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있는 삶'의 온도

나를 품은 우리 08: 낡은 열정을 벗고, 저녁이 있는 삶을 입다

by 낙천지명

“형, 요즘은 입안 괜찮아? 감기는 안 걸리고?” 오랜만에 걸려온 동생의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안부 인사에 나는 잠시 말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정작 나 자신에게는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던, 아주 낯선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내 몸은 이미 오래전부터 답을 알고 있었다. 교직에 몸담았던 10년 동안 나는 감기를 달고 살았다. 입안이 헐지 않는 달이 오히려 낯설 정도로 내 면역력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 시절의 하루는 아침 6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 숨이 찰 만큼 빽빽하게 돌아갔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기에 그 고단함을 열정이라 포장하며 버텼지만, 몸은 쉼 없이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애써 그 신호를 외면하며 살았다.


일상이 무너지지 않는 삶의 구조

지금의 일터로 옮긴 직후 6개월은 새로운 업무를 익히느라 여전히 분주했다. 야근과 주말 근무도 간간이 이어졌지만, 교직 시절과는 분명 달랐다. 업무의 강도와 하루의 끝이 명확히 보였다. 일상이 송두리째 무너질 만큼 나를 몰아세우는 압박은 없었다.

2년 만에 전보 발령을 받아 사무실을 옮겼을 때도, 업무는 비슷했지만 새로운 사람과 환경 덕분에 매너리즘에 빠질 틈이 없었다. 다시 1년 뒤 다른 업무를 선택할 기회가 주어졌을 무렵, 나는 결혼을 했다. 내 삶의 방향타가 일에서 가족으로 완전히 옮겨가는 순간이었다.


불 켜진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결혼 후 내 삶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게 변한 것은 아침과 저녁이었다. 특히 정시에 퇴근해 불이 환하게 켜진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나를 더욱 재촉했다. 어쩌면 이전의 직장에서는 어둠에 갇힌 집으로 들어가는 두려움을 잊고자,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있었는지 모른다. 때로는 아내의 근무지 근처로 마중을 나가 함께 장을 보고, 나란히 저녁을 준비했다.

그 평범한 일상이 낯설면서도, 식탁 위에서 오가는 깊이 있는 대화가 좋았다. 주말에는 온전히 둘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계획 없이 동네를 산책하고, 훌쩍 짧은 여행을 떠나는 것도 가능해졌다. 혼자가 아닌 ‘우리’의 시간이었다. 그제야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감기를 앓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고, 입안이 헐어 따끔거리는 통증도 사라졌다. 그때 알았다. 건강은 영양제를 챙겨 먹는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구조가 바뀌어야 해결되는 문제라는 것을. 몸은 늘 가장 정직했다.


일과 삶, 배움의 균형을 찾아서

몽테뉴는 “삶을 즐길 줄 모르면 삶은 우리를 비켜 간다”라고 말했다.

그 문장이 이제야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이해되었다. 삶에 여유가 생기자 잊고 지냈던 배움에 대한 갈증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직장의 지원으로 업무와 연관된 경제학 공부를 다시 시작할 기회가 열렸다. 방송대에 편입해 졸업하고, 내친김에 야간 경제대학원까지 진학했다. 일과 배움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조화롭게 공존했다.

이 모든 기회에는 전제가 있었다.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조직과 조화를 이루려 애썼기 때문이다. 개인의 성장을 기꺼이 응원해 준 조직의 환경에도 깊이 감사한다. 혼자였다면 결코 누리지 못했을 혜택이었다. 치열했던 지난 삶의 열정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여유와 함께함을 품은 지금의 삶이 열정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것이다. 지금의 나는 ‘우리’라는 이름 덕분에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저녁을 되찾아준 아내에게, 그리고 이 평온한 삶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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