임을 배운다. 화려한 예식의 환호성이 잦아든 자리에 남은 것은, 캠핑카의 좁은 침대에서 나누던 낮은 숨소리와 서로의 보폭을 확인하던 다정한 배려였다. 우리의 정착은 그렇게 길 위에서 시작되었다. 그 연습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