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해를 돌아 마주 앉은 아침 식탁

나를 품은 우리 07: 식구, 같은 밥을 나누며 우리로 익어가는 시간

by 낙천지명

결혼 후 내 삶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풍경은 아침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침밥을 누군가와 함께 먹게 된 일이다. 내 삶에서 무려 삼십여 년 만에 일어난 기적 같은 변화였다.

중학교 시절까지 보낸 시골에서의 아침은 늘 분주한 엇갈림이었다. 새벽 일찍 일을 나가시는 부모님은 일을 마친 뒤에야 식사를 하셨고, 학교에 가야 했던 나는 늘 텅 빈 식탁에 홀로 앉아 밥을 먹었다. 형은 일찍이 도시로 유학을 떠났고 동생은 나보다 여덟 살이나 어렸기에, 나의 아침밥은 언제나 고요하고 외로웠다. 도시락마저 외할머니의 손을 빌려야 했던 시절, 가족이 모두 모여 밥을 먹는 건 주말 늦은 아침뿐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어린 내게는 선명한 기억으로 남지 못했다.


당연했던 결핍, 그리고 낯선 초대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도시 생활에서도 아침은 좀처럼 제 자리를 찾지 못했다. 삼 형제가 함께 지냈지만 각자의 속도로 사느라 아침은 생략되거나 대충 때우는 요식 행위에 불과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뒤에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빵이나 요거트로 허기를 달래는 게 전부였다.

어머니는 타지에서 혼자 지내는 아들이 못내 걸려 누룽지나 떡국을 부지런히 보내주셨지만, 그것들을 냄비에 올려 끓여 먹는 여유조차 내게는 사치처럼 느껴졌다. 아침은 늘 서둘러 밖으로 나가야 하는 전쟁 같은 시간이었다. 그 삶이 당연하다고 믿었기에 나는 바뀔 이유를 찾지 못했다. 결혼이라는 문을 열기 전까지, 내게 아침 식탁은 그저 잠시 머물다 떠나는 정거장일 뿐이었다.


"식구는 같이 밥을 먹는 사이예요"

그 당연한 결핍을 깨뜨린 건 아내의 한마디였다. 결혼 직후 아내는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식구는 같이 밥을 먹는 사이예요. 아침은 늘 함께해요." 그 말은 내 마음 깊은 곳에 묵직한 진동을 남겼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같은 식탁에 마주 앉았다.

내게는 지독히도 낯선 풍경이었다. 처음에는 밥알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몸보다 마음이 이 다정한 구속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래도 아내의 정성 어린 손길이 닿은 밥상 앞에서 나는 기꺼이 젓가락을 들었다. 시골 반찬에 익숙한 내 입맛에 아내의 밥상은 늘 풍성하고 정갈했다. 나는 매일 아침 "정말 맛있다"는 진심을 전했지만, 아내는 "맨날 맛있다니까 잘 모르겠어요"라며 수줍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짧은 문답 사이에 흐르는 공기가 차가웠던 내 아침을 서서히 데워주었다.


일상의 반복이 만드는 단단한 울타리

아침 식탁 위에는 밥만 놓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짧은 안부와 하루의 계획, 그리고 서로를 향한 온기가 함께 놓여 있었다. 분주한 출근 시간이었지만, 함께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통 앞에 서는 과정이 신기하게도 즐거웠다. 나는 자연스럽게 설거지 담당이 되었다. 물소리와 그릇이 부딪치는 달그락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비로소 내가 혼자가 아님을 실감했다. 아침을 먹고 나서는 출근길은 이전과 공기부터 달랐다.

작가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상의 반복이 삶을 지탱한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우리의 아침 식탁에서 매일 증명되고 있었다. 우리는 거창한 미래를 논하지 않는다. 그저 갓 지은 밥의 냄새를 맡고, 오늘 하루도 잘 지내보자는 눈인사를 나눌 뿐이다. 하지만 그 사소하고 지루한 반복이 우리를 진정한 의미의 가족으로 묶어주었다.

이제야 비로소 안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같은 지붕 아래 사는 일이 아니라, 같은 시간에 같은 온도의 밥을 나누어 먹는 일이라는 것을. 서른 해를 돌아 돌아온 이 식탁 위에서, 나는 비로소 진정한 정착의 맛을 배우고 있다.

brunch37.png


매거진의 이전글삶의 속도를 맞춰 나란히 걷는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